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러운 상황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길을 걷다가 벽에 부딪혀 팔이 부러지거나 청소하다가 모서리에 새끼발가락을 찧는 등 고통은 불쾌함을 일으킨다.
그러나 때로는 고통도 즐거울 수 있다. 고통은 쾌락의 반대말이 아니다. 2012년 옥스퍼드 대학교의 실험에 따르면 같은 자극도 상황에 따라 고통스럽게도 인식되고 즐겁게도 인식된다는 가설을 확인했다.
실험 참가자는 두 그룹으로 나뉘어 피부에 열 자극을 받았는데, 첫 번째 그룹은 고통스럽지 않은 따뜻한 자극을 받고 잠시 후에 가벼운 통증을 일으키는 중간 강도의 열 자극을 받았다.
두 번째 그룹은 중간 강도의 자극에 이어 더 센 통증을 일으키는 높은 강도의 열 자극을 받았다. 실험 결과, 첫 번째 그룹은 중간 강도의 열 자극을 불쾌하고 고통스럽게 평가했다.
그러나 두 번째 그룹은 중간 강도의 열 자극이 높은 강도의 열 자극에 비해 상대적으로 편하게 여겼고, 안도감을 느꼈다. fMRI 결과를 비교한 결과, ‘기분 좋은 통증’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정서와 관련된 뇌 영역의 활성화가 감소하고 보상과 관련된 뇌 영역의 활성화가 증가해 척추에서 오는 통증 신호의 강도가 약해졌다.
뇌의 보상 체계는 큰돈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 돈을 따거나 손실을 조금만 볼 때와 같이 주어진 상황에서 더 나은 결과를 얻을 때 활성화된다.
보상 체계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실험 참가자들은 높은 강도밖에 선택지가 없을 때, 상대적으로 강도가 낮은 중간 정도의 자극을 받으면 그 자극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심지어 기분 좋은 자극으로 느꼈다.
똑같은 자극이지만 상황에 따라 고통스럽게도 느껴지고, 편안하고 즐겁게도 느껴질 수 있다. 통증을 경험하는 상황이 달라지면 같은 통증이라도 부정적인 의미에서 긍정적인 의미로 전환될 수 있다.이것을 ‘쾌락 전환’이라고 말한다.
쾌락 전환은 지금껏 우리가 알던 통증에 관한 사실과 달라 보인다. 통증이란 아픈 것이고, 통증을 유발하는 원인이 무엇이든 그 원인을 피하도록 행동을 바꾸는 경험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뇌는 신기하게도 우리가 경험하는 통증이 어떤 상황에서 덜 고통스러운 선택이면 그 통증을 기분 좋게 인식하고 심지어 더 추구하도록 유도한다.
고통을 느끼는 상황은 다양하다. 매운 고추를 먹고 혀에 통증을 느끼고 신체적 고통을 감당하면서까지 마라톤 완주를 하는 등 적극적으로 고통을 추구할 때가 많다.
통증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반응이고, 이 과정에서 우리의 행동에 동기를 부여한다. 인간은 성장과 생존을 위해 보상을 추구하고 벌을 피하는 방식으로 행동한다. 또한 인간의 몸은 평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균형을 잡는다.
평형 상태를 이끄는 자극은 기분 좋게 느끼고 평형 상태에서 멀어지게 하는 자극은 불쾌하게 느낀다. 무더운 여름에 얼음주머니를 이마에 갖다 대면 짜릿하지만 추운 겨울이라면 괴롭게 느낄 것이다.
고통을 쾌감으로 바꾸려면 어떤 자극이 그 사람에게 보상과 도움이 된다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 몸을 평형 상태로 이끄는 자극일수록 그 자극이 가져다주는 보상과 쾌감도 더 크게 느낀다.
어떤 자극을 고통스러운 느낌으로 해석할지, 기분 좋은 느낌으로 해석할지는 미래의 보상이나 위협을 어떻게 인식하는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두려움이나 위기감이 클수록 고통에 대한 불쾌감도 커진다. 특히 약간의 고통을 감수해야만 어떤 보상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 고통을 감내할 때가 많다.
고통은 보상의 쾌감까지 강화할 수 있다. 쾌락과 고통 간의 관계는 사회 문화적 영향을 고려하면 더 변덕스러워진다. 동기부여 명언으로 자주 쓰이는 말을 살펴보면통증과 쾌락에 관한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다.
“고통은 나약함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이다.”
“오늘의 아픔은 내일의 강인함”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인간의 행동을 살펴보면 쾌락은 모두 좋은 것이고 고통은 모두 나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우리는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는 존재가 아니다. 보상을 추구하고 벌을 피하는 존재다.
보상은 우리 몸을 보호하고 생존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한다. 우리가 고통이나 쾌락을 경험할 때 물리적 감각 입력과 몸의 내부 균형, 잠재적 보상과 위협에 대한 인식이 결합하여 통증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지, 부정적으로 받아들일지 결정한다.
의식적 자각은 이 결정에 관여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공원에서 산책하다가 목줄을 매지 않은 큰 개에서 다리를 물렸다고 가정해보자. 그 사람은 훨씬 더 중요한 내적 요인에 초점을 맞추느라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개와 맞서 싸우든지 죽기 살기로 도망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처럼 동기 부여와 관련되는 갈등에 직면했을 때, 통증보다 생존에 당장 더 중요한 문제가 있으며 통증이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난다.
고통과 쾌락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사회적 배경에 따라 연결되기도 한다. 고통과 쾌락은 유연하고 쓰임이 다양하다. 뇌가 우리 편에서 무엇이 최선인지 판단하는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보여준다.
고통스러운 자극은 위협, 불확실성, 공포와 짝지어지면 참기 힘든 느낌이 되고, 안전, 성적 흥분, 보상이 기대되는 상황에서는 기분 좋은 느낌이 된다.
고통을 당한 사람이 처한 상황과 사회에서, 성장과 생존에 도움을 주는 수단이라는 의미가 전달되면, 고통은 견딜 만한 가치가 생기고 즐길 수도 있는 것이 된다.
참고: 《고통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