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속았던 선동 레전드

 

 

어렸을 때 자주 보던 캠페인이 있다. ‘대한민국은 물 부족 국가입니다. 물을 아껴 씁시다.’ 캠페인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았고 여러 해에 걸쳐 국가적 차원에서 진행되었다. 당시 학교 계수대마다 물 부족 스티커가 붙었고, 공익 광고도 여러 편 나왔던 걸 생각하면 캠페인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갔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이 캠페인에는 충격적인 비밀이 숨어 있다. 우리나라가 물 부족 국가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물 부족 국가’라는 개념은 1990년대 국제인구행동연구소(PAI, Population Action International)라는 단체에서 전 세계 국가를 조사하여 물이 부족하다고 분류한 데서 시작되었다. 문제는 PAI가 UN이나 여타 국제기구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민간단체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 사설 단체의 말에 정부, 언론, 환경단체까지 나서서 대대적인 물 부족 국가 캠페인을 벌였다. 게다가 PAI가 물 부족 국가를 선정한 기준도 미흡했다. 단순히 강수량을 인구밀도로 나눈 값인데, 이 기준에 따르면 사하라 사막 국가들은 물 풍요 국가로 분류된다. 강수량이 적어도 인구밀도가 매우 적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잘못된 정보에 국가 전체가 낚인 셈이다. (그렇다고 PAI가 사기 단체라는 말은 아니다. 평범한 비정부 기관을 공신력 있는 기관이라고 오해한 쪽이 잘못한 것이다)

 

 

실제로 2012년 UN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가 아닌 것으로 나온다. UN 소속 식량 농업 기구(FAO)에서 조사한 결과에서도 여전히 한국은 물 부족 국가가 아닌 것으로 나오고 있다. 물 부족 여부를 확인하려면 강수량뿐만 아니라 물을 관리하는 기술 발달 여부도 확인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처럼 수도 시설이 잘 관리되는 나라는 선진국 이외에는 별로 없다. (수돗물을 그냥 마셔도 되는 나라는 선진국 중에도 별로 없다) 이런 데 우리나라가 물 부족 국가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할 수 있다.

 

물 부족 국가 소동은 우리에게 팩트 체크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PAI가 공신력 있는 단체인지, 물 부족 국가 선정 기준은 제대로 되었는지, 당시에 조금만 꼼꼼하게 자료를 확인했어도 온 나라가 속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속아서 만든 스티커, 포스터, TV 광고까지… 엉터리 캠페인에 쏟아부은 세금을 생각하면 화가 날 정도다.

 

 

요즘에는 인터넷을 통해 정보가 말 그대로 쏟아지고 있다. 이 정보가 맞는 정보인지 확인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그럴수록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오늘날 정보는 곧 돈이다. 잘못된 정보를 믿으면 손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국가뿐만 아니라 개인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팩트 체크 능력은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본 소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 손해 보며 살고 싶지 않다면 꼭 끝까지 확인하는 능력을 키우도록 하자.

 

참고
1) 과거 우리가 속았던 것중 최고, 이토랜드
2) 90년대생 공감) 급식시절 선동 레전드…jpg, 더쿠
3) 물 부족 국가,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