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무부조리라는 말이 있다. 병영부조리 혹은 군대 내 악습이라고도 하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군대에서의 똥군기나 가혹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가끔 뉴스에 무시무시한 사례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 실상은 상당히 유치한 것들이 많다. 내가 겪었던 내무부조리 중 가장 유치했던 것은 복장에 관한 것이었다. 병사들에게는 활동복이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추리닝이 보급되는데, 이 추리닝을 입는 방식이 계급에 따라 다르다. 이등병은 무조건 상의를 바지 속에 넣어 입어야 하고 (아니 추리닝을 그렇게 입는 사람이 어딨어?), 목깃을 세우고 다니려면 상병 이상이 되어야 했다. 병장은 추리닝 대신 깔깔이만 입고 다니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어째서 이런 복장 구분이 생긴 걸까? 그나마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은 추리닝 상의를 바지 속에 넣어 입으면 매우 모지리 같아 보인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등병의 기를 죽이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유치 짬뽕 악습이 군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회사 생활에도 이런 악습이 존재한다. 그래도 군대처럼 노골적으로 억압할 순 없기에 교묘하거나 조심스럽게 이루어지기는 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교활하고 불편한 게 분명한 사실이다. 다음에 나온 이야기는 그런 회사 생활 부조리의 대표적인 케이스가 아닐까 싶다.
‘신입사원은 고급차를 타고 다니면 안 된다.’ 어처구니없지만, 아직도 많은 회사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부조리다. 실제로 5~6년 전 대학 동기나 후배들이 막 취업하기 시작했을 때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실제로 잘 사는 후배 하나는 외제차를 타고 출근했다가 그날 바로 사수한테 한 소리 들었다고 한다. 꾸중의 마지막에 들었던 얘기가 ‘과장쯤 되면 외제차 타고 다녀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한다’였다. 사실상 내무부조리와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헛웃음이 새어 나올 정도로 유치찬란하다.
도대체 왜 이런 악습이 생겼을까? 나는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왜냐면 부끄럽게도 나 역시 비슷한 소리를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한 후배가 고급 외제차를 타고 등교한 적이 있다. 가격이 최소 억 단위가 넘어가는 차종이었다. 그걸 보고는 ‘대학생이 저런 거 타고 다니는 건 좀 안 어울리지 않냐? 자기 돈으로 산 것도 아니고…’라는 식으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럼에도 과거의 나는 저런 말을 했다. 이유는 명백하다. 부러웠으니까. 부럽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부러워 죽겠다는 말을 헛소리로 한 것에 불과했다. 아마도 고급차를 몰고 다니는 신입사원을 향한 사람들의 안 좋은 시선도 결국 부러움이 원인일 것이다. 잘 먹고 잘사는 것만큼 부러운 게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남이 잘 먹고 잘사는 게 나랑 무슨 상관일까? 신입사원이 고급차를 타든, 내가 경차를 타든, 그런 거로 결정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그 사람이 타는 자동차가 아니다. 그 사람이 가진 실력과 인성과 배움의 깊이가 수준을 결정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고급차를 보고 부러워한다.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기 때문이다.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은 2가지 결과만 낳는다. 비참하거나, 교만하거나. 그렇게 부러움에 사로잡힌 비참한 심정이 되면, 처음에는 개인적인 미움을 낳다가, 그 마음이 집단으로 번지면 결국 부조리가 된다.
후기에 따르면 신입사원은 고급차를 꾸짖는 말에 바로 항명한 듯하다. 안타깝지만, 이런 식으로 들이받아봤자 부조리가 바뀌는 일은 거의 없다. 대부분 신입사원이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혀 따돌림당하다가 퇴사하는 꼴이 될 것이다. 그렇게 부조리가 더욱더 견고해진다. 이를 바로잡으려면 결국 리더가 나서는 수밖에 없다. 사실 그런 일을 하는 게 리더다. 괜히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과장이나 부장도 신입사원 시절에 부조리를 겪었을 테고, 높은 자리에 올라 부조리의 혜택을 받다 보면, 보상심리가 발동하게 된다. 그렇게 부조리는 한 번 더 견고해진다. 부조리를 타파하는 게 정말 어려운 이유이다.
깨어있는 리더가 나타나거나 아니면 사람들의 전반적인 인식이 개선되거나, 무엇이 되었든 간에 부조리를 깨부수기는 절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반드시 깨부숴야만 한다. 이런 유치한 헛짓거리에 쏟아붓는 시간과 에너지만 끌어모아도 경쟁력을 훨씬 더 끌어올릴 수 있고 개인의 업무 만족도까지 높일 수 있다. 우리나라가 더 살기 좋은 나라, 더 강한 나라가 되려면 반드시 이런 부조리를 타파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야 한다. 이 글이 한 사람이라도 그런 생각을 갖도록 도와줄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참고 : 고급차 타고 다니는 신입사원+후기, 오늘의 유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