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타이밍이 언제일까? 나는 헤어지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시작이 좋지 않았어도 헤어지는 순간이 훈훈하면 훈훈한 관계로 남는다. 반면에 추잡하게 헤어지면 그 관계는 미움만 남는 관계가 된다. 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만 해당하지 않는다. 조직과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다. 다음은 어느 퇴역 대위가 겪었던 이야기다. 이렇게 처참한 마무리가 또 있나 싶을 정도다.
글쓴이는 파병도 다녀오고 대통령 경호실과 국정원에서 표창까지 받은 훌륭한 군인이었다. 그런데 표창까지 받은 군인에게 전역식도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하물며 일반 병사도 전역한다고 하면 온 소대원이 나와서 축하해주는데, 18년간 근무한 사람에게 이런 푸대접이라니 정말 상식 밖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군인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저 군인이라는 이유로 식당에서 밥값을 대신 계산해주는 사람도 있고, 파병 갔다 돌아오면 온 마을이 환영해주기도 한다. 길을 가다가도 사람들이 “Thanks for your service(당신의 헌신에 감사드립니다).”라고 악수를 청한다고 한다. 이러니 군인들의 자부심과 사기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의 군인 대우는 여러모로 처참하다. 물론 과거에 군인들이 안 좋은 행실을 보여서 이미지가 나빠진 것도 있지만, 진짜 문제는 군대 내부에서조차 대우가 처참하다는 것이다. 일반 병사야 싼값에 부려먹는 일꾼 수준이고, 직업 군인들을 위한 대우도 영 별로다. 이런 상황에서 애국심을 가지라고 요구하는 게 어찌 보면 어이가 없는 일일 수밖에 없다.
사실 나도 전역할 때 위 글쓴이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 원래 전역자가 있으면 사열도 하고 축하도 하는데, 하필 내가 전역하는 날에 일이 터졌다. 인사 담당 계원이 전역자 파악을 실수해서 결국 전역식도 환송회도 없이 쓸쓸히 나와야 했다. 그때 중대장 태도도 영 별로였는데, 일이 빵꾸난 것만 노발대발하고 나한테 섭섭하지 않냐고 한 번 물어보지도 않더라. 집에는 안 보내주고 계속 애들만 갈궈서 1시간이 넘도록 행정실에서 멀뚱멀뚱 서 있어야 했다.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니긴 하다.
혁신이 필요한 조직으로 항상 거론되는 곳이 바로 군대다. 조직 특성상 보수적일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여러 병폐를 ‘원래 그랬다’라는 이유로 그대로 안고 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시스템만 바꾼다고 조직의 혁신이 이뤄지지는 않는다. 실제로 선진 병영이니 하는 말로 군대를 바꿔보겠다는 많은 시도가 쓸모없는 결과로 귀결되는 걸 지켜볼 수 있었다. 진짜 혁신이 이뤄지려면 조직 밑에서부터 자발적인 변화의 의지가 솟아야 한다. 그것은 곧 자부심과 사기다. 군인이라서 억울한 게 아니라 군인이라서 당당한 문화가 생겨야 혁신도 추진력을 얻는다. 부디 우리나라 군대가 그런 자부심을 얻어서 훌륭한 조직으로 탈바꿈할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 : 오늘 전역인데 부대에서 연락이 없다, 루리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