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위 편지 내용만 가지고 모든 상황을 판단하기도 어떤 조언을 주기도 어렵다. 하지만 일단 글 내용만 가지고 이야기 해보자.
1) 하지만 제 능력이 부족했는지 오래가지 못했고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 능력 부족 맞음. 그러나 선천적인 것이 아니다.
1년 교환 유학을 다녀와서 반도체 관련 일 통번역을 할 수 있다는 건 영어가 아니라 일본어나 중국어일 거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영어를 유학 1년 후 전문분야에서 통번역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일이라는 것은 언어만 가지고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상회화가 가능하다고 일을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경우 반도체 관련 전문 용어에 관해서 공부가 충분히 되어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잘 할 수 있는 것을 잘했는지, 당연히 잘할 수 없는 것을 잘 해내지 못했는지 분리해서 판단해야 한다. 후자의 경우 공부가 해결해 줄 수 있는데, 그것을 내 능력 부족이라고 나는 원래 부족한 사람이라고 결론지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2) ‘회사에서 얼마나 괴롭히면 나가는지 두고 보자’는 말을 들었을 때
⇒ 내 잘못 아님
모든 사람들은 일을 시작했을 때 부족함이 있기 마련이다. 일 못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회사의 시스템적인 부분이 아니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하지만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무리가 저런 뒷담화를 하고 “괴롭힌다”는 표현을 쓰는 것을 봤을 때, 나쁜 조직 문화가 팽배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건 그들의 잘못이지 내 잘못이 아니다.
3) ‘정신과에 가니 적응 장애와 극도의 우울증, 울화병으로 진단받았습니다’
⇒ 책트 체크 필요 (과연 나는 정말 우울증일까?)
연이은 사건으로 능력 부족에 사람들과 어려움을 겪고 나면 누구나 자신감이 상실될 수 있다. 하지만 혹시 이야기 짓기의 오류에 빠진 것은 아닐까? 나는 우울증과 적응 장애가 있기 때문에 힘들다는 프레임을 만들어서 악순환에 빠진 것은 아닐까?
4) ‘일을 하면서 여러 가지를 배웠지만, 선생님들이 일괄적으로 말하는 것이 ‘열심히는 하나, 배우는 게 느리고 잘 적응하지 못하는 거 같다’라는 것이었습니다’
⇒ 팩트 체크 필요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접근 방법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위 이야기를 들으면 자기 효능감이 정말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편지 앞부분을 보면 대학교에 다니면서 성적장학금을 받았고 모든 활동에 참여했으며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까지 했다. 돈을 모으고 학교 지원을 받아서 1년 교환학생까지 다녀왔다. 이 경우를 보면 너무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기 효능감은 내가 잘 해낼 수 있다는 나에 대한 믿음이다. 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고 믿어보자. 작은 성공부터 다시 시도해보자.
우리는 어떤 문제를 겪든지 본인 문제인지 사회 문제인지 (내 잘못인지 구조적 문제인지) 정확하게 분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려 나는 부족한 사람이라며 자괴감에 빠지거나, 모든 것을 사회 탓으로 돌려 불평불만만 하는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악순환의 굴레에서 빠져 나오려면 정확하게 문제를 진단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참고: 유튜브_체인지그라운드 (링크)
이미지 출처 :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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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이 채택되면 신박사님과 고작가님이 체인지그라운드 유튜브 채널에서 영상을 통해 답변해 드립니다. 채택된 분들께는 문화상품권 2만 원을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