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꼴찌가 1년 만에 명문대에 합격한 이야기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의 주인공 사야카는 한마디로 공포녀다(공부를 포기한 여고생). 5년 동안 공부를 해본 적도 없고, 당연히 기초적인 상식조차 갖지 못했다. 동서남북이 어디인지도 모를 정도다. 수업 시간에는 항상 딴짓이고, 수업을 마치면 클럽을 쏘다닌다. 구제 불능. 무지의 여왕. 앞날이 캄캄한 여고생이었다.

 

 

그녀가 공부를 안 하게 된 이유는 다소 코믹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글로 옮겨 적으면 씁쓸하게 다가온다. 사야카는 친구를 사귀고 싶었지만, 먼저 다가와 주는 사람이 없었다. 어머니는 따돌림 문제를 학교에 항의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럴 수도 있죠’였다. 사야카는 전학을 가고 메이란 중학교에 입학한 뒤 드디어 친구를 만나게 된다. 문제는 그 친구들이 하나같이 불량소녀라는 것. 친구가 그리운 소녀에게 친구가 되어준 불량소녀들. 어쩌면 사야카는 공부 대신 친구를 선택한 걸지도 모른다. 그녀가 공부와 담을 쌓았다는 사실에 조금은 공감할 수 있었다.

 

사야카는 담배를 소지한 것이 걸려 무기한 정학을 받는다. 어머니는 이를 기회로 사야카를 입시 준비 학원에 보내게 되는데… 이곳의 츠보타 선생님은 정말 특이한 분이었다. 노랗게 머리를 염색하고 핫팬츠를 입고 나타난 사야카를 반갑게 맞이한다. 딱 봐도 불량끼가 줄줄 흐르는데도 오히려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한다. 이어 사야카의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 시험을 치지만… 점수는 0점. 그럼에도 츠보타 선생님은 사야카를 칭찬한다. 맞춘 문제는 없지만, 빈칸으로 놔둔 것도 없다며 적극적인 자세라 말한다. 그야말로 초긍정 선생님! 츠보타는 사야카에게 목표 대학을 정하라고 권하더니, 덜컥 게이오 대학교를 제시한다. 자신이 게이오 대학에 간다는 게 어이 없는 사야카는 농담으로 받아들이며 희망대학에 ‘게이오’라고 적는다. 그렇게 불량소녀의 명문대학 입학 도전이 시작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야카는 게이오 대학에 입학한다. 사야카가 게이오에 입학하면 발가벗고 물구나무를 서겠다는 담임의 약속도 이루어진다. 어찌보면 뻔해 보이는 결말이다. 그 사이의 전개 과정도 뻔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진실은 때론 뻔한 법이다. 중요한 것은 그 뻔한 진실을 파악해 삶에 적용하는 게 아닐까? 불량소녀의 기적 같은 합격 수기를 보며 가슴 벅찬 감동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인생의 단맛만 쏙 빨아먹지 않았으면 한다. 달달한 열매를 맺기까지 사야카가 겪어야 했던 인생의 쓴맛도 함께 읽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속에 등장한 사야카의 성공 비결을 3가지 키워드로 정리하고자 한다.

 

1) 믿어주는 사람

 

츠보타 선생님은 무작정 긍정을 외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칭찬도 막 하지 않는다. 잘한 점을 찾아내고 무엇을 잘했는지 구체적으로 말한다. 여기에 상대의 관심사를 파악하는 노력도 더한다. 축구 덕후에겐 ‘주제 무리뉴’를 거론하고, 만화 덕후에겐 ‘유유백서’를 이야기한다. 아버지에게 복수하겠다는 비뚤어진 아들에게는 기상천외한 복수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학생들의 동기를 자극한다. 공부를 강요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공부하고 싶도록 만든다. 정말 존경스러운 선생님이다.

 

츠보타가 진심으로 초긍정의 마음을 가졌을까? 그것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는 학생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밤늦게까지 수업 자료를 준비하고, 이에 더해 학생의 관심사까지 공부한다. 그런 노력을 보고 있으면 믿지 않을 수 없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힐링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으로 믿음을 보여주는 진정한 멘토였다.

 

 

이처럼 무한한 신뢰를 전하는 멘토의 존재는 성장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이를 밝혀낸 통계 조사가 있다. 1954년 미국의 심리학자들은 카우아이섬에서 태어난 833명의 아이를 모두 조사하기로 한다. 카우아이섬은 열악한 환경을 갖고 있었고, 그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대부분 범죄자가 되거나 약물 중독에 빠져야 했다. 심리학자들은 무엇이 사람을 절망에 빠뜨리는지 알아보기 위한 조사를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1/3에 해당하는 72명의 아이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바르고 건강하게 자랐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마땅한 공통점도 없었다. 심지어 72명의 아이들은 열악한 카우아이 섬에서도 최하층에 해당하는 불우한 가정 환경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왜 절망에 빠지지 않았을까? 어떻게 명문대에 진학하고, 장학금을 받으며, 훌륭한 청년으로 자랄 수 있었을까?

 

심리학자 에미 워너는 이들의 자료를 다시 꼼꼼하게 살펴보았고, 마침내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믿어주는 어른이 존재했다. 가족이든, 이웃이든, 학교 선생님이든 누구라도 상관 없었다. ‘너는 잘 할 수 있어. 나는 너를 믿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1명 존재했을 뿐이다. 그들의 존재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그 결과 최악의 환경에서도 훌륭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사야카에게는 츠보타가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까?

 

츠보타 외에도 믿어주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어머니다. 어머니는 사야카를 존중했다. 그녀의 의견을 존중하고, 악의가 없다고 믿었다. 사야카때문에 학교에 불려나가도 딸을 욕하기보다는 진심으로 변호했다. 그녀의 학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까지 하며 딸을 응원했다. 사야카는 정말 복 많은 소녀였다. 전교 꼴찌에서 명문대에 합격하는 기적을 이뤄서가 아니다. 그녀를 진심으로 믿어주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지 않은가.

 

 

2) 포기

 

츠보타 선생님의 진심을 알게 된 사야카는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다. 진한 화장과 야한 의상도 포기했다. 머릿속에 오로지 공부만 생각한다. 그럼에도 친구들과의 만남은 포기하지 못한다. 노래방에서 책을 펴고 공부하는 한이 있어도 친구들과 노는 자리에는 꼬박꼬박 참석한다. 그녀가 왜 공부를 포기했는지 생각해본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친구들이 사야카를 말린다.

 

“이제 너와 놀지 않기로 했어.”

 

이것은 결별 선언이 아니었다. 사야카가 게이오에 합격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응원이었다. 그렇게 사야카는 인생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포기한다. 더 중요한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사람에게는 시간과 육체의 한계가 있다. 놀고 싶은 거 다 놀고, 보고 싶은 거 다 보면서, 이루고 싶은 것까지 이루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래서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말은, 무언가를 포기하겠다는 말과 같다고 생각한다. 사야카는 게이오 대학에 가기 위해 친구들과 노는 것을 포기했다. 그럼 나는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포기할 수 있을까? 모두 한 번쯤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3) 노력

 

사야카의 성공 스토리를 보며 어떤 감정이 드는가?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 도전하고 싶은 용기? 나는 경외감이 솟았다. 그녀가 1년 동안 해온 노력을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질 정도니까. 동시에 두려워졌다. 나는 과연 저렇게 노력할 수 있을까? 몰입할 수 있을까? 해낼 수 있을까?

 

가장 경악스러운 장면은 친구들과 노래방 장면이었다. 그 시끄러운 노래방에서도 사야카는 책을 보며 공부했다. 어떻게 집중할 수 있는 건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나는 일 할 때면 조용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음악소리가 들리거나 하다못해 야채장수 트럭이라도 지나가면 몰입이 깨져 고생하기도 한다. 사야카의 노력이 두려워지는 이유다.

 

이 영화를 보고 핑크빛 결말에 마냥 훈훈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사야카는 게이오 입학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치루기 위해 벼락치기 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된다. 그녀는 무려 1년 동안 벼락치기 모드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빡세게 꾸준했다. 이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포기하고 싶다는 말이 몇 번이고 튀어나올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사야카는 그런 일을 해낸 것이다.

 

사야카의 성공 스토리를 보며 두려워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노력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를 이해했을 때 더 큰 감동을 선사할 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참고 : 영화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