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사귀는 것만큼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인생은 ‘운칠기삼’이다. 정말 많은 점이 운에 좌우되지만, 의외로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분이 있다. 친구는 대부분 운으로 만난다는 사실이다. 내가 1학년 5반에 8번째 줄에 앉는 것은 순전히 운이다. 그리고 같은 반에서 가까이 있는 아이들 혹은 성향이 비슷한 부류와 자연스럽게 친구가 된다. 하지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친구 관계를 능동적인 선택을 통해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분명 각자 호불호가 있기 때문에 의지도 관여했겠지만, 그것은 내가 사는 지역과 내가 배정받은 학교라는 거대한 테두리 안에서 작용하는 매우 지엽적인 의지일 뿐이다. 그래서 친구를 잘 사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리’하는 일이다. 만남은 운에 크게 영향받지만, 관계의 유지는 철저하게 우리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친구를 정리한다는 말이 조금 매정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다. 우리는 보통 언제 친구를 만나는가? 좋게 말하면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만나고, 조금 부정적으로 말하면 시간을 때우려고 만나기도 한다. 따라서 친구를 정리하는 것은 능동적인 습관을 정리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당연히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면 가장 자주 보는 친구에게는 정말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보통 나쁜 습관은 무기력이나 게으름과 관련이 많다. 그런데 친구를 만나는 것은 상당한 에너지를 소비하는 습관이다. 그런데 그 관계가 내 인생에 나쁜 영향을 준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과감하게 정리하는 것이 맞다.

 

사실 학창 시절에는 가치관 정립이 덜 되었기 때문에 그냥 친구들과 놀면 마냥 즐겁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 고유의 가치관과 목표가 생긴다. 나이가 들면서 학창 시절 친구들과 크게 싸우는 일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정말 다시 보지 않을 정도로 크게 다투는 경우는 가치관의 충돌이 일어난 경우이다. 하지만 대부분 싸운 이유도 모른 채 서로를 비난하기 바쁜 경우가 많다. 섭섭한 일이지만, 결국 정리해야 하는 친구 1순위는 내 가치관을 존중하지 않는 친구이다. 가치관은 삶의 기준이며, 정체성의 중심축이다. 그런 친구의 가치관을 무시하고 부정한다는 것은 사실 친구가 아니라 적에 가깝다. 똑같은 가치관을 소유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친구라면 다른 친구가 가진 삶의 기준에 대해 존중해야 한다. 존중 없는 관계는 반드시 끊어지기 마련이다.

 

친구는 가족 다음으로 가까운 관계일 것이다. 어떤 친구는 가족 이상으로 가까운 관계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더더욱 무작정 사귀면 안 된다. 특히 가까운 친구에 대해서는 더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혹자는 이런 의견이 너무 이해타산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만약에 친구가 나만 존중해주기를 바란다면 분명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관계는 언제나 쌍방향 소통이다. 내가 친구를 그렇게 생각해보는 만큼 나는 친구에게 어떤 존재이고, 또 친구의 꿈과 목표를 알고 있으며 그것을 존중하고 있는지, 더 나아가 진짜 친구로서 응원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그렇게 친구라는 관계에 대해 1cm만큼만 조금 더 깊게 파고 들어가는 고민을 해본다면, 친구 그리고 자신에 대해 더 제대로 이해하게 되고, 더 깊은 우정을 쌓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