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브랜드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특정 브랜드는 위 말을 철저히 따른다. 특히 패션 브랜드는 더 그렇다. 왜 그럴까? 여기에는 소비에 관한 심리학적인 이유가 숨어 있다. 지금부터 브랜드가 떴다가 지는 유행의 심리학에 대해서 알아보자.
1) 유행의 시작 : 밴드왜건 효과
밴드왜건은 서커스 행렬 선두에 선 악대차를 뜻한다. 군중이 별생각 없이 덩달아 뒤를 졸졸 따르게 하는 데에 밴드왜건은 최고의 효과를 발휘한다. 미국 12대 대통령 재커리 테일러가 밴드왜건을 선거에 활용해 당선된 뒤로, ‘밴드왜건에 올라타다’라는 말이 생겼다. 오늘날 ‘시류에 영합하다, 편승하다, 승산이 있을 것 같은 후보를 지지하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이 밴드왜건이라는 말이 경제학으로 오면서 유행을 따르는 소비 심리를 설명하는 용어가 되었다. 밴드왜건 효과는 ‘수요가 많을수록 그 재화에 내재된 가치가 상승해 수요가 증가하는 것’을 뜻한다. 쉽게 말해 많이 사니까 사고 싶어진다는 뜻이다. 즉, 유행의 시작을 알리는 소비 심리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유행의 소셜화폐적인 측면이다. 아무나 산다고 유행이 되지는 않는다. 연예인이나 부자들처럼 영향력과 부러움을 사는 사람들이 소비할 때 유행이 된다. 상류층의 유행을 따름으로써 자신의 가치도 덩달아 높아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즉 유행하는 상품에는 사회적 가치를 높여주는 기능이 포함된다. 유행이 소셜화폐가 되는 것이다.
가장 극단적인 예시는 몇 년 전에 유행했던 ‘허니버터칩’이 아닐까 싶다. 겨우 과자 하나 구하는 게 뭐 대단한 일인가 싶지만, 당시에는 허니버터칩 5개를 구했다는 인증글에 좋아요가 미친 듯이 박히기도 했다. 과자도 유행을 타면 관심과 부러움을 부르는 소셜화폐가 된다. 하물며 과자도 그런데 패션 브랜드는 오죽할까?
2) 유행의 죽음 : 스노브 효과
‘요즘 유행하는 ‘몽ㅋㄹㅇ’ 패딩을 샀다.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나도 이제 30대고 직장인이니까 쓸만한 겨울옷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용기 내어 장만했다. 귀족적이면서도 귀여운 매력이 돋보여 너무 중후해 보이지도, 너무 싸 보이지도 않는 게 정말 맘에 든다. 다음 날 처음으로 그 옷을 입고 출근하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런데… 완전히 기분 잡쳤다. 아래층 여고생이 나랑 똑같은 패딩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도 이런 경험이 있는가? 나도 이런 적이 있다. 진짜 기분이 좋지 않더라. 왜 그럴까? 마케팅하는 사람들은 “패션은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이고, 그래서 남들과 다르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라는 식으로 말한다. 이 말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조금 더 노골적으로 얘기하자면 이렇다. “사람들은 남들이 사용하지 않는 물건, 즉 희소성 있는 재화를 소비함으로써 더욱 만족하고 그 상품이 대중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하면 소비를 줄이거나 외면한다.” 이를 두고 ‘속물 효과’ 또는 ‘스노브(snob) 효과’라고 한다.
스노브 효과는 값비싸고 희귀한 제품으로 자신을 과시하는 심리를 말한다. 쉽게 말하면 ‘나는 남들이 못 사는 걸 살 수 있어’라는 심리다. 한정판이 잘나가는 이유, 비쌀수록 잘 팔리는 이유가 모두 스노브 효과 때문이다. 얼핏 스노브 효과는 밴드왜건 효과와 반대처럼 보인다. 하지만 유행의 사이클을 생각해보면 밴드왜건 효과와 스노브 효과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상류층이 입는 옷을 사람들이 따라 입기 시작한다. 이는 밴드왜건 효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스노브 효과이기도 하다. 상류층의 옷은, 비록 유행하고 있더라도, 높은 가격이나 구하기 힘든 점 때문에 희소성을 갖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행이 길어지다 보니 그 옷을 아무나 입기 시작한다. 심지어 경제력도 없는 고등학생까지 입기 시작한다. 그 순간 스노브 효과는 사라진다. 유행하는 옷은 더 이상 나의 가치를 높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떨어뜨린다. 아무나 입는 옷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품 브랜드들은 자사 상품이 유행하기 시작하자 오히려 브랜드를 내세우지 않는 방향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가격을 올리고 로고를 작게 만든 것이다. 기존 제품과 차별화를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텐데, 자기 과시 효과가 있을까? 걱정하지 마라. 아는 사람끼리는 다 알아본다. 오히려 알아본다는 사실이 차별화를 만드는 방법이 된다.
따라서 유행이란 중류층과 상류층의 숨바꼭질이라고 할 수 있다. 중류층이 “네가 하면 나도 한다”라는 문법에 따라 상류층을 쫓아가면, 상류층은 기분 나쁘다며 다른 곳으로 숨는다. 그래서 패션업자들은 차별성을 강조한다. “새로운 상품은 이렇게나 달라요!” 처음에는 그 차별성이 먹혀든다. 그러다가 이 또한 보편화되기 시작하면 다른 패션을 들고 온다. 다른 패션이라는 게 딱히 새롭지도 않다. 그저 최근에 주목받지 못했던 스타일일 뿐이다. 그렇게 유행은 돌고 돈다. 밴드왜건 효과로 시작했다가, 스노브 효과를 끝으로 죽는다. 부활과 죽음을 반복한다.
3) 돈 버는 사람의 비결 : 스위트 스폿
브랜드는 밴드왜건 효과로 시작해 스노브 효과를 끝으로 죽는다. 유행이 시작되었다가 정점을 찍고, 촌스러운 것으로 바뀐다. 그럼 아예 유행을 무시해야 할까? 뭐 패션이야 자기 곤조대로 입고 산다고 딱히 나쁠 건 없다. 하지만 유행은 패션에만 있는 게 아니다. 학문에도, 기술에도, 금융에도 유행이 있다. 특히 주식 투자라면 유행을 읽는 능력이 곧 돈 버는 능력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럼 언제 유행에 올라타야 할까?
책 <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에서는 그 지점을 스위트 스폿(sweet spot)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친숙함에 따른 사람들의 선호도를 그래프로 그렸는데, 이를 ‘크리에이티브 커브’라고 부른다. 보다시피 친숙함이 높아짐에 따라 선호도가 증가하다가, 어느 시점이 지나면 친숙함이 늘어날수록 선호도가 줄어든다. 따라서 성공하고 싶다면, 편안하다고 느낄 만큼 친숙하면서도 동시에 계속 관심을 유발할 만큼 색달라야 한다. 그 지점이 바로 스위트 스폿이다. 히트하는 상품이나 아이디어는 무조건 색다른 게 아니라 친숙함과 색다름이 적절한 비율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 커브는 유행 커브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유행이 시작될 때는 밴드왜건 효과를 따라 친숙함이 높아지며 선호도도 높아지지만, 유행이 널리 퍼지면서 친숙함이 과해지면 스노브 효과로 인해 선호도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행의 효과를 제대로 누리고 싶다면 스위트 스폿일 때 올라타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당신이 유튜버에게 광고를 맡기고자 한다. (뒷광고 아니고 앞광고다) 어떤 유튜버에게 의뢰해야 할까? 구독자가 많은 유튜버? 아니다. 그 유튜버는 지금 진부점에 머물고 있을 확률이 높다. 정답은 이제 막 크기 시작한 유튜버다. 구독자 곡선이 아래로 굽어진 상승 곡선을 가진 유튜버다. 그 유튜버가 바로 스위트 스폿에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구독자’ 곡선이 아니라 ‘구독자 증가’ 곡선을 보는 게 맞다. 쉽게 예를 들기 위해 구독자 곡선으로 설명했다)
옷을 고를 때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진부점에 들어선 옷을 샀다가는 몇 개월 만에 촌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유행을 제대로 타고 싶다면 스위트 스폿에 있는 옷을 사거나, 아니면 유행에 휘둘리지 않는 패션을 추구하는 게 낫다. (이를 기본 패션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영화 <킹스맨>에 나왔던 ‘브로그 없는 옥스퍼드’ 구두가 대표적인 기본 패션이다)
참고
1) 아직도 몽클레어? 당신만 모르는 올해 패딩 트렌드, 런업 유튜브
2) 책 <생각의 문법>
3) 책 <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