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스마트폰은 이제 더 이상의 혁신을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발전했고, 전기차를 넘어 자율주행차가 곧 등장할 거란 예상이다. 드론은 각종 분야에서 혁신을 불러오고 있으며, 사물인터넷과 AR, VR 기술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나는 이런 분야가 너무나 반갑다.
하지만 걱정되는 분야도 있다. 하나는 인공지능이다. 특이점이 오면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하고 그 시기가 2050년 경이 될 거라는 전망이 있다. 그런데 우려되는 또 하나의 분야가 있다. 게다가 이 분야는 벌써 현실이 됐다. 2018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고, 우리의 삶은 물론이고, 존재 그 자체까지 바꿔버릴 것이라 예상되고 있다. 그 기술은 바로 유전자 편집이고, 그 핵심에는 크리스퍼(CRISPR)라는 신기술이 있다.
크리스퍼에 관하여 제대로 알고 싶다면 책 <유전자 임팩트>의 저자 케빈 데이비스에게 주목해야 한다. 그는 원래 유전학 박사로, 주목할 만한 연구 성과를 저명한 학술지에 여러 번 발표한 뛰어난 연구자였다. 이후 그는 미국으로 건너왔고, 1990년 실험실을 떠나 <네이처nature>의 편집장으로 합류하였다. 이후 <게놈 퍼즐 맞추기>라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저술하기도 했다.
케빈 데이비스는 현재 <크리스퍼 저널The CRISPR Journal>이라는 학술지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이름에서 보다시피 크리스퍼 기술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학술지이며, 그곳의 편집장인 만큼 세상에서 크리스퍼를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케빈 데이비스라고 할 수 있다. 뛰어난 과학자이자 동시에 저널리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이 시대의 폴리매스 중 한 명인 셈이다.
그럼 도대체 크리스퍼가 뭐길래 삶은 물론 존재까지 바꿀 기술이라고 말하는 걸까?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며 인류는 생명의 본질이 DNA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DNA에는 살아있는 생물의 특성과 후대로 전해지는 특성까지, 생물의 모든 정보를 담은 유전 물질이었고, 이를 밝혀냄으로써 인류는 생명의 비밀에 한 걸음 다가가게 된다.
21세기에는 인간의 모든 유전 정보를 전부 파악하는 작업, 즉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마침내 인간은 수억 년의 진화가 그려낸 생명의 지도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이후 유전자 분석 기술은 날이 갈수록 발전했다.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에는 10년의 시간과 3조 원의 비용이 소모되었지만, 현재는 20시간과 100만 원만 있으면 한 사람의 유전체 전체를 분석해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이해한 것은 아니다. 유전자 정보를 읽을 수 있을 뿐, 그것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내가 영어 신문을 소리 내 읽을 순 있지만, 그렇다고 무슨 뜻인지 제대로 파악하기는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안습한 영어실력…슬프다…)
그럼에도 과학자들은 멈추지 않는 열정으로 꾸준히 DNA를 연구했고, 어느 정도는 그 실체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유전병을 일으키는 유전자의 위치를 파악한다거나, 유전자에 따라 암, 비만 등이 발생할 확률을 예측하기도 한다.
이렇게 유전자에 관한 지식이 쌓이자, 이제는 유전자를 바꾸고 싶은 욕망까지 이어졌다. 사실 유전자 변형은 이미 우리 삶 속에 자리 잡았다. 유전자 변형 식품도 나오고 있고, 유전자 가위를 활용해 유전병을 고치는 사례도 등장했다. 하지만… 유전자 가위의 성능이 낮아 실패 확률이 높았다. 표적 DNA가 아닌 다른 DNA를 자른다거나, 예기치 못한 변화를 초래하는 등 문제가 많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구세주처럼 등장한 것이 크리스퍼다. 크리스퍼는 유전자 편집에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정확도를 선보인다. 가이드 RNA를 통해 문제가 있는 수정하고 싶은 유전자를 정확히 파악해냈던 것. 비유하자면 유전자 가위에 ‘Ctrl+F’ 기능이 추가된 것이다. 여기까지가 1세대 크리스퍼고, 2세대 크리스퍼는 삭제뿐만 아니라 쓰기까지 가능해졌다. 크리스퍼는 유전자 공학에 있어 역대 최고의 혁신 중 하나인 셈이다.
(여담인데 엄밀히 말하면 크리스퍼는 발명한 것이 아니라 발견한 것이다. 크리스퍼의 발명자는 인간이 아니라 세균이다. 세균이 인간에게 병을 일으키듯, 세균에게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존재한다. 세균은 그런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면역체계를 개발했고, 그게 바로 크리스퍼였다. 바이러스의 유전 정보를 미리 적어두었다가, 외부 물질이 들어왔을 때 바이러스인지 아닌지 대조하는 것이다. 그렇게 세균은 유전자 수준의 Ctrl+F 기능을 개발했고, 그것을 인간이 빌려 쓰고 있다)
성능이 너무나 뛰어나다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크리스퍼의 단점이 되었다. 만약 무분별하게 유전자 편집이 이뤄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유전자 편집이 일으킬 나비효과를 아무도 예상할 수 없기에 두려워하고,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그 판도라의 상자를 겁도 없이 열어 버린 사건이 벌어졌다.
2018년 중국의 과학자 허젠쿠이가 배아세포의 유전자를 편집해 에이즈에 면역인 ‘유전자 편집 아기’를 세상에 태어나게 했다. 그는 에이즈를 물리치겠다는 공익적 목적에서 했다고 말했지만, 설령 그 말을 믿는다 해도 유전자 편집이 불러올 위험에 관한 경각심이 부족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소개한 이야기는 책 <유전자 임팩트>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책에는 크리스퍼 개발의 역사부터, 크리스퍼 기술 개발 특허와 관련된 흥미진진한 싸움, 그리고 크리스퍼 기술의 명과 암까지, 그야말로 크리스퍼에 관련된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제가 꼭 이런 최신 과학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혹자는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다. 사실 모든 분야에서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크리스퍼는 예외다. 왜냐하면 그 영향력이 너무나 클 것이기 때문이다. 크리스퍼는 성능이 뛰어나고, 사용하기도 쉽고, 비용도 싸다. 게다가 활용할 수 있는 영역이 거의 무한대다. 가장 무서운 점은 그 활용이 삶을 개선하는 데서 멈추는 게 아니라 우리의 존재를 바꾸는 데까지 이를 수 있다는 점이다.
감히 예상하건대, 자율 주행이니, 드론이니, 5G니 하는 것들보다 우리 삶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과학이 바로 크리스퍼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기술 자체는 이미 현실이 되었다. 문제는 그것이 축복일지, 재앙일지 아직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그대로 마주하고 싶은가? 아니면 조금이라도 알고서 마주하고 싶은가? <유전자 임팩트>는 크리스퍼가 바꿀 미래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게 해줄 ‘미래를 들여다보는 돋보기’ 같은 책이 되어 줄 것이다.
크리스퍼 혁명과
유전자 편집의 시대
참고 : 책 <유전자 임팩트>
※ 본 콘텐츠는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