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모르는 아인슈타인의 3가지 비밀

 

아인슈타인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e=mc^2(엠씨스퀘어)라는 공식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좋아지는 것 같고, 공식만 보아도 우주의 진리에 다가서는 것 같지 않은가? 아인슈타인은 현대인에게 그런 존재다. 그의 업적은 신화가 되었다. 사실 신화가 되어도 충분할 정도로 대단한 업적이긴 하다. 그는 이전까지 물리학을 지배하던 뉴턴의 공식을 뒤집었고, 현대 물리학의 두 기둥으로 불리는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에서 모두에서 역사에 남을 발자취를 남겼다. 그래서 이공계 대학생들은 아인슈타인을 싫어하기도 한다. 무슨 과목을 듣든 그의 이름이 꼭 한 번은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이 할아버지는 안 나오는 곳이 없어 ㅠㅠ)

 

하지만 이런 신화가 오로지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에 의해 탄생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가 세기의 천재이자 과학의 아이콘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데에는 우리가 모르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 비밀의 중심에는 아인슈타인을 위해 두발 벗고 나선 한 영국인 과학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아서 스탠리 에딩턴. 책 <아인슈타인의 전쟁>은 아인슈타인과 에딩턴이 연합해 당시 세계에 만연하던 제국주의에 맞서 평화와 번영의 승리를 이뤄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 상대성 이론은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의 업적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을 꼽으라면 누구나 ‘상대성 이론’을 꼽을 것이다. 하지만 노벨상은 상대성 이론에 대한 업적으로 수여 된 것이 아니다. 노벨상은 ‘특수 상대성 이론’과 같은 해인 1905년에 발표된 ‘광전효과’ 논문에 대한 업적으로 수여 되었다. 상대성 이론이 세계와 역사를 뒤집은 대단한 업적이긴 했지만, 당시까지도 여전히 논란이 계속되고 있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면도 있고 (뭐? 시간이 줄어든다고?) 수학적 계산도 매우 복잡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는 사람은 3명뿐이다”라는 괴담까지 나돌 정도였다. (원래는 실버슈타인이 한 말로 그 의미는 세간에 돌아다니는 것과 조금 다르다. 궁금하다면 <아인슈타인의 전쟁> 475p를 찾아보길 바란다) 그래서 노벨상 측에서는 광전효과를 다룬 논문에 노벨상을 수여 하기로 했다.

 

그런데 더 기막힌 사연이 있다. 아인슈타인은 노벨상을 받았지만, 상금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상금을 이혼한 아내의 위자료로 전부 주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밀레바라는 여성과 결혼했으나, 훗날 엘자라는 여성과 바람이 났다. (나중에는 엘자의 딸과도 바람이 났다… 세상에나…) 아인슈타인은 재혼을 위해 밀레바와 이혼하기를 원했고, 밀레바는 거액의 위자료를 요구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이 노벨상을 수상하는 경우 상금을 위자료로 지급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아직 받지도 않은 상금을 위자료로 주기로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켰다. (역시 보통이 아니다 ㄷㄷㄷ)

 

 

2) 아인슈타인은 ‘만들어진 신화’다

 

이토록 비범한 인물이니 당연히 신화적 천재로 추앙받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매우 기나긴 여정이 필요했다. 아인슈타인이 신화가 되기는커녕, 아예 상대성 이론 자체가 묻혀버릴 수도 있었다. 이유는 전쟁이었다. 아인슈타인이 한창 일반 상대성 이론을 연구하는 동안 세계는 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었다. 당시에 아인슈타인은 막스 플랑크의 초청에 따라 독일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수업 없이 연구만 해도 된다는 조건, 넉넉한 급여, 거기에 엘자까지 있었기에 아인슈타인은 베를린에 정착하기로 한다.

 

문제는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면서 독일과 나머지 유럽국가의 교류가 단절되었다는 점이다. 5개월이면 끝날 거라는 전쟁은 5년 동안 지속되었다. 당연히 과학계 교류도 단절되었고, 단절된 것을 넘어 서로를 비방하는 분위기까지 팽배했다. 영국에서는 ‘독일 과학자와 과학을 논의하는 게 과연 합당한 일인가?’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이런 분위기 아래서 상대성 이론은 조용히 묻혀버릴 수도 있었다.

 

이를 반전시킨 사람이 바로 에딩턴이다. 그는 상대성 이론에 매료되었고, 이를 세계 과학계에 퍼뜨리고자 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오로지 상대성 이론의 위대함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에딩턴은 평화주의자이고 국제주의자였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상대성 이론을 이용하고자 한다. 영국 과학계가 대놓고 조롱하는 독일 과학계에서 위대한 업적이 탄생한다는 것을 보여 인류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에딩턴은 천문학자였다. 그래서 상대성 이론의 증거를 직접 관측하기로 한다. 정말로 빛이 휘어진다는 증거를 가져오고자 한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여론을 회유하는 데도 앞장섰다. 상대성 이론을 홍보하고 그 증거를 찾아내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역설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상대성 이론이 맞았다는 증거가 등장하자, 아인슈타인은 말 그대로 슈퍼스타가 되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만약 전쟁이 없었다면, 전쟁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없었다면, 에딩턴이라는 강한 신념의 소유자가 없었다면, 아인슈타인은 평범한 물리학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쟁 그 자체와 맞서 싸운 덕분에 아인슈타인은 신화가 될 수 있었다.

 

 

3) 당신이 아인슈타인을 읽어야 하는 이유

 

아인슈타인의 업적은 단지 과학적 업적에 국한하지 않는다. 물론 물리학 업적으로서도 충분히 전설이 될 정도로 위대하지만, 그보다 더 위대한 세기의 아이콘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평화와 국제주의에 관한 두 과학자의 신념이 큰 역할을 했다. 이렇게 보면 아인슈타인의 업적은 그 자체로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융합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을 강조하고 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인간성이 없으면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해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 마크 주커버그 등 기술 분야에서 놀랄만한 업적을 이루는 사람들이 인문학적 가치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인간을 제대로 이해할 줄 아느냐가 기업의 성패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자는 자연과학보다 인문학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2020년 코로나 19사태를 거치면서 인문학만큼 자연과학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바이러스가 어떻게 전염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까놓고 말해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선진국 사람들이 이 정도로 무식할 줄 몰랐다. 봉쇄 조치에 항의하는 것은 이해할 여지라도 있다. 마스크를 강요하지 말라며 시위에 나서는 것을 보면 어이가 없을 정도다. 그러면서 한국이 마스크를 잘 쓰고 다니는 게 왕조 국가 시절이 길어 정부에 복종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헛소리를 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저 바이러스가 어떻게 전염되는지에 관한 과학적 지식을 알고 있기에 마스크를 쓰는 것뿐인데 말이다.

 

<아인슈타인의 전쟁>은 이러한 시대에 가장 필요한 시각을 제공하는 책이 될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연구와 에딩턴의 관측을 따라가며 과학적 사고와 방법론을 배울 수 있다. 이들이 협력하여 평화와 번영의 승리를 이루는 장면에서는 인문학이 중요한 이유를 깨닫게 된다. 어느 하나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자연과학적으로 분석하면서 인문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의 중요성에 인간이라는 맥락을 더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그렇게 융합된 가치가 이뤄낸 승리였다. 그 자체로 인류의 승리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다. 그 승리의 발자취를 따라간다면, 당신은 세상을 더 깊고 더 넓게 보는 시각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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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로크미디어에서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