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담풍이라고 해도, 너희들은 바담풍이라 하여라.” 옛날에 ‘ㄹ’ 발음을 하지 못하는 훈장님이 있었다. 훈장님은 서당에서 학동들을 가르칠 때 ‘바람풍(風)’을 설명하면서 화를 냈다. 제자들이 자꾸 ‘바담풍’으로 따라했기 때문이다. 훈장님은 계속 ‘바람풍’했지만 ㄹ발음이 안돼 그의 입에선 ‘바담풍’이라고 했고, 제자들은 더 소리높에 ‘바담풍’이라고 했다. 어릴 적 종종 들었던 이 우스개 사연에서 우리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인 ‘내로남불’의 메시지를 본다. (아, 언제부터인가 ‘내로남불’은 마치 먼 옛날부터 있었던 ‘사자성어’격이 된 것 같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이런 내로남불 사연으로 하소연을 하는 사례들이 많다. 이중 독서실에서 있었던 일 하나를 소개할까한다.
이 사례에서처럼 ‘내로남불’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은 무슨 이유에서 사람들에게 내뱉는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일까. 특히 정치인들 사이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각종 보도 등에 인용된 전문가들의 말에 따르면, 동시에 여러 지역구를, 기업 경영인은 다양한 주주를 만족시켜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고위직 인사들이 청중에 따라 언행을 달리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어느 정도는 있다고 봤다. 그러다 보니 이들이 가족 또는 자기 자신에 대해 ‘원칙의 예외’를 요구하는 상황이 될 경우 “‘난 원래 모순된 여러 요구를 들어줘야 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해 스스로 일탈을 합리화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의 예민보스 공시생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심리학에선 ‘도덕 면허(moral licensing)’ 이론이란 게 있다. 공개적으로 이타적·윤리적 언행을 과시하고 나면 사생활에서 이를 잘 지키기보다는 이익의 손실을 보상하려는 욕구가 커진다는 이론이다. 조금 좋은 일을 하고 나면 과거 그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기부나 헌혈, 봉사를 할 필요를 덜 느낀다고 한다. 소위 ‘도덕 통장’에 돈이 많이 쌓이면 빼서 쓰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이미 착한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이 정도 나쁜 일은 괞찮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아마 이 공시생도 깨어있을 때 자신은 그 누구보다 철저하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생각, 낮잠을 자면서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코골이에 대해서는 ‘이 정도 쯤이야, 내가 일부러 피해주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감히 추측해본다.
아무쪼록 이런 셀프 ‘도덕 면허’의 기저에는 ‘나는 나 자신을 아주 잘 안다’는 착각이 있다. 쉽게 말에서 ‘메타인지’가 낮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내로남불을 극복하는 방법은 매일, 매순간 반성적 사고를 바탕으로 자신과의 싸움에서 치열하게 이겨나가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어떤 부분에서 불합리한 부분을 ‘합리화’하고 있나?’
참고 <여경 준비하는 독서실 예민보스> 웃긴대학(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