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행복도를 떨어뜨리는 요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층간소음이 차지하는 비중에 생각보다 클 거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는 아파트다. 이렇다 보니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층간소음 문제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물론 아파트를 지을 때 시공사가 소음 문제를 철저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여럿이 한 건물에 사는 이상 서로를 배려하는 자세도 마찬가지로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배려를 너무 당연히 여기는 게 아닌가 싶은 사례를 발견했다.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이야기인데, 옆집에서 소음 문제로 항의 쪽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내용을 보자니 이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밤늦게 세탁기나 청소기를 돌리는 행위는 자제하는 게 맞다. 그런데 퇴근 시간에 청소기 돌리는 것조차 뭐라 하면 도대체 어쩌라는 걸까? 요리를 하지 말라거나 새벽 배송을 하지 말라는 말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쪽지를 보낸 사람은 아마도 배려가 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배려는 사전적으로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이라는 뜻이다. 즉, 도움을 건네는 일종의 호의이지, 강요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이렇게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부탁드릴게요.” 같은 자세로 해야 할 말이지 “법적조치를 취하겠습니다.”라고 윽박지를 성질의 것이 아니다.
또한 배려에도 선이 있다. 사실 세상 모든 일에는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다. 그 선을 넘으면 더 이상 배려가 아니게 된다. 이 경우에는 선의 기준이 불편함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쪽지를 보낸 사람은 자기 불편한 것만 생각하고, 타인이 불편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청소도 하지 마라, 요리도 하지 마라, 그러면 불편해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상대방의 불편함’이라는 선을 넘은 이상 ‘자신의 불편함’에 관하여 주장할 자격을 잃는 셈이다.
서로 배려하며 사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함께 사는 사회에서는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배려를 너무 당연하게 여겨 권리로 생각하면 안 될 것이다. 나부터도 그런 적 없는지 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것 같다. 더불어 평소에 당연하게 누려왔던 것들이 누군가의 고마운 배려가 아니었을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렇게 따져보면 생각보다 고마운 일이 정말 많다는 걸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누군가가 있다면 꼭 고맙다는 말을 전해보자. 그 말이 건너건너 퍼져나간다면 세상은 분명 더 살기 좋아질 것이다.
덧. 이웃 잘 만나는 건 정말 복인 것 같다.
참고 : 에펨코리아, 옆집 여자한테 쪽지 받음.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