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17년 동안 교회를 운영하다 모두 그만두고 한국에 온 목사가 있다. 그가 한국에 와서 시작한 일은 김치찌개 장사였다. 하지만 그가 시작한 가게는 평범한 밥집이 아니었다. 메뉴는 단 하나 김치찌개. 가격은 무려 1인분에 3,000원. 여기에 어묵, 김, 계란후라이를 추가하고 싶으면 각각 500원만 더 내면 된다. 밥은 무료로 준다. 최운형 목사는 그렇게 굶주리는 청년들을 위한 김치찌개 집을 운영하고 있다.

최운형 목사는 자신이 하는 일에 회의감이 들었다고 한다. 매년 연봉이 오르고 삶이 윤택해지는 것이 부끄러웠고, 그래서 목사직을 내려놓으려 했다. 그때 SNS에서 ‘청년밥상, 문간’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 2015년 이문수 신부는 고시원에서 한 젊은이가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청년들이 싼값에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식당을 만들고 ‘문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문간은 ‘안과 밖 사이, 청년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신부님 이야기를 들은 최 목사는 ‘가슴이 확 뜨거워졌다’고 한다. 그래서 신부님을 찾아가 다짜고짜 ‘나도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2호점이 문을 열게 되었다.

요즘 밥 굶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하지만, 밥을 충분히 못 먹는 사람은 참 많다. 2017년 취업포털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취업준비생 5명 중 4명이 하루 한 끼 이상 굶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는 경제적 부담이었다. 돈이 궁하자 청년들은 가장 먼저 ‘밥’을 포기했다. 그런 청년들에게 3,000원에 든든한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건 너무도 반가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 왜 3,000원일까? 아예 무료로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이 신부는 “무료 급식을 하면 청년들이 과연 쑥스러워 하지 않고 올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한창 일할 나이의 청년을 위해 무료 급식이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한다. 3,000원이란 가격에도 배려가 담겨 있었다.

가슴이 확 뜨거워지는 일. 흔히 이것을 열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문간은 열정으로만 운영되는 곳이 아니다. 개업 이후 계속 적자였다가 6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몇만 원 흑자를 냈다고 한다. 시작은 열정이었을지 몰라도, 장사는 현실이었다. 그리고 이 신부와 최 목사는 그 현실을 직시하는 사람들이었다. 아직은 기부에 의존하는 면이 있지만, 언젠가는 문간을 체인점으로 만들고 싶다며 롤모델로 백종원을 꼽았다. 그리고 꾸준히 창업에 관한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나는 이 일을 시작하게 했던 ‘가슴이 확 뜨거워지는’ 마음보다,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꾸준히 공부하는 자세가 진짜 열정이라고 생각한다. 선행을 하고 있지만, 장사라는 본분을 잊지 않았기에, 선행도 이어나갈 수 있는 셈이다.

유럽 속담에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무능하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청년밥상 문간은 지옥으로 가는 선행과 다른 진짜 선행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참고
1) 17년 목사로 살다가 3000원 김치찌개 사장이 된 이유, 에펨코리아
2) 굶어 죽은 청년 소식에 ‘3000원 김치찌개’ 식당 연 신부님,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