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빼달라고 전화, 문자 86통한 이웃

 

정말 다급한 일로 누군가와 얼른 연락을 해야하는데, 무심하게도 장시간 연락이 안되는 경우 그 답답함과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어쩌다보니 상대방의 연락을 제때 받지 않아 상대방이 화가 난 경우라면? 어떻게 이를 수습해야할까? 온라인 커뮤니티 웃긴대학 등에 올라온 사연이다.

 

학창시절 도덕(혹은 윤리, 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단골 내용으로 ‘나 하나쯤이야’라는 표현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집단 이기주의 등을 얘기할 때 나오는 내용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표현이 비단 이기주의를 나타낼 때만 쓰는 게 아닌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의 불행한 사건이나 혹은 뉴스에서 좋지 않은 일이 보도될 때, 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할 뿐 그것이 자신의 일이라고는 생각하기 쉽지 않다. 먼 훗날, 언젠가라고만 여기고 넘어갈 뿐이다.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죄책감을 토로한 글쓴이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야근을 하고 돌아오면서 이상하게 주차를 했는데, ‘어차피 한낮엔 사람들 다 출근하고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피곤함을 못이기고 민폐 주차를 했을 것이다. 예상치 못했던 전화·문자 86통에 황당하고 놀랐을 그의 표정이 떠오른다.

 

글쓴이의 사연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불행한 사건과 마주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하는가 곰곰이 생각해봤다. 사람들은 불확실성을 싫어하고 이를 맞닥뜨리면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패턴과 질서를 찾으려고 애쓴다. 그렇기에 아무 일이 없는 상황에도 언제나 ‘최악’을 대비해야한다. 사연에 적용해보자면 글쓴이는 주차를 잘못했고, 아파트 주차장은 공동의 공간이기에 아무리 한낮에 사람들 대부분이 일터로 나갔다고 할 지라도 누군가로부터 “차 좀 빼달라”고 전화가 올지도 모른다는 걸 염두에 뒀어야 했다.

 

다행히 글쓴이는 운이 좋은 편이다. 다행히 상대방은 아파트 이웃 주민이었고, 더욱이 오전 6시부터 정오가 되도록 화를 꾹꾹 참고 예의를 갖춰가며 전화와 문자연락을 했다. 외국의 어떤 영상을 보니 민폐 주차를 한 사람 보란 듯이, 차의 일부를 일부러 파괴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비하면 글쓴이는 보살을 만난 셈이다. 글쓴이가 이 글을 쓰고, 얼른 상대방에게 진심어린 사과와 보상을 했기를 바란다. 86통의 문자 사연 덕분에, 한번 더 내 인생 ‘최악’의 때를 상상하며 보다 더 나은 오늘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참고
1. <차 빼달라고 전화, 문자 86통한 이웃.jpg>, 웃긴대학
썸네일 이미지 출처: KCC오토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