코로나 사태로 출퇴근하던 직장에서도 재택근무를 활용하는 경우가 늘었다. 이를 일회성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번을 계기로 대세가 될 수도 있다. 재택근무 전에는 ‘과연 그게 될까?’라고 생각하던 사람도 실제로 해보고 나면 의외로 재택근무에도 회사가 잘 돌아가고, 무엇보다 장점이 무척 많다는 걸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근로자 입장에서 좋은 거야 더 말할 필요도 없고, 고용주 입장만 따져보자. 재택근무를 하면 사무실이 필요 없고, 그러면 임대료에 전기세에 엄청난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여기에 직원 만족도도 높을 테니 생산성도 덩달아 높아질 확률도 높다. 하지만 마냥 핑크빛 미래만 바랄 수는 없는 법. 이게 가능하려면 단단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이 신뢰가 확보되어있지 않다 보니 ‘이게 과연 재택근무가 맞나?’ 싶은 황당한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1. 집에서도 정장 입으세요
아마 황당 재택근무 사연 중에 가장 유명한 일화가 아닐까 싶다. 집에서 일하면 정신이 해이해진다고 세미 정장을 입으라는 지시가 내려왔고, 결국 위에는 블라우스 밑에는 츄리닝을 입고 화상회의 하는 뻘짓이 이뤄졌다. 재택근무의 장점을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라고 할 수 있다. 단지 복장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과연 매일 하는 화상 회의가 꼭 필요하냐는 것이다. 필요하면 업무 관련자끼리 메신저로 소통할 수도 있다. 사실 팀원 전체 회의는 1주일에 한 번 정도면 충분하다. (참고로 체인지그라운드는 1주일에 한 번만 회의한다) 어쩌면 출근할 때는 회의가 불필요하다는 생각을 못 했을 수도 있다. 솔직히 회의만큼 하는 일 없이 근무 시간 잘 가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택근무를 하고 일을 빨리 끝내고 쉴 수 있게 되면 불필요한 회의가 얼마나 시간 낭비인지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그런데 그 불필요한 회의를 위해 옷까지 차려입으라고? 시간 아까운 줄 모르는 회사라고 보면 된다. (후기가 존재하는데, 복장 가지고 화낸 게 미안하다며 과장님이 자유 복장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리고 면나시만 입고 나오셨다고… 읔… 내 눈….)
2. 재택근무로 사회적 거리 좁히기를 시도
이번에 재택근무를 하게 된 가장 가까운 이유는 코로나 감염이다. 그런데 위 회사는 오히려 재택근무를 통해 모두가 접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무척이나 멍청한 계획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왜 이런 결정이 나오게 된 걸까? 재택근무를 ‘특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재택근무는 일이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업무가 있고, 그게 불가능한 업무가 있다. 그렇다면 사회적 거리두기를 고려했을 때, 집에서 근무하는 사람과 출근해야 하는 사람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게 맞다. 재택근무가 특혜라고 생각하니 서로 돌아가며 권리를 누려야 하고, 이따위 발상이 나오게 된 것이다.
3. 메신저 지옥
“메신저 답장이 5분만 늦어도 카톡이 와요.” 재택근무를 하면 일하는지 안 하는지 눈에 보이질 않는다. 그러다 보니 시도 때도 없이 메신저를 보내며 부하들을 닦달하는 상사들이 있다. 또는 매일 어떤 일을 했는지 일지를 제출하라는 경우도 있다. 심하면 오전과 오후를 나누거나 아예 시간 단위로 일지를 제출하는 회사도 있다. 이러다 보니 오히려 재택근무로 인해 업무 강도가 세졌다는 불만이 나오기도 한다. 출근 근무를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부하들에게 잦은 보고를 요구하면 생산성이 떨어지고 과잉 업무가 발생한다. 그런데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상사가 재택근무가 시작되면서 닦달형 상사가 되는 경우가 있다. 앞서 말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보고 체계를 일정하게 정해야 한다. 보고를 최소화하면서도 업무 기강을 확립하는 적절한 선을 찾아내는 게 똑똑한 리더라고 할 수 있다.
4. 재택근무 중에는 가족 출입금지?
재택근무 중에 가족의 출입을 금지시킨 황당한 경우도 있다. 보안을 이유로 한 지시라지만, 사실상 실현 가능성이 없는 탁상행정이다. 재택근무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걸까? 집에서 근무한다는 거다. 집에 가족이 함께 사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촬영 장비까지 반입하지 말라면 휴대폰도 없이 업무를 보라는 건가? 재택근무를 처음 하다 보니 다소의 탁상행정은 벌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어이없는 이런 일이 상부의 결재를 통과했다는 데서 조직의 수준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고 하겠다.
5. 재택근무를 하니까 퇴근이 사라졌어요
재택근무 장기 근무자로서 재택근무의 유일한 단점을 하나 꼽자면 ‘퇴근’이 사라졌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반 농담에 가까운 말이긴 하다. 퇴근할 때의 후련한 감정을 느끼기 위해 다른 모든 장점을 포기하고 출근을 선택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진짜 퇴근이 사라지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아무 때나 메신저로 연락하며 업무를 부탁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면 사실상 퇴근 없이 24시간 근무하는 것과 다름 없는 셈이다. 출근이 일상이던 시절에도 퇴근 후 메신저가 사생활 침해라는 논란이 있었는데, 재택근무로 인해 이러한 인식이 희미해지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6. 이것은 근무인가 감옥인가?
재택근무를 위해 카메라 장비를 설치하고 이를 감시하는 회사도 있다고 한다. 근무하는 직원들은 일정 시간 이상 자리를 비울 수 없어 화장실도 가지 못하거나, 마실 물까지 미리 떠다놓고 업무를 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 또한 직원과 회사 간에 신뢰가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문제는 이렇게 감시하면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재택근무의 최대 장점 중 하나는 자율성이다. 그런데 업무 시간과 장소 심지어 행동까지 제약하면 자율성이 생길 리가 없다. 이 정도까지 할 정도면 도대체 직원을 얼마나 못 믿는 건지 걱정이 될 정도다.
마치며
재택근무는 일이다. 집에서 일한다고 대충해서도 안 되고, 해야 할 일은 반드시 마무리 지어야 한다. 그래서 재택근무야말로 더 큰 책임감이 있어야 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책임감이 없을까 봐 직원을 믿지 못하면 위와 같은 황당 사례가 펼쳐진다. 저런 식이면 차라리 출근하는 게 근로자나 회사 양쪽 입장에서 이득이 아닐까 싶다. 재택근무야말로 비용을 절감하는 일인데도, 오히려 비용이 더 들어가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신뢰가 곧 비용이고, 신뢰가 곧 경쟁력이다. 재택근무를 통해 다시 떠올리게 되는 비즈니스의 진리다.
참고 : 재택근무 9일차 후기, PGR21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