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로 기억되는 천재 조종사의 미친 짓

레드 배런은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에이스 전투기 조종사로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폰 리히트호펜이라는 이 프로이센 귀족은 1916년~1918년 사이의 19개월 동안 연합군 항공기 80대를 격추한 것으로 유명한데,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그 어떤 조종사보다 더 높은 기록이다.

 

그를 더 유명하게 만든 것은 자신의 전투기를 새빨간 색으로 칠해서 눈에 띄게 만든 것이다. 적에게 보이지 않아야 전투에서 유리한데 이 무모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던 그는 자신을 더 돋보이게 만들고 그것을 즐겼다. 전투기 색깔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레드 배런 (붉은 남작이라는 뜻)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레드 배런을 주인공으로 한 책은 30권이 넘으며 수십편의 다큐멘터리는 그의 공중전투를 재현했으며 할리우드 영화로도 제작이 되었다.

 

 

하지만… 과연 그는 뛰어난 실력으로 유명해졌다고 할 수 있을까?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의 창시자인 바라바시 교수는 <포뮬러>에서 이 의문을 제기했다. 성과가 곧 성공을 결정한다는 결론은 재능이 있는데 무명으로 남는 사람들에 대한 답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재능은 있으나 무명으로 남은 이들에 대해 우리는 운이 따라주지 않아서, 억세게 재수가 없어서 그렇다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우리는 실력을 갈고닦는 게 남들보다 돋보이는 최선의 전략이라고 배웠지만, 도대체 말이 안 된다. ” – 앨버트 바라바시

 

바라바시 교수는 레드 배런과 같은 시대에 활약했던 르네 퐁크 라는 조종사의 예를 든다. 그는 연합군 소속의 프랑스 조종사로 독일 전투기를 무려 127대나 격추시켰다고 한다. 그중 75건은 공식적으로 확인이 되었는데, 증명되지 않았지만 개연성이 높은 기록까지 더하면 그의 격추 횟수는 어림잡아도 100대가 넘는다.

 

특히 레드 배런이 보수적으로 전투에 임한 것과는 다르게 (그는 불필요한 위험을 피하면서 윙맨의 도움을 받아 대형을 이루고 매복하다가 적을 위에서 공격하는 전술을 썼다) 퐁크는 탈출 경로를 주도면밀하게 계산하며 적극적으로 적기를 격추시켰다. 함께 출격한 비행 중대 가운데 혼자 살아 돌아온 경우도 많았으며 그의 전투기가 적의 포화에도 긁힌 자국도 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가히 독보적이다. 최소한 퐁크는 레드 배런과 동급이거나 그보다 더 큰 업적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 퐁크는 존재하지 않는다.

 

 

레드배런이 이렇게 유명해질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놀라운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더불어 그가 자신의 성과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조종기를 새빨간색으로 칠했고, 적을 격추할 때마다 문구가 새겨진 맞춤형 트로피를 주문했다. (전쟁으로 독일이 어려워지기 전까지 은으로 된 트로피를 60개나 주문 제작했다) 전쟁 영웅이 필요했던 독일 정부에게는 레드 배런이 적임자였던 것은 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정부에 의해 대대적으로 홍보된 그의 성과는 사람들이 그를 기억할 수 있었던 이유다. 비슷한 성과를 올렸지만, 하늘과 땅 차이의 명성을 갖게 된 레드 배런과 르네 퐁크는 성공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알려주는 좋은 사례다.

 

<어떻게 능력을 보여줄 것인가>에서 잭 내셔는 “능력은 절대로 스스로 빛을 내지 않는다”고 말한다. 성과는 능력을 알려주는 정확한 지표가 아니며 성공이나 실패는 놀라울 정도로 성공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왜 세상이 알아봐 주지 않는지 답답했다면, 나를 드러내고 연결하는 방법과 운의 영역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보는 연습을 해보라고 조언 드리고 싶다. 물론, 실력은 기본이다.

 

참고
<포뮬러>, 앨버트 바라바시

  • <Red Baron>, history.com
  • <어떻게 능력을 보여줄 것인가>, 짐 내셔

written by 김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