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자가 마냥 겸손하면 안 되는 이유

성공한 사람이 꼭 갖춰야 하는 자세가 있다. 바로 겸손함이다. 성공했다는 말은 경쟁에서 승리했다는 말이고, 당연히 적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때 겸손함을 갖추지 못하고 갑질 같은 만행을 저지르면 더 큰 미움을 사게 되고, 성공의 네트워크가 단절될 수도 있다. 그래서 큰 성공을 거둘수록 겸손할 줄 알아야 하고, 주변 관계를 잘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작사가 김이나는 마냥 겸손한 것도 미덕은 아니라고 말한다. 김이나는 가장 성공한 작사가로 손꼽힌다. 성시경, 신화, 아이유 그리고 유산슬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최고 가수들의 명곡을 작사했다. 여기에 입담도 좋아서 종종 토크쇼에 출연하기도 하는 등 스타 작사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큰 성공을 거두다 보니 굳이 작사비를 받지 않아도 저작권료만으로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어서 한동안 작사비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업계 탑 작사가인 김이나가 작사비를 받지 않자, 클라이언트들이 다른 작사가에게도 작사비를 받지 말라고 요구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클라이언트가 “네 선배 김이나도 작사비를 안 받아.”라고 말하면 이름 없는 후배 작사가 입장에서는 작사비를 요구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작사비를 요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영화 포스터 디자이너로 유명한 박시영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자신은 이미 성공했고 벌 만큼 벌었기 때문에 자신의 페이를 올린다고 한다. 언뜻 이해가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페이를 올리면 돈을 더 받는 것 아닐까? 하지만 페이를 올리면 그만큼 일이 줄어들게 된다. 비싼 만큼 수요가 줄어드는 것이다. 대신 그 일이 후배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자신은 괜찮다고 한다.

 

또한 업계 탑 능력자의 페이는 업계 표준이 된다. 디자이너 분야는 밤샘 노동과 페이 후려치기가 굉장히 흔한 곳으로 알려졌다. 그런 분야에서 업계 탑 능력자가 가격을 올리면 이를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의 페이도 함께 올라 시장 전체 페이가 상승하는 것이다. 또한 부당한 야근을 없애기 위해 밤샘 작업과 주말 근무도 무조건 피한다고 한다.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표준이 된다는 것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셈이다.

 

 

작곡가 김형석은 이런 말을 했다. “영감의 원천은 입금에서 나온다.” 이 말은 콘텐츠 크리에이터에게 진리와 같다. 제대로 된 보상이 없다면 창작 의욕은 사라지고 만다. 따라서 페이 후려치기 같은 일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만약 이런 악습이 사라지지 않고 지속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업계 자체가 완전히 망해버릴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일본 영화계의 몰락이다.

 

과거 일본 영화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했다. 세계 영화제를 휩쓸었고, 평론가의 사랑을 받으며, 영화 학도들이 반드시 공부해야 할 명작들을 쏟아냈다. 그런 일본 영화계가 2000년대 이후로 완전히 몰락했다. 이유는 돈에 있었다. 일본에서는 영화가 흥행해도 막상 감독에게 돌아가는 돈은 별로 없다고 한다. ‘제작위원회’라는 투자 시스템으로 제작비를 충당하고 영화가 성공하면 수익은 대부분 투자자에게 돌아간다. 결국, 영화가 성공해도 돌아오는 보상이 없으니 창작 의욕은 떨어지고, 그게 시스템 전체로 퍼져 몰락의 길을 걸은 셈이다.

 

 

반면 우리나라 영화계는 날이 갈수록 승승장구하고 있다. 여기에는 업계 탑 감독들의 당당한 권리 행사가 한몫했다고 본다. 올해 아카데미를 제패한 봉준호 감독은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52시간 근로 기준을 칼 같이 지킨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법에 명시된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이지만, 영화 제작 현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 일이었다. 만약 다른 무명 감독이 이런 식으로 행동했다면, 제작사로부터 엄청난 압박을 받았을 수도 있다. 봉준호 감독은 이 모든 걸 알면서 일부러 지켰다. 자신의 행동이 업계의 기준이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은 겸손해야 하지만 마냥 겸손해서는 안 된다. 타당한 권리는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어야 하고, 악습과 적폐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비판할 수도 있어야 한다. 이를 두고 오만하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 업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적폐 추방에 도움이 된다면, 그때는 미움받을 용기를 가지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진짜 업계 ‘탑’ 능력자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참고 : 업계 탑 능력자들이 마냥 겸손하면 안되는 이유, 여성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