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평생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으며 살아가는 존재다. 하지만 내 안에서 그 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 찾으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며 산다. 하지만 비교의 결론은 둘 중 하나다. “비참하거나, 교만하거나.” 타인의 불행을 자신과 비교하는 경우 교만에 빠지게 된다.
“내가 그래도 쟤보다는 돈이 많아.”, “쟤가 졸업한 학교보다 우리 학교가 낫지.”, “쟤가 다니는 직장보다 우리 회사가 낫지.” 우리는 이런 식으로 자기보다 못한 (혹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안심한다.
이렇게 나보다 부족한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것을 ‘하향 비교’라고 한다. 하향 비교는 자존감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스스로 제법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향 비교에 좋은 점만 있을까?
“아프리카에는 굶어 죽는 아이들도 많대. 그러니 우리는 감사하며 살아야 해.” 이런 식으로 아이들에게 감사함을 가르치는 부모가 많다. 얼핏 보면 교훈을 주는 소리 같다.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비교 대상 즉, 가난한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비하하는 표현이 될 수도 있다.
“삼 년 전에 여자는 역 계단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E는 경애와 함께 그 앞을 지나면서 마치 중요한 비밀을 가르쳐주듯이 ‘아이가 있어.’라고 말했다. 과연 옆을 보니 작은 이불을 덮은 아이의 발이 보였다. 경애는 그 발이 지하도의 찬 기운 속에 나와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지나가는 말로 ‘불행하네.’라고 했는데, E가 문득 경애의 팔을 잡으면서 ‘니가 뭔데.’라고 따졌다. ‘니가 뭔데 그렇게 말해.’라고.”
위는 김금희 작가의 장편 소설 <경애의 마음>에 나오는 장면이다. 경애는 친구 E와 지하철역을 지나다가 구걸 중인 노숙자를 보고 무심결에 불행하다고 말해버린다. 그 순간 E가 버럭 화를 내며, 네가 뭔데 그렇게 말하냐고 따진다.
우리가 뭔데 남을 불행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삶을 살다. 그리고 그 안에서 행복을 누리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가 마음대로 남을 불행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우리는 누군가의 불행을 함부로 정의할 자격이 없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자. 누군가가 내 허락도 받지 않고, 내 입장도 들어보지 않고, 내 삶에 ‘불행’이라는 판결을 내린다면 어떨까?
인터넷 유머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우리가 베네수엘라 판자촌 자녀가 되는 순간, 하향 비교의 대상이 되는 순간 비참함이 엄습한다. 그래서 비교의 끝은 둘 중 하나다. 나보다 못난 사람과 비교하며 교만하거나, 아니면 반대 상황에서 비참해지거나.
“실제로 어떤 분은 ‘봉사를 하고 오면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라며 ‘크고 작은 불평불만이 싹 없어진다.’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장애아 시설에 다녀오면 우리 아이는 공부는 좀 못해도 사지가 멀쩡해서 다행이라며 위안받는 식이다. 이것을 니체는 ‘동정적인 행위에 세련된 자기방어가 존재한다.’라고 말한다.”
은유 작가의 책 <글쓰기의 최전선>에 나오는 이야기다. 불쌍한 사람을 동정할 때 수혜자는 ‘동정받는 사람’이 아니라 ‘동정하는 나 자신’이 된다. 동정하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안타까워하고 돕는 행위가 사실은 자신의 행복감을 증명하는 기회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타인의 인생을 존중하고 그 사람을 소중한 인격체로 생각하면, 그를 결코 하향 비교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부모가 난치병에 걸린 자식을 두고, 그래도 나는 아픈 곳이 없으니까 감사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절대 그렇게 못 한다. 차라리 그 불행이 내 몫이길 바랄 것이다. 자식의 삶을 존중하고, 자식의 존재를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봉사와 선행을 펼치기로 유명한 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한 난민 어린이를 도우며 이렇게 말했다. “네가 불쌍해서가 아니라, 이 나라의 미래이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거야.” 그녀가 누군가를 돕는 것은 자신이 부와 명예를 가지고 있어서도, 도움받는 이들이 불행하고 비참해서도 아니었다. 그녀는 아이들을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중하고, 그들의 삶을 응원하기 때문에 도왔다.
위는 한 초등학생이 받은 숙제이다. 영양실조에 걸린 듯한 아이가 빵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사진과 함께 “난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생각해 봅시다.”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숙제를 받은 아이는 하향 비교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남의 아픔을 보고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아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같이 아픔을 해결해주려 하고 같이 잘 먹고 잘 살아야 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타인과 비교해서 남는 것은 둘 중 하나다. 비참하거나, 교만하거나. 비교로부터 행복을 찾으면 반대 상황을 맞이했을 때 결국 불행이 돌아올 것이다. 그러니 비교하려면 자기 자신과 비교하라. 과거의 자신과 비교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라. 그게 인간에게 허락된 유일하게 좋은 비교일 것이다.
나와 너를 이해하는
관계의 심리학
참고
1) 책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수업>
2) 이재용 딸 진짜 부럽다, pgr21 (링크)
3) 우문현답, pgr21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