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도 띄어쓰기가 필요하다

한가로운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산이다.

– 소크라테스 –

 

고대인에게 독서는 눈으로 읽는 ‘묵독’이 아니라 입으로 소리내어 읽는 ‘낭독’이었다. 그렇다면 왜 과거에는 조용히 눈으로 하는 묵독이 보편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그 해답은 ‘띄어쓰기’에 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모든 글은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만, 과거의 책들은 단어들이 떨어지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따닥따닥 붙어 있었다. 이 같은 형태의 책을 ‘스크립투라 콘티누아’(Scriptura Continua)라고 한다. 그리고 단어 사이에 띄어쓰기가 없다는 것은 언어의 기원이 말에서 나왔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왜냐하면 말을 할 때는 단어마다 끊어 발음하지 않으며, 버벅거리지 않는 한 단어들이 술술 연이어 입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에 책을 쓰는 이들은 단어마다 띄어쓰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결코 하지 못했다.

 

그런데 단어 사이에 띄어쓰기가 없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다음의 글을 읽어보라.

 

“한가로운시간은그무엇과도바꿀수없는재산이다소크라테스”

 

수 십년 동안 읽기 훈련을 한 사람이라도 띄어쓰기 없는 글을 읽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위의 글을 소리내어 읽어보자. 묵독을 했을 때보다 소리 내어 낭독을 할 때 읽기가 편할 것이다.

만약 한 줄이 아니라 책 전체가 띄어쓰기가 없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렇듯 띄어쓰기가 없는 글은 묵독으로 읽기가 매우 힘들다. 공간 없이 빽빽한 글을 묵독으로 읽으려면 ‘추가적인 인지 부담’이 생기기 때문이다. 단어들을 의미에 맞게 끊어 읽느라 글의 내용에 푹 빠지지 못하고, 때로는 문장의 행로를 이탈해 지금 내가 어디를 읽고 있는지 모르는 지경에 빠질 수도 있다. 띄어쓰기가 없는 책 한권을 읽는 것은 아마 엄청난 고행이었을 것이다.

 

띄어쓰기는 기원전 1000년이 지나면서 서서히 등장했고, 13세기에 들어서야 띄어쓰기가 없는 ‘스크립투라 콘티누아’가 사라졌다. 사람들은 띄어쓰기를 사용하면서 서서히 묵독을 하기 시작했으며 힘을 덜 들이면서 더 많은 내용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고도의 집중을 통한 ‘깊은 읽기’가 가능해지면서 인류의 발전이 더욱 가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혹시 당신이 지금 도전하고 있는 일이 띄어쓰기가 하나도 없는 앞의 글과 같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는가? 열심히 여러 가지 일을 하지만, 중간에 끊기고 때로는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오는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모습을…….

 

 

네덜란드의 심리학자인 압 데익스테르후이스(Ap Dijksterhuis)는 한동안 어려운 도전에 대해 관심을 멀리한다면 오히려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밝혀냈다. 다시 말해 현재 몰입하고 있는 문제에서 조금 떨어져 있을때, 당신의 무의식적 사고가 새로운 시각과 무한한 창의성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열심과 몰입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도전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면 당신의 인생에는 띄어쓰기가 필요하다. 도전과 도전사이에, 문제와 문제 사이에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약 정신없이 달리고 있다면 조만간 ‘한가로운 시간’을 가져보자. 인생에 공간을 두는 것이다. 삶을 더 깊이 읽어낼 수 있는 띄어쓰기를 하자는 말이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의 명언처럼 당신의 한가로운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산이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