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싸를 빼앗아간 유튜버들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

 

요즘 인터넷에서 ‘빼앗긴 아싸’가 논란이다. ‘아싸’란 아웃사이더(outsider)의 줄임말로 ‘혼자 노는 사람’이란 뜻으로 쓰였다. 원래 대학생 사이에서 과 활동이나 동아리 활동 없이 혼공, 혼밥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지금은 초중고는 물론 30대까지 퍼지면서 널리 쓰이는 말이 되었다. 반대말은 ‘인싸’로 ‘친화력이 높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유튜브에 브이로그를 올리는 사람들이 아싸를 자처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이유인즉슨, 브이로그까지 찍을 정도로 외향적인 사람이 무슨 아싸냐는 것이다.

 

 

 

 

 

 

보다시피 ‘아싸’라는 사람들의 모습이 전혀 아싸답지 않다. 저렇게 잘생기고 예쁘면 아싸가 되고 싶어도 못 된다. 주변에서 가만두질 않으니까. 심지어 이들은 조회수도 몇만 회씩 나올 정도인데, 이러면 인싸 중에서도 초특급 인싸라고 해야 맞다.

 

반면 진짜 아싸가 올린 유튜브도 있는데 조회수가 겨우 몇백 회에 지나지 않는다. (이게 아싸지…) 이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빼앗긴 아싸’라고 할 수 있겠다. 어째서 아싸가 유행이 된 걸까? 사실 아싸는 근래 안 좋은 의미로 쓰였다. 말이 좋아 혼자 노는 사람이지 실상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도 어울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처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게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다가 자조적인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싸 문화다.

 

 

이런 자조적인 문화는 그 유래가 깊다. 당장 아싸 문화가 있고, 가까이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부터 멀게는 패닉의 ‘달팽이’까지 시대를 풍미한 유행가도 있다. 이들의 특징은 우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다루어 오히려 위로를 끌어내는 데 있다. ‘나만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사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하며 어깨를 으쓱하고 다시 오늘을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반면에 지금 아싸 열풍이 ‘빼앗긴 아싸’ 소리를 듣는 이유는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싸의 핵심은 외로움과 비참함인데, 친구 만날 거 다 만나고 예쁘고 잘생긴 데다 심지어 유튜브에서도 잘 나가는데 어떻게 공감할 수 있겠나. 그래서 한 익명 커뮤니티에는 이런 ‘가짜 아싸’들의 행태를 꼬집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박완서의 1975년 작 <도둑맞은 가난>에는 홀로 판자촌에 사는 여공이 등장한다. 그녀는 도금 공장에 다니는 가난한 사내와 동거를 시작하는데, 알고 보니 그는 아버지가 가난을 경험하라며 빈민촌에 보낸 부잣집 대학생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난 뒤 여공은 이렇게 말한다. “부자들이 가난을 탐내리라고는 꿈에도 못 생각해 본 일이었다… 나는 우리가 부자한테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깜깜한 절망을 가난을 도둑맞고 나서 비로소 느꼈다.” 아마 초특급 인싸들이 아싸라고 떠드는 꼴을 본 아싸가 느끼는 감정이 이와 비슷하지 않나 싶다.

 

인싸와 아싸를 가르는 것은 단순한 성격차이가 아니다. 위 익명글에서 언급했듯 가난이나 외모 같은 문제도 엮여있고, 근본적으로 자존감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이것들은 씻어내고 싶어도 쉽게 씻어낼 수 없다. 마치 <기생충>에서 언급한 반지하 냄새처럼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정말로 비참한 현실일 수도 있다. 그런 근본적인 고통을 무시한 채 아싸를 코스프레하는 것은 진짜 아싸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좋게 보기 힘든 눈치 없는 행동이 아닐까?

 

참고 : 아싸 브이로그 논란… 서울대숲 반응, PGR21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