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순수하다. 하지만 그 순수함이 때로는 날카로운 논리로 변하기도 한다. 어른들은 암묵적 합의를 통해 서로에게 괴로운 질문을 하지 않는다. 일종의 문화적 금기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니다.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아이의 한마디가 재미있으면서도 동시에 어른의 가슴을 너무 아프게 찔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과연 우리는 무엇이 된 것일까? 어렸을 때는 되고 싶은 무엇이 많았는데, 어 날 돌아보니 먹고사니즘에 치여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닌 세파에 휩쓸려 어디론가 떠내려가는 느낌이다.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막연하게 열심히 살다가 어느 순간 방황의 소용돌이에 빠지면 생각보다 빠져나오기 힘들다. 열심히 만큼 중요한 것이 ‘왜?’이다.
당연히 먹고 살려고 일하지만, 왜 먹고 살아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총동기 이론에서는 6가지 동기를 제시한다. 긍정적 동기는 즐거움, 의미, 성장이다. 그리고 부정적 동기는 경제적 압박, 정서적 압박, 그리고 타성이다. 만약 ‘왜?’에 관해 질문하지 않는다면 동기에 즐거움, 의미, 성장이 들어올 자리는 없다. 그렇게 되면 지속 가능한 동기가 생기질 않는다. 삶이 고통이 되는 것이다.
나는 운이 좋게 덕업일치를 이뤘다. 하지만 예전에 직장을 다닐 때는 일하는 것이 내 인생의 목적 자체는 아니었다. 연봉이 높기 때문에 대기업에 취업했었다. 그래도 디스플레이 개발자로서 내가 만약에 개발에 성공하면 이 제품이 전 세계로 퍼진다는 확실한 ‘의미’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회사에서 단순한 월급 중독자가 아니라 일을 통해 무언가 확실히 배우며 성장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회사에 다니는 것이 생각보다 괜찮았다. 만약 저 조카가 당시에 나에게 뭐가 되었냐고 물었다면, 세계 최고 디스플레이 회사의 개발 2실 책임 엔지니어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욱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일 자체가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의미 있는 임팩트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 내 확고한 목표이다. 그렇기에 기부하는 것도 즐겁고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도 너무 즐겁다. 그렇게 나는 열심히 하면서 늘 ‘왜?’라는 질문을 했다. 내가 한 질문은 나를 괴롭혔지만, 동시에 나를 성장시켰다. 그래서 나는 확실하게 내가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도 꼭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서 한번 사는 인생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완성하시기를 바란다.
참고 <이모는 커서 뭐 될거야?>, 오늘의 유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