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아주 리마커블한 사진을 발견했다. 왜 리마커블한지는 일단 보면 안다. 사진부터 보자.
알록달록 이쁘게 생긴 이것들의 정체는 알약이다. 이름은 피모지(Pimoji). 알약(pills)과 이모티콘(emoji)의 합성어로, 알약을 직관적으로 구분할 수 있도록 다양한 모양을 만든 것이다. 만성 질환에 시달리는 노인분들이 매일 많은 약을 먹다 보니, 약을 먹었는지, 이게 무슨 약인지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시력이 나빠서 약에 쓰인 문구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피모지는 그런 분들이 쉽게 약을 복용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 디자인이다.
피모지를 디자인한 사람은 한국인 최종훈 씨로 이탈리아 디자인 어워드에서 상도 받았다고 한다. 눈만 호강하는 게 아니라 실용적인 기능도 갖추고 있어서 보자마자 ‘이건 대박이다. 진짜 아이디어 좋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알약을 비판하는 의견도 있었다.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 피모지 소식이 올라왔는데, 감탄하는 댓글 사이로 부정적인 의견이 달렸다. 단순히 깎아내리려는 게 아니라 생각해볼 만한 날카로운 비판이어서 읽으면서 헉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댓글에서 지적한 대로 뾰족하거나 각진 형태라면 병이나 다른 약과 부딪히며 깨질 수 있다. 약에서 중요한 게 용량이라, 심각한 단점이 아닐 수 없다. 댓글에는 적혀있진 않았지만, 뾰족한 형태라면 삼키기 힘들 수도 있다. 특히 근육이 약화된 노인 분들의 경우 뾰족한 약이 식도에 걸릴 수도 있다. 노인을 위한 디자인이 오히려 노인을 위협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피모지라는 아이디어가 완전히 무용지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동그란 모양을 유지하더라도 색깔은 다르게 할 수 있다. 똑같은 둥근 형태라도 구형에 가까울 수도 있고, 가로가 넓적할 수도 있다. 만약 비판을 수용하면서 아이디어를 발전시킨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알약 모양의 표준을 정하면 된다. 현재 알약 디자인은 제약회사마다 다르다. 그런데 여기에 가벼운 조건을 두면 어떨까? 예를 들어 심혈관 질환 약은 빨간색, 호르몬 관련 약은 노란색 등으로 표준을 정하는 것이다. 실제로 고혈압 치료제의 경우 하트 모양으로 출시되는 상품이 있다. 모양만 봐도 ‘혈관약’이라고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감성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마케팅 포인트라 예쁜 디자인은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예쁘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이를 현실에 적용할 때는 여러모로 따져봐야 할 것이 많다. 예쁜 디자인뿐만이 아니라 모든 아이디어가 마찬가지다. 사실 기막힌 아이디어는 누구나 떠올릴 수 있다. ‘와… 나 진짜 천재인 듯?’하고 생각했던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구현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래서 대박 아이디어로 성공하는 사람이 적은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가 아니다. 그 아이디어를 적용하는 것이 진짜 실력이다. 그럼 아이디어를 적용하는 실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생각만 하지 말고 실천해야 한다. 머릿속에 떠오른 걸 두 손으로 만들어 봐야 한다. 그렇게 만들고 나면 ‘아… 이건 못 쓰겠구나’하는 것들을 정말 많이 만날 수 있다. 대신 굉장히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생각을 구현하는 과정, 현실에서 마주치는 어려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 그래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실패하지 않으면 배울 수 없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이디어에 멈추지 말고 만들고 도전하는 삶을 살기 바란다. 그런 사람이 결국 세상을 바꾼다.
참고 : 이탈리아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한 한국인의 알약 디자인, 이토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