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넘어서야만 했다

 

 

콤플렉스는 언제나 나를 따라 다녔다. 학교에서는 나보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 학교 밖에서는 외고 과학고를 다니는 친구들. 대학교를 입학 했을 때는 서울대, 카이스트 같이 가장 입학하기 어려운 곳에서 재학 중인 친구들. 대학원을 입학 했을 때는 MIT, Standford 같이 세계 최고 명문대에서 연구하는 사람들. 쉽게 콤플렉스의 그늘에서 벗어나오지 못했다. 항상 머리 위에는 열등감이 만들어낸 유리 천장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역량 안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퇴보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열등감은 언제나 나보다 좋은 학업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나를 절로 주눅들게 했다. 대학원에 입학하니 각국에서 공부로 이름 좀 날렸던 친구들이 꽤 있었다. 심지어 나보다 나이도 어리지만 나보다 똑똑하고 많이 아는 친구들도 많았다. 대학원에서 첫 퀴즈를 보았을 때 나는 사실 거의 꼴지를 했다. “졸업은 할 수 있을까?” 불안감을 넘어선 만성 두통이 찾아왔다. 매일 같이 두통약을 먹으면서 공부를 했다. 그러나 우연치 않게 콜라 한 캔이 내 20년도 넘는 잘못된 고정관념에 금을 내주기 시작했다.

 

정확히 몇 시 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늦은 밤이었다. 지도 교수님과 학교 복도에서 우연치 않게 마주쳤다. 어디를 가시는 여쭤보니깐 콜라 한 캔을 자판기에서 뽑으러 간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도 목도 마르고 해서 같이 가서 한 캔 마셔야겠다고 생각해서 따라갔다. 그러면서 교수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지도교수님은 학부부터 박사학위 그리고 박사 후 과정까지 최고들이 갈 수 있는 엘리트 코스만을 계속 달려왔다. 그래서 나는 항상 교수님을 다른 부류의 사람으로 생각했었다. 그냥 일종의 태어날 때부터 똑똑한 천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날 교수님이 콜라는 마시는 이유를 들어보니 내 생각이 정말 바보 같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앞으로 두 시간 더 일을 하고 가셔야 하는데 너무 집중력이 떨어져서 도저히 업무 효율이 안나와서 의도적으로 “당”을 보충하셔서 마지막 두 시간을 밀도 있게 연구하시고 집에 가실 계획이라고 하셨다. 교수님은 박사과정 시절 밤샘 연구를 할 때 마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한 번 정도는 콜라 한 캔 마시면서 기분전환도 하고 당 충전을 해서 순간의 무기력감과 산만함을 이겨내고 다시 한 두 시간 정도는 더 연구나 공부를 더 하실 수 있다고 하셨다. 교수가 된 지금도 그 습관이 남아서 힘이 들 때면 여전히 콜라를 마신다고 하셨다.

 

그 날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정말 나는 최선을 다하고 한 시간이라도 더 공부를 제대로 하기 위해 노력해 본적이 있는가? 아니었다. 그냥 최선을 다했지 나를 넘어서 보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었다. 내가 스스로 정해 놓은 한계 안에서만 최선을 다했었다. 나보다 내가 뛰어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중에는 정말 선천적으로 머리가 좋았던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나보다 더 꾸준히 그리고 더 밀도 있게 노력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또 교수님은 나에게 이런 조언도 해줬다. “세상은 모든 사람들은 서로 다른 다양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 너무 타인과 스스로를 비교하지 말아라. 사실 모두가 누군가를 부러워한다. 또 영준이 너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소통 능력과 일을 추진하는 능력이 아주 강하다. 내가 볼 때 세계 최고 수준이다.” 맨 처음에는 공부를 못하는 나를 위한 일종의 위로라고 생각하셨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나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나보다 시험을 잘 보던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공부를 잘하면 시험을 잘 보겠지만, 우리 인생에 있어서 시험을 위한 공부가 전부는 아니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렇게 나는 뭔가 손에 잡히는 것은 없고 여전히 두 번째 퀴즈를 보았을 때도 하위권이었지만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처음으로 제대로 품기 시작했었다.

 

그렇게 낙제하지 않을 정도로 겨우 1학기 코스웍을 통과했다. 그리고 계속 실험을 진행했다. 그리고 나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교수님이 준 프로젝트가 아닌 내가 좋은 논문을 빨리 쓸 수 있을 것 같은 분야에서 추가적으로 실험을 더 해서 정말로 우리 연구실에서 처음으로 좋은 저널을 논문 게재를 성공했다. 그리고 그 페이퍼는 현재 200번 이상 인용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2년 반 동안 내가 연구 분야에서 좋다고 여겨지는 저널에 5개의 논문을 일 저자로 게재했다. 전세계에서 연구하는 그 누구랑 비교해도 손색없는 연구결과였다. 교수님 조언처럼 실험 진행 시에는 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에 공부는 조금 못했지만 소통 능력이 강했던 나는 누구보다 더 다른 사람들과 협업해서 빠르고 제대로 된 실험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만약에 내가 계속 시험이라는 프레임에 속박된 상태로 나는 원래 안 되는 사람 그리고 부족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가두었다면 아마도 나는 박사학위를 받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부족했던 부분을 인정하고 또 내가 잘하는 부분을 더 잘 활용해서 내가 만든 바보 같은 틀을 깨고 진정 나다운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런 성장의 경험을 거름 삼아서 나는 삼성에서도 즐겁게 회사생활을 했고, 또 영어를 전공하지 않은 비전문가이지만 단어장을 출간하여 종합베스트 순위 1위도 해보고 또 일본과 대만에 수출도 할 수 있었다.

 

스스로 잘 파악하고 꾸준히 제대로 노력한다면 불가능이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