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퇴직을 실시했다는 기사를 보면 언제나 마음이 찡하다. 아무리 잘 나갔었던 대기업 직원일지라도 명예퇴직을 한 이후엔 그저 한 명의 아줌마 아저씨일 뿐이다. 명예퇴직을 하고 나서 내가 체감했었던 가장 큰 변화는 설날과 추석의 풍경이었다. 예전에는 설날과 추석 때면 선물이 매일 끊임없이 들어왔었다. 하지만 퇴직 1년 차 때에는 반절로 줄었고, 2년 차 때는 거의 들어오지 않다가 3년 차에는 아예 없었다.
30년간 회사생활을 하신 아빠는 내게 허무하다는 말을 했다. 집에는 아빠가 회사에서 받아온 상장도 많았고 그만큼 회사에 미쳐 살았던 사람으로서 당연히 겪을 수 있는 감정이었다. 우리 집뿐만이 아니라 다른 친구들 집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의 다 명퇴 시기에 있으셨기에 집안 분위기들은 다 비슷했다. 다행히 3년 이후 아빠는 새 사업을 시작했었고, 지금은 나름 정상 궤도에 올라갔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신 분들 역시 많았다. 임원의 자리에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기란 말은 쉽지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그때 배웠다.
사실 이 시기는 나에게 트라우마로 남을 정도로 좋지 않았다. 회사에서 열심히 살았던 수십 년의 대가가 고작 이것이냐는 마음과 회사에 의존하게 되면 결국 스스로 사는 법을 잊어버린다는 교훈을 얻었다. 급격한 변화 속에 적응하는 건 나이를 먹을 수록 쉽지 않은 일이다. 초년생부터 어디로든 걸어갈 수 있게 스스로를 단련해두는 게 나에게도 도움이 되고 회사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일이든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어떤 위기상황에 처하더라도 빠르게 움직이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 명예퇴직 50만이라는 숫자는 누군가에겐 그저 숫자에 불과하지만, 그 숫자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람과 가족들에게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