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뚱뚱하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그 실상은 생각보다 끔찍하다는 게 『비만백서』를 읽고 느낀 결론이었다.
책에는 우리 사회가 비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저자는 공항에서 비행기를 오래 기다려야 하자 근처 카페에서 음식을 사 왔다. 치킨, 치즈가 들어간 토르티야 토스트, 감자칩, 커다란 초콜릿 쿠키 1개 그리고 차 1잔. 솔직히 ‘건강한’ 음식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운 식단이었다.
저자가 음식을 먹으려고 자리 잡은 근처에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그는 뚱뚱한 사람이었다. 덩치로 미뤄 짐작건대 비만 2단계이거나 3단계로 보였다. 그 남자 역시 저자가 다녀온 카페에서 음식을 사 와 점심을 먹고 있었다. 치킨 샐러드 1개, 생수 1병, 작은 비스킷 1개. 저자가 고른 음식에 비하면 훨씬 ‘건강해’ 보이는 식단이었다.
그러나 그 남자가 비스킷 봉지를 뜯는 순간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날씬한 청년 2명이 킥킥대기 시작했다. 옆구리를 슬쩍 찌르며 “저기 비스킷 먹는 뚱보 웃기네 ㅋㅋㅋ”라고 속삭이는 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하지만 초콜릿 과자 봉지를 들고 치즈가 뚝뚝 떨어지는 토르티야 토스트를 먹던 저자를 향한 비웃음은 없었다. 저자는 뚱뚱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편견1) 스트레스를 줘야 살이 빠진다
만약 평범하거나 날씬한 사람이 패티가 3장이나 들어갔고, 치즈가 뚝뚝 떨어지는 햄버거를 먹고 있다고 해보자. 아무도 그가 먹는 것에 왈가왈부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그들이 샐러드를 먹는 걸 보면서 “나도 샐러드를 먹으면 저런 몸매가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별로 없다.
하지만 뚱뚱한 사람이 ‘무언가’를 먹으면 오지랖의 눈초리가 쏟아진다. 그런 걸 먹으니까 살이 찐다느니, 그런 걸 먹어도 살은 안 빠진다느니, 온갖 참견이 난무한다. 그래서 비만인들 중에는 혼자 있을 때 음식을 먹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심하면 낮 동안은 아예 먹지 않다가 밤에만 먹는 경우도 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의 조롱과 오지랖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잔뜩 배가 고플 때 음식을 먹으면 고열량 음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고 과식과 폭식을 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온종일 끼니를 거르며 굶주림에 시달리면서 결국에는 더 많은 열량을 섭취하게 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참견이 상대방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그게 스트레스가 되어 오히려 건강해지지 못하게 방해할 거란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사이 뚱뚱한 사람들은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편견2) 뚱뚱한 것은 오로지 개인의 책임이다
지난 글에서도 밝혔지만, 살은 ‘복잡한’ 문제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식단, 운동뿐만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유전자, 호르몬, 환경 등 다양한 요소가 얽혀있다. 심지어 덜 먹고 더 움직이는 것이 체중 감량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다년간의 연구에서 밝혀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뚱뚱한 것이 개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비만인들을 도와야 하는 위치에 있는 의사, 간호사, 심리학자, 영양사 사이에서도 이 같은 편견이 널리 퍼져 있다. 의사들은 비만 환자들을 대할 때 자기 절제력이 없는 성가신 존재로 볼 때가 많고, 도움을 주고 싶은 의욕도 떨어진다고 한다. 간호사들 중에도 비만 환자들을 상대로 악의적인 농담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런 태도를 보이는 주된 이유는 비만이 통제 가능한 질환이며 덜 먹고 더 많이 움직이면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이 널리 퍼진 탓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살을 빼는 것은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복잡한 문제다.
결국, 비만 환자들은 의료 전문가에게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기 힘들어하게 되고, 핀잔과 비난을 들을 상황 자체를 회피하게 된다. 소통은 단절되고, 치료는 더욱더 어려워진다. 비만이 정말로 치료해야 할 질병이라면, 비만 환자를 지금처럼 죄인 다루듯이 하면 안 된다.
편견3) 뚱뚱한 사람은 무능하다
여러 연구 결과 뚱뚱한 사람은 날씬한 사람에 비해 면접을 통과할 확률이 낮다. 요즘은 블라인드 채용이라며 출신 대학을 가리고 취업 과정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커튼을 가리고 블라인드로 진행하는 면접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질 못했다. 뚱뚱한 것은 가릴 수 없고, 사람들은 그것으로 상대방의 능력을 가늠한다.
설령 운이 좋아 일자리를 얻더라도 정상 체중에 해당하는 같은 직급의 사원보다 초임을 적게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승진할 기회도 남들보다 더 적고, 임금도 더 낮고, 정상 체중 직원보다 업무 성과가 떨어진다는 그릇된 평가를 받는다. 따돌림당하거나 낙인이 찍힐 가능성도 크다.
2014년, 다이어트 서적 저자인 아심 말호트라는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서 영양학자인 캐서린 콜린스를 대놓고 공격했다. 누구도 그의 조언을 따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 이유는? 콜린스가 과체중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콜린스는 영양학 분야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인물이자 경험 많고, 지적이고, 헌신적인 인물이었다. 그 모든 업적과 증거가 있음에도 그저 과체중이라는 이유로 그의 능력을 폄하한 것이다.
4)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체중에 관한 편견에 맞서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우리가 마음대로 체중을 조절할 수 없고 타고난 유전자에 크게 영향받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덜 먹고 더 많이 움직이면 누구나 살을 뺄 수 있다는 오류에서 벗어나 겉모습만으로 성실함이나 유능함을 판단하는 착오에서 벗어나야 한다.
둘째, 뚱뚱한 사람들을 자극해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것은 그들에게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는 그들의 삶을 괴롭게 하고 그들의 건강을 악화할 뿐이다. 이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비만이 끼치는 해악의 증거만큼이나 강력하다. 설령 비만 낙인의 해악이 크지 않다고 해도 살이 쪘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짓은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다.
셋째, 변화는 긍정적일 때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비난하고, 경멸하고, 낙인을 찍으면 그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고자 살을 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효과를 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내적 동기를 말살해 무기력과 단념, 포기를 부르기도 한다. 설령 이런 점을 빼놓고 보더라도 낙인찍기는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도 끔찍한 수단이 아닐 수 없다.
책 『비만백서』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뚱뚱해지는 것보다 더 나쁜 것 가운데 하나는 뚱뚱해질까 봐 걱정하며 사는 것이다.
– 페그 브래컨
우리가 뚱뚱해지는 걸 두려워하는 진짜 이유는 뚱뚱해지는 것 그 자체가 아니라 뚱뚱해졌을 때 사회로부터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일지도 모른다. 그저 눈에 띄었다는 이유만으로 경멸의 시선을 받아야 하는 것만큼 두려운 일이 또 있을까?
솔직히 뚱뚱한 것보다 날씬하고 좋은 몸매를 더 좋아하는 인간의 본능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나도 몸매 좋은 사람이 좋다. 하지만 그렇다고 뚱뚱한 사람을 경멸할 필요는 없다. 뚱뚱한 사람을 무능하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건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년 동안 우리는 현대적인 지식과 문화를 갖추면서 다양한 편견을 물리쳐 왔다. 이제 개인이 바꿀 수 없는 것들, 즉 성별로, 피부색으로, 출신으로 사람을 차별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비만도 포함되어야 한다. 비만은 통제 불가능한 요소를 포함하는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 비만을 비난하지 않는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더 건강한 사회를 이룩하는 길이자 뚱뚱한 사람을 더 건강하게 이끌 수 있는 비결이 될 것이다.
비만을 둘러싼
진실과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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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