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전교 2등이라는 학생의 글이 올라와 화제를 모았다. 단, 글의 주인공은 전교 2등인 본인이 아니라 그 동생이었다. 본인은 전교 2등이라 집에서 집안일 하나도 안 하는데, 동생은 그런 대우를 받지 못해 불만이라는 내용이었다. 동생의 성적은 450명 중 380등으로 하위권 수준. 심지어 열심히 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과연 학교 성적으로 자식 대우를 차별하는 게 옳은 일일까?
베스트 댓글은 동생 편을 들어주는 이야기가 많았다. 공부 못한다고 안 좋게 대우하는 것도 좋지 않고, 반대로 공부 잘한다고 기본적인 할 일도 안 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다. 반대로 언니 편을 들어주는 댓글도 있었다. 성적으로 차별하는 게 아니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대우해주는 거라는 의견도 있고, 열심히 공부했으니 그 대가를 인정받는 게 당연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과연 어느 쪽이 맞는 말일까? 그에 대한 답을 내기 전에 가족이 아닌 비즈니스 조직을 살펴보자. 대니얼 코일은 책 <최고의 팀은 무엇이 다른가>에서 다음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했다. “왜 어떤 팀은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최고의 성과를 내고, 어떤 팀은 최고의 인재가 모여 형편없는 결과를 내는 걸까? 뭉칠수록 위력을 발휘하는 팀은 무엇이 다른가?” 그는 소위 잘나가는 기업들의 조직 문화를 연구했고 그 결과 팀워크에서 중요한 요소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안전하게 이어져 있다는 신호가 소속감을 강화하고 케미를 불러일으킨다.”
팀워크가 좋은 조직은 조직원들에게 끊임없이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낸다. ‘우리는 하나이다. 우리는 당신을 환영하고, 우리 안에서 당신은 안전하며, 당신이 원한다면 양보하겠다.’ 이런 신호를 끊임없이 주고받았다. 그 결과 격의 없는 소통을 나누고 훌륭한 성과를 거뒀다. 반면에 실수가 벌어지거나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이를 엄중하게 단속하는 조직은 악순환에 빠졌다. 강한 처벌이 소속감을 약화시켰고, 그 결과 계속 실수와 잘못이 이어져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았다.
하물며 회사 조직에서도 이처럼 안전하다는 신호가 중요한데, 가족은 오죽할까? 가족은 한 사람이 가진 최후의 보루다. 어디에도 소속할 수 없고,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가족에게는 환영받고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안정감은 사람의 성격에만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다. 소속감이 높은 조직이 좋은 성과를 보여주듯,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은 공부나 일에서 좋은 성적을 보인다.
더 열심히 하고, 더 좋은 성적을 내는 언니를 대우해주는 게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다만, 이를 보는 동생이 ‘자기는 입양한 거냐’라고 느낄 정도라면 현재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동생은 현재 최후의 보루가 사라진 느낌일 것이다. 안전그물 없이 세상이라는 외줄을 건너야 하는 기분일 것이다. 과연 그런 마음에서 좋은 성적이 나올 수 있을까? 성적이 안 나와서 잘해주지 않는 게 아니라 잘해주지 않아서 성적이 안 나오는 걸지도 모른다.
흔히 잘 나가는 조직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가족 같은 회사’, ‘가족 같은 사장님’ (물론 그 말이 밑에서 나와야지 위에서 나와봤자…) 그런데 정작 가족이 그런 느낌을 못 주면 안 되지 않을까? 공부 잘하는 언니에 비해 이래저래 대우를 못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가족의 일원이고, 어떤 일이 있어도 사랑받는다는 느낌은 받아야 한다. 그게 바로 가족이기 때문이다.
덧. 어찌 보면 가족이라는 최후의 보루가 존재한다는 것도 큰 축복이 아닐까 싶다. 세상에는 그런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을 떠올리며 우리가 해야 할 생각은 ‘그들에게도 가족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라는 마음이다. (난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주위를 둘러보면 그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많다. 그렇다고 요청하지도 않은 도움을 억지로 줄 필요는 없다. (그건 민폐고) 단지 지나가는 식이더라도 사람의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는 거면 충분하다. 그래서 이타적이고 친절하게 살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고 : 전교 2등이면 집안일 면제 인정vs노인정, 네이트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