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탄 유치원 썰

동탄은 총인구 42만을 예상하고 있는 거대 신도시다. 신도시인 만큼 젊은 부부와 어린아이를 많이 볼 수 있다. 당연히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대한 관심도 높다. 그런데 한 커뮤니티에서 동탄 유치원에 관한 어이없는 썰을 보게 되었다.

 

 

학생끼리 군기 잡는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학부모 사이에서 군기 잡는다는 소리는 진짜 처음 들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악습 중 하나가 군기 문화다. 하급자를 괴롭히는 행동도 문제지만, 별것도 아닌 우위를 가지고 감투짓 하려는 행위가 넌더리가 날 정도로 가소롭다. 대학생들이 군기 잡겠다고 수작 떠는 걸 보며 ‘그래… 아직 어리니까 그렇겠지.’ 싶었는데, 애도 있는 학부모가 군기 잡는다는 걸 보니 헛웃음도 안 나올 지경이다.

 

어째서 이런 악습이 생긴 걸까? 이 악습을 처음 만든 개인의 문제일까? 그렇다면 뒤이어 악습을 견고하게 지켜나가는 학부모는 왜 생기는 걸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동탄에서 이런 악습이 생겨난 데에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는 듯하다.

 

 

2년 전 동탄 사립 유치원 비리가 터지면서 학부모들이 시위에 나선 적이 있다. 당시 조사 결과 동탄 지역 사립유치원 8곳 중 5곳에서 비리 혐의가 드러났다. 당시 이런 문제가 발생한 원인 중 하나로 유치원 부족 문제가 거론되었다. 국공립 유치원 설립계획 없이 신도시를 건설하였고, 젊은 부부가 몰리면서 유치원 부족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한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 숫자가 평균 120명 정도라는데, 동탄의 유치원에는 300~700명의 아이들이 다닌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니 유치원을 견제할 세력이 없어, 결국 비리까지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문제가 많은 유치원인 줄 알면서도 아이를 맡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치원 부족 상황은 학부모 사이의 군기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유치원은 부족하고, 비리까지 만연하니, 그 아래 있는 학부모들도 각박한 사이가 될 게 뻔하지 않은가. 그 와중에 먼저 학부모가 되었다는 쥐꼬리만 한 우위가 해를 거듭하면서 쌓이고 쌓여 결국 악습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자기가 뭐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지면, 악습을 당연한 일처럼 행동하게 된다. 어쩌면 그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개인적인 양심에 호소하기 이전에 구조적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만화 <송곳>의 명대사처럼, 사람은 ‘그래도 되는 상황’이라면 아무리 끔찍한 일도 저지를 수 있다. (관심이 있다면 ‘밀그램의 복종 실험’을 찾아보자) 개개인이 ‘그래도 된다’라는 이유로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도 있지만, 애당초 ‘그래도 되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동탄의 유치원 부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 말도 안 되는 군기 문화는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참고
1) 동탄 유치원 썰.txt, 에펨코리아
2) ‘8곳 중 5곳이 비리유치원’ 동탄은 왜?, 동아일보
3) 만화 <송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