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역 앞 노숙자, “엄마가 다음날도 숨을 안 쉬세요”

 

2020년 11월 서울 이수역. 한 노숙자가 길바닥에 모금함을 놓고 구걸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긴 누가 노숙자에게 관심을 가질까. 지나가다 잔돈이라도 주면 감사할 일이지만, 그나마도 요즘에는 신용카드와 모바일 결제가 보편화되면서 어려운 일이 되었다. 추운 밤이 되어도 노숙자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그렇게 그 자리에서 구걸한 지 석 달이 지났다고 한다.

 

사실 구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좋지 않다. “사지 육신 멀쩡한데, 왜 구걸을 하고 있나?”, “알고 보면 거지들이 웬만한 직장인보다 더 많은 돈을 번다더라.” 이런 인식은 노숙자를 안 좋게 보는 시선으로 이어진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노숙자를 지원하고 돕는 사람들도, 그들을 나쁘게만 보는 시선에는 반대하지만, 구걸 행위까지 좋게 보는 건 아니다. 재활과 사회 복귀를 목표로 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또한 노숙자를 봐도 무심하게 지나가면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성이 발길을 멈추고 노숙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잠시 주변을 맴돌던 여성은 이내 남성 앞에 쭈그려 않고는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눈 여성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녀는 민간 사회복지사인 정미경 씨. 그녀가 보기에 이 남성은 단순한 노숙자가 아니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의 앞에 이런 쪽지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쪽지를 본 순간 이분이 노숙하게 된 원인이 알코올 중독이나, 사업 부도로 인한 실의 같은 게 아니라 지적 장애구나…”

 

정미경 씨는 노숙자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거주지가 필요하신가요? 따뜻이 식사할 곳이 필요하신가요?” 하지만 남성은 이를 극도로 예민해 하며 거부했다고 한다. 그녀가 고기잡이배에서 나온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거부한 것이다.

 

그래서 정미경 씨는 노숙자를 한 달 동안 찾아갔다. 그러다 남성으로부터 충격적인 얘기를 듣게 되었다. “어머니는 천국에 계세요. 어머니의 몸은 거기(집에) 그대로 계세요. 우리 엄마는 핸드폰으로 글자를 읽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억! 이렇게 하시면서 내 팔이 안 움직여 하시고, 숨을 이상하게 쉬시고, 그다음 날에는 숨을 안 쉬는 거예요. 그리고 파리가 왜 날아와요? 그리고 애벌레들이 막 기어 나오고 제 방까지도 들어와요, 애벌레들이, 계속…”

 

그 말을 듣고 경찰과 함께 집을 찾아갔다. 집 안에서 이불로 꽁꽁 싸맨 어머니의 시신이 발견됐다. 어머니는 이불로 덮여 있었고, 틈은 테이프로 잘 붙어 있었다. 신기하게도 냄새도 나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도 아들이 어머니의 시신을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염습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시신은 쪽지에 남겨진 채로 5월부터 11월까지 7개월간 집안에서 말라가고 있었다.

 

노숙자였던 35세 남성 최 씨는 장애인 등록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고 했다. 그 결과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7개월 동안 아무것도 못 하고 길 위에서 도움만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정부와 지자체의 무관심이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러한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이고, 비록 장애인 등록은 안 되어 있었다고 하나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된 가구였기 때문에 충분히 관리할 수 있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면도 있다. 댓글에는 “저는 교육복지 쪽인데요. 진짜 실제 겪어보면 이해가 갑니다. 일단 신청을 안 하는 가정도 많고, 가짜로 신청하는 가정도 많고, 문의도 많고, 불만도 많고, 다 처리하기에는 사람이 없고, 심각한 가정에 좀 더 융통성을 발휘하면 기가 막히게 냄새 맡고 여기저기 손들고 찾아오시고… 엄청 어렵습니다.” 사회복지 분야가 힘든 일이라는 게 하루 이틀 들리는 얘기도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복지의 사각지대에 한 줄기 빛을 비춰준 건, 그 길을 지나가던 한 명의 시민이었다. 정미경 씨 덕분에  35세의 발달 장애 남성은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도움받은 것도 아닌데, 사회복지사분에게 절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평소에 어떤 마음으로 사시는 분이길래 한 달이나 어려운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도울 생각을 했을지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도 볼 수 있었다. 주인공 이지안은 장애가 있는 할머니를 모시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다 아저씨 박동훈을 만나게 되어 할머니를 요양원에 모실 수 있게 되었다. 그 전에 복지 혜택을 받지 못했던 이유는 하나였다. 그런 걸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간단한 서류 신청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런 제도가 있다는 걸 알아내는 것조차 버거운 일일 수 있다.

 

그래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관심이 필요하다. 사회복지사 정미경 씨나 드라마 속 아저씨 박동훈처럼. 그렇게 관심을 가져야 복지 사각 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시스템 속으로 불러들일 수 있다. 물론 그 일에 대한 1차 책임은 국가와 지자체에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모두를 맡길 수는 없다. 관료주의에는 언제나 구멍이 존재한다. 그 구멍을 지적하는 것만큼, 그 구멍을 직접 꿰매주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일에 필요한 것은 오직 관심뿐이다. 더 큰 무언가를 내어줄 필요도 없다.

 

그러니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지 말자. 그리고 관심을 갖자. 관심은 불쌍한 사람에게만 두는 게 아니다. 도와줄 방법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면 좋다. 스마트폰으로 10초만 검색해도 알 수 있는 정보다. 작은 관심과 작은 지식만으로도 도와줄 수 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살자. 세상을 좀 더 따뜻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손으로 말이다.

 

참고 : 엄마 시신을 이불로 꽁꽁 싸맨 채 7개월.. “다음날도 숨을 안 쉬세요”, 엠빅뉴스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