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XX에 3억 쓴 아저씨

게임이 중독이냐 아니냐는 여전히 논란 거리다.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게임 장애’ 항목을 질병으로 등재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게임 중독은 실재하지 않는다고 주장도 여전히 강하게 나오고 있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게임 중독이 맞냐 틀리냐를 가지고 논할 생각은 없다. 다만, 게임에 과몰입하는 것이 때로는 큰 후회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위는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어느 게이머의 글이다. 글쓴이는 게임에 무려 3억 원의 돈을 썼다고 한다. 무슨 게임에 그렇게 많은 돈을 쓰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절대 거짓이 아니다. 실제로 하나에 수억 원이나 하는 아이템이 거래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요즘에는 마치 도박처럼 돈을 계속 쏟아붓게 하는 ‘확률형 아이템’도 등장했다. 이에 맛들린 사람은 원하는 아이템이 나올 때까지 0.0001%도 안 되는 확률에 계속해서 돈을 쏟아붓는다고 한다. 그러다가 정신차리고 나면 하룻밤에 수백만 원을 날리기도 한다. 그게 계속되면 3억 원이란 돈을 쓰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이처럼 심각한 사례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다보니 게임을 악의 원흉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확률형 아이템’ 등 도박 요소를 가미하여 게임에 빠져들게 하는 게임 제작사의 행태에도 문제는 있다. 하지만 나는 더 큰 원인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게임에 과몰입 하는 가장 큰 이유, 그것은 현실에서 행복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Q) 아들이 게임 중독이라 걱정입니다. 어느 날 아들이 제 카드에서 100만 원이 넘는 돈을 몰래 과금했는데, 남편에게 말해 혼내 봐도 아이는 자기가 큰 돈을 마음대로 쓴 건 잘못한 거지만, 친구들한테 잘 보이려면 정말 그 아이템이 없으면 안 되는 거라고, 엄마 아빠가 그런 거 하나 못해주냐고 도리어 역정을 내는 거 있죠.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게임에 미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습니다.

 

A) 질문자님의 아이는 게임에 미쳐 100만 원을 쓴 바보나 의존자가 아니라, 100만 원을 쓰지 않고는 자신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좀처럼 실감할 수 없었던 슬픈 소년입니다. (중략) 질문자님의 관심이 향해야 할 곳은 게임에 탐닉한 아이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내가 귀한 것을 누가 좀 알아달라고 목놓아 외치고 있는 바로 그 슬픈 소년일 것입니다.

– 불교신문 상담 코너에서 발췌

 

나도 한때 게임에 미쳐 살았다. 돌이켜 보면 정말 후회스럽지만, 그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중고등학교 내내 공부에 시달려서 더는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수업이나 째고 허랑방탕한 생활을 이어갔다. 뭐라도 몰입할 일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게임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학고를 맞고 군대를 갔다. 복학해서 졸업 학점 채우려고 공부만 하다보니 게임은 자연스럽게 멀어져 갔다. 그래서 내가 게임 중독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겨우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안타깝게도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백수 생활이 길어지고 삶에 의욕이 없어지자 다시 게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게임도 각 잡고 하려면 쉬운 게 아니다. 상위 랭크에 올라가려면 짜증나는 일도 허다하다. 그러다 퍼뜩 깨달았다. 왜 내 삶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일에 매달려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든 뒤로 게임을 접었다. (완전히는 아니고, 육성형 게임만 모두 접었다. 단판제 게임만 친구들과 가끔 했다) 그리고 대신 글쓰기를 취미로 삼았다.

 

게임에 빠지는 사람들은 현실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깨지고 도태되어 더는 의욕이 생기지 않을 때, 게임은 좋은 위로 수단이 된다. 재미도 있으면서 노력에 대한 보상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보상이 매트릭스 속 허상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비단 게임 중독 뿐만이 아니다. SNS 중독도 마찬가지다. ‘좋아요’와 ‘팔로우’는 현실의 인간관계와 다르다. 모니터를 끄면 사라지는 허상이다.

 

게임에 3억 원이나 쓴 아저씨는 가족들과 8만 원어치 고기를 먹으며 더 큰 행복을 느꼈다. 게임 속 아이템은 허상이지만, 눈 앞의 가족은 실재하기 때문이다. 진짜 행복은 3억 원어치 아이템이 아니라 8만 원어치 현실에 있었다. (고기는 인정할 수밖에)

 

게임은 스트레스를 풀고 즐거움을 얻기 위해 즐기는 취미여야 한다. 취미로 삼기에는 정말 좋다. 비용도 적게 들고 위험하지도 않다. 즐길 거리가 끊임 없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게임에서 삶의 의미와 존재 가치를 찾으려 하면 안 된다. 그러면 현실을 잊고 과몰입하게 된다. (프로게이머나 전문 리뷰어라면 또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 뒤에 남는 것은 아마 후회뿐 아닐까?

 

참고 : 이토랜드, 리니지m 중독자의 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