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다고 카메라가 없는 게 말이 되나요?”

요즘 하도 가짜뉴스가 판을 치다 보니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뭐만 하면 ‘이거 조작 아니야?’라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일이다. 사실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여부를 정확히 팩트체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기도 하고, 하도 조작된 게시물에 속다 보니 그 스트레스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작용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때로는 그 반응이 과해서 공감 능력마저 잃어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 때도 있다.

 

한 커뮤니티에 ‘가난하다고 놀림받은 만화’라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만화의 내용은 눈물 없이 보기 힘들 내용이었다. 주인공은 가난한 모자가정에서 태어났는데, 카메라를 살 돈이 없어 사진 대신에 어머니가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코멘트까지 붙여 정성스레 앨범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들이 놀러 와 앨범을 보여줬다가 ‘사진관 갈 돈도 없었냐’며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고, 화가 난 주인공은 앨범에 담긴 그림을 전부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화도 한 번 내지 않고, 오히려 상냥한 말투로 “부끄럽게 해서 미안해 아들. 그렇지만 이건 엄마의 보물이란다.”라고 말해 눈물이 흘렀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만화에 아래와 같은 댓글이 달렸다.

 

 

요즘은 카메라가 달린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어서 카메라가 없는 가정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만 해도 카메라는 쉽게 장만하기 힘든 물건이었다. (어쩌면 우리 집만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학교에서 수련회를 가거나 수학여행을 갈 때면 디지털카메라를 가진 친구들이 몹시 부러웠다. 다른 친구들이 디지털카메라를 가져올 때 혼자서 구형 필름 카메라를 들고가야 해서 그냥 카메라 없이 수학여행을 다녀온 적이 훨씬 많았다. 나중에 대학생이 되어서야 겨우 디지털카메라를 장만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똑딱이라 고가의 DSLR에 비하면 볼품없다고 느낀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 똑딱이를 장만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다른 사람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해도, 그 사람이 되기 전에는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특히, 나에게는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 남에게는 전혀 접해보지 못했던 일일 수도 있다. 해외여행을 가거나 하다못해 지방을 다녀와도 내가 알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일을 어렵지 않게 경험할 수 있다. 그래서 올바른 소통을 위해서는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감 능력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모든 사실을 의심도 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말은 아니다. 특히 분쟁이 있을 경우에는 더 그렇다. 양쪽의 말을 모두 듣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전에 어느 한 쪽의 말만 덥석 믿으면 안 된다. 하지만 그런 일도 아닌데 무작정 의심부터 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어떤 금전적 이익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어머니를 향한 미안한 마음을 그려낸 만화에 조작 운운하면 어디가서 눈치 없다는 소리 듣기 십상이다.

 

‘지식의 저주’라는 말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상대방이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지식의 저주는 꼭 지식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경험, 상식, 논리가 항상 옳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식의 저주에 빠져 공감 능력을 상실할 수 있다. 냉철하고 똑똑한 사람이 되기 위해 모든 것을 의심해 보는 지혜를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친절한 마음까지 잊어버리지 말았으면 한다.

 

참고 <가난하다고 놀림받은 만화>, 오늘의 유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