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특히 서울은 대중교통의 천국이다. 세계 어디와 비교해도 이보다 편리하고 이보다 저렴한 대중교통을 찾기가 힘들 정도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점이 몇 가지 있다. 그중에서도 ‘이것만은 꼭 고쳤으면’ 하는 게 바로 다음 사례다. 아마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진처럼 졸다가 놓치는 게 아니라 멀쩡하게 깨어 있어도 놓칠 때가 많다. 음악을 듣는다거나, 책을 보거나, 아니면 그냥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인간 압착기에 끼어있다 보면 무슨 역인지 방송을 놓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무슨 역인지 맨 처음에 두 번 말해주고는 다시는 여기가 어딘지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뒤를 이어 영어 멘트가 이어지고, 번화가면 중국어에 일본어까지 나온다. 제발 여기가 어딘지 한 번만 더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그딴 거 없다.
안내방송도 문제인데, 더 심각한 것은 안내 화면이다. 저거 다는 데 한두 푼이 들어간 게 아닐 텐데, 전혀 돈값을 못하고 있다. 광고를 보여줘야 하니까 안내 문구가 하단에만 나오는 것까지는 이해한다. 그런데 왜 안내 문구에 쓰잘데기 없는 말을 잔뜩 박아 넣은 걸까? 지금 타고 있는 게 내선순환인지 외선순환인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 여기가 어디고 다음 역이 어딘지만 알려주면 어느 방향인지 누구나 알 수 있지 않나? 내리실 문도 열리면 알아서 내릴 것을 무엇 하러 화면에 그토록 오랫동안 보여주는 걸까? 더 열 받는 것은 이 모든 정보를 단 한 줄로 표현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을지로3가(외선순환)” (쓰다 보니 열 뻗친다…)
세계적인 UI 권위자 제이콥 닐슨은 사용성(Usability)의 평가 기준으로 다음 10가지를 제시했다. 이를 기준으로 지하철 안내 화면을 평가해보자.
1) 가시성 : 상황과 사용자의 행동 및 결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가? (아니오. 여기가 어디냐구!)
2) 실제 사용 환경에 적합한 시스템 : 사용자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시스템, 단어, 글을 사용하고 있는가? (아니오. 납득할 수 없는 문구를 사용 중)
3) 사용자에게 주도권 제공 (이 항목은 해당 사항 없음)
4) 일관성과 표준화 : 일관되고 표준화된 체계가 있는가? (예! 일관되게 쓸모없음)
5) 오류 예방 :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을 낮추는가? (아니오. 내려야 하는 데 내리지 못함)
6) 즉각적인 인지 : 보는 즉시 이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가? (아니오. 여기가 어디냐구!)
7) 융통성 : 불편할 경우 대안이 있는가? (아니오. 창밖에 기둥 때문에 안 보여!)
8) 비주얼 : 디자인적인 완성도가 있는가? (아니오. 바라지도 않는다)
9) 에러 해결 : 오류 발생 시 쉽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가? (아니오. 정거장 놓치면 대략 정신이 멍해짐)
10) 보충설명 : 도움말과 보충 설명이 있는가? (TMI 필요 없어!)
어째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안내방송과 화면이 나오게 된 걸까? 당연히 이와 관련된 민원이 많이 들어왔을 텐데, 왜 아직도 고치지 않는 걸까? 문제는 열차정보안내시스템을 담당하는 게 서울교통공사가 아니라 민간업체라는 데 있다. 민원 제기에 따라 안내 문구를 수정하려고 했으나 민간 사업자의 동의가 없어서 변경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지하철 안내 화면부터 유튜브 영상까지. 모든 콘텐츠의 1순위는 바로 사용자다. 글은 독자를 최우선으로 배려해야 하고, 영상은 시청자를 최우선으로 배려해야 하며, 지하철 안내 화면은 탑승객을 최우선으로 배려해야 한다. 서울 지하철은 제대로 못하고 있지만 (9호선은 잘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떤 종류의 콘텐츠를 만들더라도 이 원칙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언제나 독자가 1순위다.
참고 : 좀 고쳐줬으면 하는 한국 지하철, 와이고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