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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0대 초반에 약 반년간 고시원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당시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부도 하고 용돈도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한 일이었는데, 생각보다 공부에 집중하기도 어렵고, 너무도 돈이 안 됐기 때문에 관뒀다. (차라리 주말에 가끔 단기 알바 뛰는 게 공부도 더 하고 돈도 더 벌더라)

 

그때 고시원에서 일했던 경험 때문인지 미디어에서 고시원 얘기가 나올 때마다 가슴이 짠하다. 그곳에서 살면서 마주치던 사람들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사실 고시원이라고 하지만 정말 고시 공부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은근히 회사원이 많고, 대학생이나 외국인 유학생도 많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시끄럽게 하지도 않고, 다들 정말 조용히 지내줘서 정말 고마웠다.

 

하지만 모두가 착한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어이가 없는 사람도 정말 많았는데, 이 썰을 다 풀려면 연재물이 되어야 할 것 같아서 자제하고, 오늘은 다음 사례만 이야기하려고 한다. 고시원에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다. 한 커뮤니티에 퇴실당한 사람이 썼다는 글이 올라왔는데, 보는 순간 ‘아! 저거!’ 하며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르고 말았다.

 

 

 

 

아마 저 사람은 고시원 주인과 사이가 좋지 않았나 보다. 그걸 빌미로 복수하겠다며 쓰레기장을 만들고 떠난 듯하다. 이걸 보니 예전에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겪은 사람은 남자였는데, 저렇게 물건이 널부러진 정도면 그나마 다행이다. 바닥이며 책상이며 뭘 묻혀 놨는지 끈적끈적한 데다 화장실은 곰팡이와 먼지 천국이라 ‘여기서 어떻게 씻고 다녔지?’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최악은 따로 있었으니, 침구류에서 ‘빈대’가 나왔다. 빈대가 그렇게 생긴 줄 그때 처음 알았다. 결국 매트리스와 이불을 전부 버려야만 했다.

 

이 비슷한 일을 몇 번은 겪었던 것 같다. 보통은 씀씀이가 더러운 정도였지만, 가끔 그 정도가 너무 심한 사람도 있었고, 위 사례처럼 복수라도 하는 것처럼 난장판을 벌이고 떠나는 사람도 있었다. 그것 때문에 울상짓는 건 나였다. 사장님은 가끔 오시니까. ㅠㅠ 뭐 덕분에 청소하는 데는 도가 트기도 했지만, 거기에 뺏기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 관두게 되었다. (빨리 관뒀어야 했는데, 책임감이 강한 성격이라 6개월을… ㅠㅠ)

 

그때 배운 인생 교훈이 있다. 사람은 떠나는 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점이다. 이름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들이 남긴 흔적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 특히 사람의 됨됨이에 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시원에 양심을 버리고 간 사람이 다른 곳에서 잘 살 수 있을까? 험담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 걱정돼서 하는 말이다. (아무리 청소가 힘들어도 그곳에 살던 사람을 원망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희한하다. 욕지거리 정도는 내뱉어도 될 것 같은데, 그런 적이 없다 – 나란 놈 참 착하네)

 

떠나간 모습이 아름다워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내가 남긴 흔적은 누군가의 수고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고시원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식당일 수도 있고, 공원일 수도 있다. 똑같이 식당에서 밥을 먹어도 지나간 자리가 난장판인 사람이 있고, 깔끔한 사람이 있다. 돈 내고 밥 먹으러 와서 뒷정리까지 해야 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정도까지 바라는 게 아니다. 최소한 음식 엎고, 컵 깨뜨리는 것 정도는 조심하자는 말이다.

 

고시원 관련 게시물이 올라왔기에 옛날 생각도 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적어보았다. 나도 앞으로 살면서 흔적을 남기고 떠나야 하는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그때 떠나고 난 모습이 아름다울 수 있도록 신경 쓰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사람에 대한 추억도 절정-대미의 법칙을 따른다. 떠나는 모습이 추하면 추한 사람이 되고, 떠나는 모습이 아름다우면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참고 : 퇴실조치받은 고시원 여자, 더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