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대한민국에 힐링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다. 힐링을 주제로 방송 프로그램도 나오고, 여기저기서 힐링 강연이 열리고, 심지어 정치인까지 힐링을 통해 표심을 끌어모으기도 했다. 그렇게 온 나라에 힐링 열풍이 불었는데, 대한민국 국민은 그로부터 더 행복해졌을까?
통계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은 듯하다. 대한민국 우울증 환자는 지난 5년 동안 28% 증가해 75만 명을 기록했다. 특히 10대와 20대의 증가가 가파른데, 20대의 경우에는 97% 급증하여 10만 명에 가까운 환자 수를 기록했다. 빡빡한 현실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다. 이전부터 청년 실업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고, 고용 불안으로 인해 공무원 시험에 청년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와중에 ‘N포세대’, ‘문송합니다’ 같은 자조적인 신조어도 등장했다. 그리고 코로나 사태는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상황이 이러니 위로와 힐링이 힘을 잃고 있다.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은 ‘분노’와 ‘사이다’다. 청년들은 노력해도 안 되는 상황에 분노하고 있고, 그런 분노를 시원하게 해소하는 사이다 콘텐츠가 자연스럽게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바람직한 변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분노가 과해서 조리돌림으로 이어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사이다를 넘어서 무관용, 무자비가 이어지고 있다. 분노와 사이다를 핑계로 남 탓이 번지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담론이 우리에게 안정을 찾아줄 수 있을까? 나는 여기서 다시 힐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힐링은 과거의 힐링과 다르다. 과거의 힐링이 가짜 힐링이었다면, 이제는 진짜 힐링을 추구해야 한다. 과연 무엇이 진짜 힐링일까?
1) 진짜 힐링은 자존감이다
과거의 힐링이 공허하게 다가오는 가장 큰 이유는 알맹이가 없기 때문이다. 해결법도 없으면서 그저 ‘힘내’라고 말하면 힘이 날까? 당장 앞에서는 위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돌아서면 막막한 현실이 눈앞에 있다. 현실적인 임금과 건강한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는 한 고용 문제는 계속될 것이다. 집값 상승을 억제하지 못하면 결혼을 포기하는 사람은 더 늘어날 것이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뻔히 보이는데 그 앞에서 ‘힘내’라고 말해봤자 ‘알아서 잘살아 봐’라는 무책임한 소리와 다를 바 없다.
때로는 말뿐인 위로도 필요하다. 힘들 때면 그런 위로가 버티는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건 친구들과 소주 한잔 하거나 부모님과 차 한잔 나누면서 받으면 충분하다. (그래서 시대의 멘토라는 사람들이 힐링 팔이 하는 걸 보면 화가 난다) 이와 달리 진짜 힐링은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해내야 한다는, 해내고 싶다는 동기부여는 적절한 스트레스가 있어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는 나쁜 게 아니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
따라서 진짜 힐링은 현실을 똑바로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상황이 힘들고 암울하다는 걸 무시해서는 안 된다. 상황이 어려우니 ‘힘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런 상황 속에서도 ‘힘을 내야만 하는’ 이유와 동기를 알려주는 것이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 즉 자존감을 높이는 게 진짜 힐링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자존감을 높일 수 있을까?
2) 자존감에는 근거가 필요하다
많은 스포츠 팬들이 감독에게 이런 항의를 보낸다. “아니 힘내라고 해도 시원찮을 판에 왜 선수 기를 죽이고 그러냐? 그 상황에서 쓴소리나 하는 게 제대로 된 리더십이냐?” 하지만 감독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이 쓴소리하는 이유에 공감하게 된다. “선수들은 어린애가 아니다. 바보도 아니다. 뻔히 자기가 잘못해서 결과가 망했는데, 거기다 대고 ‘걱정 하지마, 잘 될 거야’라고 말해봤자 전혀 효과가 없다. 차라리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똑바로 지적하는 게 더 도움이 된다. 심지어 선수들도 그런 지도를 원한다.”
힐링도 마찬가지다. 무작정 ‘잘 될 거야, 힘내’라는 말은 힘이 되지 않는다. 당장은 뼈 맞는 소리더라도 현실을 똑바로 보여주고, 제대로 해낼 방법을 제시하는 게 낫다. 그리고 이런 조언이야말로 자존감을 높이는 조언이 된다. 왜 그럴까?
자존감에는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아존중감은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감정이다. 내가 무언가 잘하는 게 있고, 무언가 이룩한 게 있으면 자연스럽게 자존감이 높아진다. 까놓고 말해서 개뿔도 없으면 자존감이 생기지 않는다. 모든 사랑에는 근거가 필요하다. 아무 매력이 없는 사람에게 반하는 경우는 없다. 외모가 뛰어나든, 성격이 좋든, 능력이 출중하든 사랑할 거리가 있어야 사랑에 빠진다. 나를 사랑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 근거 없는 자존감은 존재할 수 없다.
3) 작은 성공을 이루자
하지만 사랑에 빠지는 이유는 어처구니없을 때가 많다. 머리카락이 예뻐서, 자리를 양보해줘서, 몰입하며 공부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사랑에는 근거가 필요하지만, 그 근거는 정말 제각각이다. 자존감을 높이는 것, 즉 나를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보기에는 별것 아닌 일이라도 스스로 뿌듯하다고 느낄 수 있으면 자존감을 높이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핵심은 스스로 납득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은 성공을 이루는 게 중요하다.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좋다. ‘오늘은 1시간 동안 책을 읽자’라는 목표를 세우고 이것을 이뤄보자. ‘2km만 뛰어보자’라고 생각하고 밖으로 나가보자. 말만 들으면 별것 아닌 일 같지만, 실제로 해보면 절대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2km를 쉬지 않고 뛰는 것은 운동 부족인 사람에게 정말 힘든 일이다) 그래도 해볼 만한 일이다. 힘들지만, 해낼 수 있다. 그렇게 힘들게 무언가 해내는 데서 오는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충만감을 가져온다.
이처럼 작은 성공을 하나씩 쌓아가다 보면 낮은 자존감이 조금씩 높아진다. 그게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100일이 되면 성장하고 있다는 게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끼는 순간 자존감은 완전히 회복된다.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희망, 그것보다 강력한 동기부여는 없다.
진짜 힐링은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위로가 아니다. 지속적으로 나아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이를 근거로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하는 것, 즉 나를 사랑할 근거를 만들도록 도와주는 게 진짜 힐링이다. 물론 시작은 힘들 수도 있다. 스트레스받는 일일 수도 있다. 그래서 시도하기를 주저할 수도 있다. 그 두려움의 벽을 뛰어넘도록 격려하는 게 멘토나 감독이 할 일이다.
또한 힘들다고 그저 위로해주기만 바란다면, 그것은 4살짜리 마인드다. 하지만 우리는 어린애가 아니다. 하다못해 어린아이도 스스로 납득하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는다. 그런데 납득시키기는커녕 그럴 생각조차 앗아가는 일시적 위로에 만족해서야 되겠는가? 이미 세상은 그러한 가짜 힐링에 등을 돌린 지 오래다. 대신 이제부터 진짜 힐링을 시작하자. 자존감을 높이는 근거를 마련하자. 작은 성공을 해내 보자. 그렇게 나를 사랑하기 시작하는 순간, 당신의 인생은 진짜 청춘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소리는 무시하자. 이제 빼앗긴 청춘을 돌려받을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