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배려가 느껴지는 사례다. 윗집의 배려는 진짜 기적에 가까워 보이고 (아니 어떻게 6살 남자아이를 제어하는 거지?) 아랫집 어머니의 배려는 정말로 귀여워 보이신다. 이웃은 어쩌면 친척이나 형제보다도 가까운 존재다. 그리고 가깝게 살면 갈등은 필연적이다. (이건 부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웃 간에 배려는 필수다. 지금부터 이웃 간에 얼굴 붉히지 않고 잘 배려하며 사는 방법 3가지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소통
번호가 적힌 쪽지를 주면서 불편하시면 전화 달라고 한 것. 이 행동부터 남다른 개념이 엿보인다. 배려도 뭘 알아야 배려할 수 있다. 예를 들면 5시 이후에 아이들이 조용해진 걸 알게 되신 어머님이 그 정보를 바탕으로 일찍 온 날에 살금살금 들어오시는 것과 같은 이치다. 상대에 대해서 알려면 원활한 소통이 가능해야 한다. 겨우 벽 하나 두고 사는 사이인데 연락처 정도는 교환하는 게 좋다.
2) 예의
이건 절대로 지켜야 하는 선이다. 아무리 기분이 상하고, 갈등의 골이 깊어져도 예의 없게 행동해선 안 된다. 항상 점잖고 품위 있는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 이것은 상대를 위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이럴 때 품위가 떨어지면, 그로 인해 손상된 명예를 회복하기는 매우 어렵다. 물론 좋게좋게 얘기해도 못 알아먹는 사람이 있다. 어차피 그런 사람은 다르게 말해도 여전히 못 알아먹는다.
3) 양보
사회적 갈등이 심해질 때마다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는 더 많은 소통, 더 많은 토론을 통해 갈등을 좁혀 나가야 합니다.” 이 말대로 토론의 목적은 갈등을 좁히는 데 있다. 달리 말하자면,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흔히 토론에서 논리로 상대를 이기면 잘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논리로 이긴다고 한들 상대가 생각을 바꾸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토론은 답이 나오지 않는다. 서로 자기 할 말만 하다가 끝난다. (TV 토론이 늘 이런 식이다)
그럼 갈등을 좁히는 토론은 정확히 무엇일까? 그것은 서로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을 확인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좀 뛸 수도 있다. 그래도 저녁 시간 이후에는 안 된다. 이렇게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선’을 확인하면 거기까지 서로 양보할 수 있다. 토론은 그것을 확인하는 자리인 셈이다. 그래서 각자가 양보할 수 있는 최대치를 끌어내면 ‘합의’를 이뤘다고 말하게 된다.
우리 윗집에도 아이들이 산다. 얘들은 그냥 공룡이 아니고 익룡이다. 쿵쿵거리는 건 좀 덜한데, 끼아아악~ 하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하지만 저녁 8시 이후에는 조용하다. (제일 늦었던 시간 기준이고 보통 7시 이후로는 조용하다) 그래서 아무리 시끄럽고 악을 질러대도, 단 한 번도 항의하러 간 적이 없다.
층간소음의 책임은 솔직히 아파트 시공사에 있다. 그렇다고 주어진 상황에서 남 탓만 하면서 (남 탓이긴 하다) 아무런 노력을 안 할 순 없다. 그래서 서로 배려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양보할 수 있는 최대한 양보하며 살아야 한다. 그게 진정으로 함께 사는 지혜라고 생각한다.
참고 : 우리 윗층에는 엄청난 개념엄마가 살아요 ㅎ 층간소음 제로, 인스티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