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인 핸디캡을 극복한 사람들

‘재능 vs 노력’의 논쟁에 관하여 안젤라 더크워스는 다음과 같은 공식을 도출했다. ‘성취 = 재능X노력X노력’ 노력은 재능보다 제곱만큼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이 ‘재능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라는 말은 아니다. 재능보다 노력이 중요하지만, 재능 자체가 0이면 성취도 0이 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농구를 생각해보자. 키가 160cm밖에 안 된다면 농구로 성취를 이루기는 어렵다. NBA에서 단신 소리를 들었던 ‘앨런 아이버슨’조차 키가 183cm였다. 그렇다. 성취를 이루려면 최소한의 재능은 필요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세상에는 재능은커녕 핸디캡이라 부를 만큼 불리한 조건을 가졌음에도 이를 극복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타고난 조건을 살펴보면 ‘불가능’이란 말이 바로 떠오를 정도다. 하지만 그들은 불가능을 뛰어넘었다. 더 놀라운 점은 핸디캡을 오히려 기회로 삼아 성공을 쟁취했다는 점이다. 지금부터 그 사람들을 만나보자.

 

1. 농구 선수 먹시 보그스

 

 

키가 160cm밖에 안 되는데, 세계 최고의 농구 리그 NBA에서 뛸 수 있을까? 앞서서는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다. 바로 NBA 역사상 최단신 선수, 먹시 보그스다. 160cm라면 농구 선수가 아니라 보통 사람으로 쳐도 작은 키에 해당한다. 그래서 고교 시절 그가 농구를 한다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다고 한다. 보그스가 다니던 던바 고등학교 농구부가 결승전에 진출했는데, 장내 아니운서가 보그스를 던바 고교의 스타라고 소개하자 관중들이 웃음을 터뜨렸던 것. 물론 게임이 시작하자 그 웃음은 짜게 식어버렸다. 보그스가 7번이나 공을 스틸하며 상대 공격을 겨우 9득점으로 막아버렸기 때문. 당연히 우승은 던바 고교가 차지하게 되었다.

 

실력만큼은 진퉁이었지만, 세상은 그를 짝퉁 취급했다. 1987년 드래프트에서 워싱턴 불리츠에 입단하며 NBA 경력을 시작했지만, 작은 키로 인해 선수보다는 마스코트로 취급받으며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이후 샬럿 호네츠로 이적했지만, 당시 감독의 경기 스타일에 맞지 않아, 여전히 벤치 신세를 져야만 했다.

 

그러다 1991년 새로 부임한 알란 브리스토우 감독을 만나면서 빛을 보기 시작한다. 새 감독은 패싱 게임을 추구했고, 이런 전략에 발빠른 보그스가 딱 들어맞았던 것. 보그스는 알로조 모닝, 래리 존슨, 델 커리와 호흡을 맞추며 활약하기 시작했고, 1992/93 시즌에는 샬럿 호네츠를 팀 역사상 최초로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는데 성공한다.

 

먹시 보그스의 키는 NBA는 물론이고 동네 농구 기준으로도 단신에 속한다. 선수로서는 핸디캡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하지만 보그스는 그 한계를 높은 농구이해도와 빠른 발, 근성으로 극복했다. 보통 키가 작으면 수비에서 큰 구멍이 나는데, 보그스는 외곽 수비를 맡으며 끊임 없는 견제로 상대 선수를 괴롭혔다. 심지어 213cm에 달하는 패트릭 유잉을 뒤에서 블로킹 하기도 했다. 정말 끈질긴 근성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높은 어시스트와 적은 실책으로, 빠른 속공을 진두지휘하는 등, 공수 양면에서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마스코트라던가 티셔츠 팔이가 아니라 엄연히 실력 있는 NBA 선수였던 것이다.

 

먹시 보그스의 활약에 관해서는 마찬가지로 단신 선수였던 앨런 아이버슨의 명언으로 마무리하면 좋을 듯하다.

 

“농구는 신장이 아니라 심장으로 하는 것이다.”

 

2. 캐릭터 디자이너 김상진

 

 

<라푼젤>, <빅 히어로>, <모아나> 그리고 한국에서 천만 관객을 동원한 <겨울왕국>까지. 여기에 등장하는 많은 캐릭터를 창조한 사람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 주인공이 바로 캐릭터 디자이너 김상진이다. 애니메이터라는 직책상 작품 전면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아는 사람은 아는 유명인이다. 빅 히어로 시사회에선 주인공 다니엘 헤니보다 인기가 많아 디즈니 수석 애니메이터의 위엄을 과시하기도 했다. 감독 말로는 연예인 뺨치는 인기였다고.

 

월트 디즈니 최초의 한국인 수석 애니메이터인 데다, 성과물도 하나같이 대박이다 보니, 김상진이 타고난 천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색약판정을 받아서 미대에 진학하지 못했던 것. 대학도 미술 전공이 아니라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어릴 때만 해도 당연히 미대에 진출할 거라 생각했던 그에게 색약판정은 큰 좌절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색약을 큰 핸디캡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종류의 핸디캡을 한 가지씩 가지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며 그림을 계속 그려나갔다. 만화를 그리기 위해 신문사를 찾아간 적도 있고, 친구들의 포스터나 팸플릿 부탁을 들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그림과 관련된 많은 일을 했고, 결국 국내 회사에서 애니메이터라는 경력을 시작하게 된다. 그 후 디즈니 수석 애니메이터 자리를 거쳐 지금은 다시 한국에 돌아와 로커스 스튜디오의 이사를 맡고 있다. 얼마 전에는 <레드슈즈>라는 작품을 내놓아 많은 호평을 받기도 했다.

 

 

김상진은 이렇게 말한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으면 타협하지 말고 즐기면서 하면 됩니다. 그렇다고 쉽지만은 않습니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요. 노력해도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력하지 않으면 실패밖에 없습니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고, 이를 해내는 그릿을 갖고 있던 김상진에게 색약판정이라는 핸디캡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누구나 핸디캡은 있다. 하지만 그것을 변명으로 삼지 않는다면 핸디캡에 머물지 않는다. 그저 조금의 불편함에 머물 뿐이다.

 

3. 가수 스캣맨 존

 

 

절대 가수를 할 수 없을 것 같은 핸디캡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물론 노래에서 재능이 기여하는 바가 크긴 하지만, 음정, 리듬, 발성은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심지어 어떤 가수는 경력이 쌓이면서 음색까지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말더듬이’라면 어떨까? 말더듬은 언어 장애의 일종으로 같은 음절을 반복하거나, 말하던 도중 한동안 말이 끊기는 증세를 말한다. 심하면 제대로 소통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당연히 직업 선택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배우나 가수처럼 대사나 가사를 ‘말’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핸디캡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말더듬을 가지고 가수에 도전한 사람이 있다. 심지어 기네스북 ‘최단기간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말더듬을 하나의 음악 창법으로 승화했다는 점이다. 주인공은 바로 스캣맨 존. 노래만 들으면 누구나 ‘아~ 이 노래~’하는 말이 나올 만큼 세계적인 가수였다.

 

 

그는 선천적 말더듬 때문에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수로 데뷔하고 나서도 오랜 무명시절을 겪어야 했고, 어렵게 발매한 앨범도 처참한 실패를 맛봐야 했다. 이후 술과 약물에 의지하며 폐인처럼 살다가 동료와 아내의 도움으로 폐인 생활을 청산하더니, 무려 52세에 이르러 세계적인 성공을 이루게 된다. 이때 그가 들고나온 것이 바로 ‘스캣 랩’. 말더듬을 재즈 창법으로 승화하여 독특한 사운드를 완성했다.

 

그의 독특한 창법도 인기의 큰 요인이겠지만, 그의 노래에서 전달하는 메시지도 매우 좋다. 그의 노래는 희망과 평화가 가득한데, 편견과 차별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를 준다. 본인이 말더듬으로 겪었던 고통을 노래로 승화했다는 점에서 가슴이 울컥하게 된다.

 

누구나 약점은 있다. 하지만 약점을 다르게 바라보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독특한 장점으로 승화할 수도 있다. 스캣맨 존이 말더듬을 스캣으로 승화한 것처럼 말이다. 그 말은 누구나 자신만의 강점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당신이라면 어떡하겠는가? 핸디캡을 그대로 놔둘 것인가? 아니면 장점으로 승화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