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에게 지루함은 질병처럼 퍼져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싫증을 느끼고 무엇을 해도 만족하지 못한다. 퇴근 후 소파에 누워 재미있는 영화를 봐도 공허하다. 인생 사는 것 자체가 재미없다.주변에서 책을 읽거나, 달리기를 하거나 친구를 만나는 등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지만 그 무엇도 시작할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대부분 지루함을 의지 문제로 여긴다. 게으르고 의지가 나약하기 때문에 매일 무의미한 일과를 보내며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루함은 심리적인 반응이다. 인생에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막연히 불안할 때 지루함이 찾아온다. 뭔가를 하고 싶은 욕구는 있지만 그 욕구가 지금, 이 순간에 바로 할 수 있는 것과 연결되지 못한다.지루해진 사람은 정신이 허전하다는 불편한 감정 때문에 부담을 느낀다. 무슨 일을 하든, 무슨 생각을 하든, 무슨 감정을 느끼든, 무슨 상상을 하든, 지금의 인지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비슷한 두 힘이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하나는 뭔가의 부재고 다른 하나는 그 부재를 채우고 싶은 충동이다. 그래서 지루함을 느낀 사람은 허전함을 채우고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는 뭔가를 끊임없이 찾아다닌다. 마치 옷 가게에서 어울리는 옷을 찾을 때까지 계속 입어보는 것과 같다. 지루해진 사람은 실현할 수 있는 욕구를 찾을 때까지 안심하지 못한다. 계속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목표를 찾지 못하면 지루함은 길어진다. 쇼펜하우어는 이런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묘사한다.
“우리는 이럴 때 자신을 행운아라고 여긴다. 아직 바라는 것이 있을 때, 얻으려고 애쓰는 것이 있을 때, 끊임없이 욕구가 채워지고 그 만족감이 새로운 욕구로 계속 이어질 때, 그리고 무력하게 만드는 지독한 지루함과 대상도 없는 맥 빠진 갈망, 지긋지긋한 나른함 속에서도 그 과정이 흔들리지 않고 계속 반복될 때가 바로 그런 순간이다.”
지루함은 골치 아픈 딜레마다. 뭔가를 하고 싶고 거기에 몰두하고 싶지만 만족할 만한 활동은 전혀 없다. 이런 상황을 ‘지루함의 난제’라 부른다. 잠을 자거나 무관심해지거나 평정심을 길러서 욕구 자체가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약해지면 지루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에 만족하게 될 것이다. 아니면 어떤 일이 자신의 관심을 끌고 욕구를 채워줄 때까지 그 일을 계속하도록 스스로 강요할 수도 있다. 내적으로 만족할 때까지 밤새 게임을 하고 드라마, 영화를 몰아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지루함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은 세상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느낌이다. 우리는 세상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을 때 최선을 다한다. 즉, 인지능력을 발휘하고 생각을 표현하며 주변을 통제할 수 있을 때 의욕을 되찾는다.
지루함을 극복하려면 무엇에도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지루함을 느낄 때 회피할 행동을 찾으려 하지 말고 지금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관심의 방향을 내면에 돌리면 무의미한 활동을 하게 만드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마음을 살피다 보면 지루한 상황에 덜 예민해지고 지루함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견뎌야 한다. 이 시간은 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해야 만성적인 지루함에서 벗어난다.
지루함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다. 지루함을 해결하려면 당신의 욕구와 목표를 명확하게 해주는 활동을 찾아라. 당신에게 소중하고 중요한 것을 목표로 삼아 추구하라. 어떤 일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일 자체가 목적에 되게 하라. 깊은 관심을 쏟게 하는 활동을 주변에서 찾아보라.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고 확장하기 위해 행동하라. 그리고 온전히 참여할 수 있고 당신이 누구인지 표현하는 활동을 찾아라. 지루함은 인생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우리가 할 일은 자신의 평범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기꺼이 시간을 견디고 일상을 마주할 때 지루함을 이길 수 있다. 시인 브로드스키는 말한다.
“유한한 존재가 되어야 생명, 감정, 기쁨, 두려움, 연민 등으로 삶이 채워집니다. 열정은 하찮은 존재가 갖는 특권입니다.”
시간의 부족함을 깨닫고 매 순간 열정적으로 참여한다면 지루함을 확실하게 해소할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지루함이 느껴진다면 심호흡하고 스마트폰 알람, 타인의 시선, 심리적 압박감 등 주의력을 통제하는 외부 자극을 몰아낸 다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제대로 몰입할 행동을 하자.
지루함을 덜어줄 만병통치약은 없다. 지루함은 해야 할 일을 알려주지 않는다. 지루함은 답을 요구한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참고: 《지루함의 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