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볼 때 답을 고치는 게 ‘유리할까 vs 불리할까’

 

당신은 지금 막 객관식 시험을 치렀다. 그런데 당신이 선택한 답들 가운데 하나가 미심쩍다. 다행히 아직 약간의 시간 여유가 있다. 이 경우에 당신은 최초의 직감을 믿고 그냥 두겠는가, 아니면 답을 바꾸겠는가?

 

약 4분의 3에 해당하는 학생이 답을 고치면 틀릴 것이라고 확신한다. 수험생들이 이용하는 교육업체 카플란(Kaplan)은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한 적이 있다.

 

“일단 답을 선택한 뒤에 그 답을 고치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특히 조심해야 한다. 경험칙으로 보자면 답을 고치는 학생들 가운데 많은 수가 정답을 버리고 오답을 선택한다.”

 

나는 경험이 주는 교훈을 존중한다. 그래서 증거의 엄정함을 선호한다. 심리학자 세 명이 33개의 관련 논문을 종합적으로 검토했는데, 모든 논문에서 답이 바뀐 경우 가운데 다수가 오답에서 정답으로 바뀌었음을 확인했다. 이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최초 직감의 오류(firstinstinct fallacy)라고 부른다.

 

한 연구에서 심리학자들이 일리노이주립대학교에서 1,500명이 넘는 학생의 시험 결과에서 학생이 처음에 적은 답을 다른 답으로 고치려고 ‘지우개 표시’를 사용한 횟수를 셌다. (이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연구의 편의를 위해서 학생이 지우개로 답을 고치는 대신에 ‘지우개 표시’를 사용하도록 설정했다) 그런데 답을 바꾼 경우 가운데 4분의 1만 정답에서 오답으로 바뀌었고, 오답에서 정답으로 바뀐 것은 절반이나 되었다. 나는 이런 현상을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서 해마다 본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가운데서는 기말고사 때 놀랍도록 적은 수만 지우개 표시를 사용했다. 그러나 한번 결정한 답을 바꾸지 않은 학생보다 맨 처음의 답을 다시 생각해본 학생들의 성적이 더 좋게 나왔다.

 

물론 기껏 생각해서 바꾼 답이 더 나은 답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더 나은 답일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학생들은 보통 한번 결정한 답을 다른 것으로 바꾸기를 무척 꺼리기 때문에 자기 판단을 높은 수준으로 확신할 때만 답을 바꾸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 다른 설명도 나타난다. 점수가 높아지는 것은 답을 바꾼 결과라기보다는 답을 바꿀지 말지 한 번 더 생각해본 덕분에 그런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가 한번 결정한 답을 다시 생각하는 것만 망설이는 게 아니라, 다시 생각하는 것 자체를 망설인다. 실험을 하나 보자. 수백 명의 대학생에게 무작위로 최초 직감의 오류라는 개념을 가르쳤다. 이어서 그 학생들에게 마음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가르치고 그렇게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충고했다. 이렇게 한 다음에 두 차례 시험을 치게 했지만, 한번 결정한 답을 고치려 하지 않는 성향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인지적 게으름 때문이다. 몇몇 심리학자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정신적 구두쇠(mental miser)라고 지적한다. 새로운 걸 붙잡고 어렵게 쩔쩔매기보다는 기존의 의견이나 생각에 안주하는 손쉬운 쪽을 자주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려는 의지를 가로막는 한층 깊은 차원의 저항이 사람의 심리에 존재한다.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고 의심할 때 세상은 한층 더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자기 자신을 의심한다는 것은 자기가 알던 사실들이 이미 바뀌어버렸을지도 모름을, 즉 과거에 옳았던 것이 지금은 틀릴지도 모름을 인정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깊이 신봉하는 어떤 것을 다시 한번 더 생각한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셈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을 의심할 때는 자기의 한 부분을 잃어버리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다시 생각하기는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서 진행되는 투쟁이 아니다. 대상이 물건일 때 사람들은 열정을 다해서 업데이트한다. 예를 들어서 입던 옷이 유행에 맞지 않을 때는 옷을 새로 장만하고 주방 구조나 설비가 유행에 뒤처지면 새로 단장한다. 그러나 대상이 지식이나 견해일 때는 기존의 것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집착하고 얼어붙기(seizing and freezing)’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의심할 때의 불편함보다는 확신할 때의 편안함을 더 좋아한다. 또 지금도 여전히 윈도우95를 쓰는 사람을 보고 비웃으면서도 1995년에 형성되었던 자기 견해는 여전히 붙잡고 놓지 않는다. 또 머리가 복잡해지는 온갖 이야기보다는 기분이 좋아지는 의견에 편안하게 귀를 기울인다.

 

 

아마 당신은 냄비 속의 개구리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뜨거운 물이 담긴 냄비에 개구리를 집어넣으면 개구리는 깜짝 놀라서 곧바로 냄비 밖으로 튀어나오지만, 이 개구리를 찬물이 든 냄비에 넣고 가열해서 천천히 수온을 높이면 개구리는 밖으로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결국 죽음을 맞는다. 이 개구리는 자기가 놓인 상황을 다시 생각할 능력이 부족해서 자기에게 어떤 위협이 닥치는지 깨닫지 못한 채 결국 죽는다.

 

나는 최근에 이 유명한 개구리 이야기를 주제로 연구를 해봤는데 신기한 점을 발견했다. 그 개구리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집어넣으면 개구리는 심하게 화상을 입는데, 이때 개구리는 냄비에서 탈출할 수도 있고, 탈출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천천히 데워지는 냄비 쪽이 개구리에게는 실제로 더 유리하다. 자기가 놓여 있는 물이 너무 뜨거워서 불편하다고 느끼는 순간에 개구리는 냄비 밖으로 튀어나왔다.

 

자기가 놓인 상황을 재평가하지 못하는 것은 개구리가 아니라 우리 인간이다. 우리는 개구리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진실이라고 일단 받아들이고 나면, 그 이야기의 진실성을 굳이 의심하려 들지 않는다.

 

 

다시 생각하기의 중요성에 관하여 알려줄 한 사례가 있다. 1949년 8월 와그너 닷지(Wagner dodge)가 이끄는 소방대원들이 맨굴치 산에 난 산불을 진화하러 투입됐다. 이들의 계획은 불길이 다가오는 곳 주변으로 흙을 뒤집어서 방화선을 만들어 화마가 집어삼킬 먹잇감이 많지 않은 지역으로 불길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곧 진화 계획을 포기했다. 불길이 협곡을 넘어 자기들을 향해 맹렬하게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재빠르게 판단을 내린 닷지는 대원들에게 경사면을 다시 올라가라고 명령했다. 대원들은 8분 동안 풀이 무성히 자란 가파른 언덕을 허겁지겁 후퇴했다. 그들이 후퇴한 거리는 450m였고, 이제 능선까지는 채 200m도 남지 않았다.

 

눈으로만 볼 때는 얼추 안전한 것 같았다. 그러나 불길은 빠른 속도로 그들을 따라붙고 있었다. 그 순간에 닷지는 대원들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걸음을 멈추고는 성냥으로 꺼내 풀밭에 불을 지른 것이다. 그의 이런 행동을 두고 생존자 한 사람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대장이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엄청난 불길이 뒤에서 우리를 집어삼키려고 달려오는데, 대장이 우리 앞에 또 다른 불을 놓았으니까 말입니다.”

 

이 대원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다. 닷지가 두 팔을 흔들며 대원들을 불렀지만, 다른 대원들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정상을 향해서 필사적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도망친 대원 중 12명이 화마를 피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살아남은 대원은 3명이었다. 그중 2명은 강인한 신체 덕분에 불길의 추적을 가까스로 다돌리고 불길보다 먼저 능선에 다다랐기에 목숨을 구했다. 나머지 1명은 바로 닷지였다.

 

닷지가 풀을 태운 것은 생존 전략이었다. 그는 자기 앞의 풀을 태워버림으로써 무섭게 올라오는 화마의 먹잇감을 미리 없애버려 불길의 강도를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리는 안전공간을 만들었다. 닷지는 물통의 물로 손수건을 적셔서 입을 막은 다음에 재만 남은 공간에 납작 엎드려서 15분을 버텼다.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사람들은 보통 자동적인 반응, 즉 익히 학습된 반응을 보인다. 이것은 오랜 진화 과정의 적응에 따른 결과이다. 사람은 같은 조건에 놓이면 같은 반응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즉 만일 당신이 산림소방대원이라면 당신이 익히 학습한 반응은 불을 끄는 것이지 또 다른 불을 내는 것이 아니다. 만일 당신이 목숨을 구하려고 불길을 피해 달아나는 상황이라면 당신이 익히 학습한 반응은 불에서 최대한 멀리 달아나는 것이지 불을 향해 다가가는 것이 아니다. 통상적인 조건에서라면 그런 본능이 목숨을 구해줄 수 있다. 그러나 닷지가 맨굴치 산불에서 살아남았던 것은 그 두 개의 반응을 재빠르게 억누르고 포기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생각하기 전략을 더 깊이 있게 적용했다면, 닷지의 독창적인 창의력은 굳이 필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맨굴치 산불이 남긴 가장 큰 비극은 굳이 싸워도 되지 않을 싸움을 하다가 10여 명의 소방대원이 사망했다는 사실이다.

 

1880년대에 이미 과학자들은 숲의 생명주기에서 산불이 수행하는 중요한 역할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산불은 죽은 나무를 제거하고 토양에 영양을 제공하며 햇빛이 숲의 구석구석까지 미칠 통로를 마련한다. 산불이 억제되면 숲은 나무들로 너무 빽빽해진다. 덤불과 나뭇잎과 잔가지가 쌓이고 쌓이면 한층 더 폭발적인 산불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삼림국은 1978년이 되어서야 산불 발생을 확인할 경우,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반드시 진화해야 한다는 정책을 폐지했다. 맨굴치 산불은 인명 피해의 위험이 전혀 없는 외진 곳에서 발생했다. 산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면 맨굴치 산불의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은 더는 도움이 되지 않는 지식이나 의견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일관성보다는 유연성에 자아감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만일 당신이 다시 생각하기 기술을 터득한다면 당신은 분명 직장에서 성공을 거두고 인생에서 행복을 누릴 보다 유리한 자리에 서게 될 것이다.

 

다시 생각하기는 오래된 문제에 새로운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 새로운 문제에 오래된 해결책을 다시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다시 생각하기는 당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후회를 보다 더 적게 하는 지름길이다. 자기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도구들 가운데 어떤 것, 그리고 자기 정체성의 가장 소중한 것들 가운데 어떤 것을 버릴 시점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진짜 지혜이다.

 

 

확신의 편안함 대신

의심의 불편함을 선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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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책 <싱크 어게인>

 

이미지 출처 : 드라마 <스카이 캐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