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자동차가 바닐라 알레르기에 걸렸어요.”

 

제너럴 모터스 폰티악 사업부에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이건 제가 두 번째로 쓰는 편지입니다. 하지만 답변이 없다고 해서 비난하지는 않겠습니다. 저도 이게 미친 소리 같다는 걸 아니까요.”

 

 

“저희 가족은 저녁 식사 후 항상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을 먹습니다. 그래서 매일 저녁 식사 후 어떤 아이스크림을 먹을지 고민하며 아이스크림 가게로 드라이브를 가죠.”

 

 

“그러다 최근에 산 폰티악을 몰고 아이스크림 가게로 갔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유독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살 때만 차에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겁니다. “

 

 

“다른 아이스크림을 고르면 시동이 걸리는 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이상한 소리라는 걸 알지만 저는 심각합니다. 다른 아이스크림을 사면 아무 문제 없는데, 바닐라 아이스크림만 사면 시동이 안 걸리는 폰티악 자동차는 대체 무엇인가요? 바닐라 알레르기인가요?”

 

 

부장님 : 하… 이게 말이 되냐?
엔지니어 : 그냥 망상증 환자 같은데요.
부장님 : 그럼 너가 가봐.
엔지니어 : 왜죠?
부장님 : 그럼 내가 가냐? 어쨌든 고객이잖아!
엔지니어 : ‘하… 이게 말이 되냐?’

 

 

파견 나간 엔지니어는 고객을 만나 깜짝 놀랐다. 고객의 환대에도 놀랐지만, 그가 예상과는 달리 과학적 지식도 풍부하고, 딱 봐도 성공한 삶을 사는 게 분명해 보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저녁 식사 후에 바로 차를 몰고 아이스크림 가게로 갔다. 고객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샀고, 그들이 차로 돌아오자 당연하다는 듯이 시동은 걸리지 않았다.

 

 

엔지니어는 출장일을 3박으로 늘리고 자동차를 관찰했다. 첫째 날, 초코 아이스크림을 사자 시동이 걸렸다. 둘째 날, 딸기 아이스크림을 사자 시동이 걸렸다. 셋째 날,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사자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엔지니어는 자동차가 바닐라 알레르기가 있다는 말을 그대로 믿을 수 없었다. 그는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출장을 연장하고 (하… ㅠㅠ) 모든 것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운행 시간, 기름 종류, 운전 전후의 시간 등 모든 종류의 데이터를 모았다.

 

 

엔지니어 : 드디어 잡았다!

 

 

엔지니어가 알아낸 단서는 시간이었다. 차 주인이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살 때는 시간이 더 짧게 걸렸던 것.

 

 

이유는 아이스크림 가게의 매장 배치였는데,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가장 인기 있는 맛이었기 때문에 가게 맨 앞에 있는 별도의 쇼케이스에서 살 수 있었다. 다른 맛은 가게 안까지 들어가서 사야 했지만,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훨씬 짧은 시간 안에 사 올 수 있었던 것.

 

 

그럼 왜 시간이 덜 걸릴 때 자동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았을까?

 

 

베이퍼 록 현상(Vapor Lock)이라는 게 있다. 과열로 인해 펌프나 파이프 속의 연료가 증기로 변해 연료의 양이 갑자기 부족해지는 현상이다. 원래 이 문제는 매번 일어났지만, 다른 맛의 아이스크림을 살 때는 엔진이 충분히 냉각될 수 있어서 시동을 거는 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고를 때는 시간이 짧아 엔진이 식을 여유가 없었고, 베이퍼 록이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위 이야기는 중요한 교훈을 알려준다. 하나는 ‘아무리 미친 소리 같더라도 가끔은 진짜일 수 있다’는 점이다. 솔직히 자동차가 알레르기에 걸렸다니, 이딴 소릴 누가 믿어주겠는가? 하지만 제너럴 모터스는 그 말을 무시하지 않았고, 심각한 결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냉각 문제라면 방열판을 대거나 냉각 장치를 다는 등 해결 법이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는지 파악조차 못 하면 아무리 간단한 방법도 시도할 수 없다.

 

이러한 행동은 남다른 고객 경험으로 돌아온다. 지금 내가 글을 쓰는 것처럼 여러 매체에 소개되며 제너럴 모터스의 성실함과 고객 사랑을 널리 알릴 수도 있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알레르기를 발견한 고객만큼은 앞으로도, 또는 그 자식까지 제너럴 모터스의 충성 고객이 될 확률이 높다. 아무리 미친 소리 같아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어쩌면 그런 일일수록 더 큰 성공의 기회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교훈은 ‘데이터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대부분 낫다는 점’이다. 데이터가 언제나 정답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잘못 해석해서 엉뚱한 답을 내놓을 수도 있다. 하지만 데이터가 없으면 철저히 직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자동차가 알레르기에 걸렸다’라는 이상한 결론이 나올 뿐이다. (생각해보면 꽤 타당한 결론이었다) 하지만 데이터가 있으면 직관으로 보지 못하는 진짜를 파악할 확률이 높아진다.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시간이 문제라는 걸 파악할 수 있게 한다.

 

거의 탐정에 가까운 관찰과 추리력을 보여준 엔지니어. 그를 통해 일을 잘한다는 게 무엇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던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참고 : 자동차가 바닐라 알러지에요, 이토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