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을 매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크게 2가지 의미로 쓰이는데, 하나는 정말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물건이나 서비스에 대한 가치가 없을 경우다. 그리고 또 하나는 ‘감히’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위대함에 대한 감탄의 표현으로도 쓰인다. 첫번째보다 두번째 의미가 더 많이 쓰인다면 우리의 일상은, 세상은 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지난해 KBS TV쇼 진품명품에 등장한 한 물건이 감정가 0원 판정을 받았다. 왜일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돌고 있는 이야기다.
1944년 전후로 쓴 것이라고 추정되는 의뢰품은 독립운동가의 일생이 담긴 회고록이었다. 원고지에 쓰여진 건 아니지만 글씨도 내용도 훌륭했다. 이 회고록을 쓴 손자가 방송에 출연, 희망 감정가로 10만 815원을 적어서 냈는데 이것은 임시정부수립 100주년과 8·15 광복을 의미했다. 그리고 감정가를 알아보는 시간, 엄청난 속도로 계속 올라갔지만…
이 프로그램에 등장한 의뢰품 중에 감정가가 0원이 나온 것은 안중근 의사가 여순 감옥에서 남긴 친필 작품이라고 한다. 이 회고록도 그와 상응하는 역사를 갖고 있었다. 위 회고록은 독립운동가 이규채 선생의 자서전 습작 원고이며, 원고지가 아닌 공란이었던 세금계산서에 작성된 것이라고 한다. 이규채 선생은 생전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과 한국독립군 참모장 등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고, 저 회고록은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보다 당시 독립운동 상황이 더 자세하게 기록 돼 있다고 한다. 방송에 출연했던 감정 전문가들은 값을 매길 수 없었던 이유로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회고록을 의뢰한 손자는 방송에서 이것을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에 기증할 것이라고 했다.
한 독립운동가의 희생정신으로 20세기 아픈 역사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후손들이 보다 더 자세하게 알 수 있게 됐다. 고귀한 뜻을 금액으로 환산하는 그 자체가 어쩌면 ‘무례’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를 온전히 보존해 온 후손들이 없었다면 이 회고록은 세상에도 나오기도 전에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후손들은 국가에 기증하고, 국가가 관리하는 게 할아버지의 유품을 영원히 보존하는 길이라고 판단, 보상은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 친일파 논란은 계속되고 있고. 20세기 아픈 역사에 대한 후유증은 여전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독립운동가의 유품이나 이를 보존한 이들에 대한 ‘가시적’인 보상은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옳은 행동엔, 옳은 보상을 해주는 것. 이것이 고신뢰사회, 고신뢰국가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참고
1. TV쇼 진품명품 화면 캡처, KBS
2. 감정가 0원 명품, 웃긴대학(링크)
3. [크랩] 독립운동가의 유품이 ‘감정가 0원’? 진품명품 역대급 기록(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