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전념』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바로 ‘연애’에 관한 이야기였다. 전념, 몰입, 헌신, 신념, 꾸준함을 이야기하는 책에서 웬 연애 이야기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름 사랑꾼으로서 사랑에 전념하는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눈이 갈 수밖에 없었다.
‘전념하는 사랑’이란 과연 무엇일까? ‘전념하는 사랑’은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사랑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마지막으로 우리는 어떤 사랑을 추구해야 할까? 책 『전념』을 통해 찐 사랑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1) 선택의 역설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는 2004년 저서 『선택의 심리학』에서 선택지가 많으면 오히려 결정 마비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컴퓨터 키보드를 사려고 쇼핑 앱에 접속했다가 30분이 훌쩍 넘어간다거나, 점심 메뉴를 고르려고 배달 앱을 끝도 없이 뒤져본 적이 있다면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이러한 선택의 역설이 연애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킬까?
경제학자 프레드 허시는 선택의 자유가 커질수록 만족하지 못하는 현상을 지적했다. ‘충분히 괜찮은’ 선택지로도 만족할 수 있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데, 현대인들은 ‘모든 결정이 가장 좋은 선택임이 확실하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갖가지 조건을 따져가며 가장 잘 맞는 사람을 찾고자 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존재할 확률은 로또에 당첨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인생은 실전이다』에 나왔듯이 동시에 일어날 확률은 곱으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백마 탄 왕자와 청순가련 미소녀를 찾다간 영원히 솔로로 지내야 한다.
또는 그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허구적인 존재를 상상하며 현실과 비교하기도 한다. 이 사람을 선택하면 이게 아쉬워서 안 되고, 저 사람을 선택하면 저게 아쉬워서 안 된다. 그렇게 허구적으로 완벽한 대상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선택을 괴로워한다.
과도한 선택의 자유는 지나치게 많은 책임감을 부여하기도 한다. 그 많은 선택지 중에서 내가 고른 것이 꽝이라면? 그때 돌아오는 책임은 더 무섭게 느껴진다. 이와 비슷한 두려움이 연애를 가로막는다. 내가 사귄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면 어쩌지? 누구나 이런 두려움이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지 제대로 알아보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문제는 이게 너무 두려운 나머지 자연스러운 만남만 추구하다가 아예 연애 세포가 사망해버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충분히 괜찮은 사람인데도 말이다)
이 모든 것이 합쳐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기대가 비현실적으로 높아진다.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 미련 없는 완벽한 선택을 하기 위해, 나중에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내세우고, 그 조건을 통과하는 사람만 만나고자 한다. 그러다 안 되면 애초에 연애할 기회를 차단해버리거나 주구장창 썸만 타며 진지한 관계를 이루는 걸 피한다.
이러한 세태를 잘 보여주는 통계가 있다. 일단 우리 모두 알다시피 결혼까지 이어지는 관계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1962년에는 30세 미만 미국인 5명 중 3명이 기혼이었으나, 50년 후 그 수치는 5명 중 1명으로 대폭 감소했다.
그렇다고 밀레니얼 세대가 결혼 대신 자유로는 성생활을 선택한 것도 아니다. 샌디에이고 주립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나 X세대와 비교했을 때, 밀레니얼 세대가 성관계한 이성의 수가 오히려 더 적게 나타났다. 더 많은 선택이 더 많은 자유를 가져올 거라 생각했지만, 실상은 연애의 기회가 줄어드는 결과로 나타난 셈이다.
사실 이런 내적 요인보다 더 큰 문제는 경제적 불안정 같은 외적 요인이다. 안타깝게도 현 상황은 외적 요인의 어려움에 내적 요인의 어려움까지 겹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힘든 상황 속에서 사랑을 이루려고 하기보다 그냥 연애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가뜩이나 연애하기 힘든데 연애할 동기마저 선택의 역설이 차단하고 있다.
(2) 찐 사랑을 하는 법
선택의 역설을 벗어나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다음 말에 주목해야 한다.
“의사결정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은 의사결정자의 선택 그 자체가 아니라, 의사결정자가 자신의 선택에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에 달려있다.”
아무리 꼼꼼하게 계획해도 미래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 한 걸음을 내딛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첫발을 내디디면, 그다음 단계가 이전보다 뚜렷해진다. 그러면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된다. 그렇게 자신의 선택을 좋은 결정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의사결정의 핵심이다.
이는 연인이나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다. 책 『전념』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서로에게 헌신해왔다는 사실에 집중하고, 관계가 잘 굴러가도록 노력하는 것. 나는 이것이 사랑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연애에서 사귀는 순간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해서 OK 사인을 받는다던가, ‘오늘부터 1일’을 따지기 시작하는 것은 분명 의미 있고 기념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게 사랑의 전부는 아니다. 진짜는 사귀고 나서 시작된다.
사귀기 전보다 사귀고 나서가 더 힘들고, 연애보다 결혼이 더 힘들며, 결혼보다 육아가 더 힘들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우리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이 마냥 고통스러운 일은 아니다. 연애를 오래 해봤거나 결혼한 지 오래 된 사람은 알 것이다. 더 많이 노력해야 하지만, 그만큼 얻게 되는 기쁨도 더욱더 커진다.
그러니 누군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고민을 내려놓자. 더 중요한 것은 그 선택에 얼마나 최선을 다했느냐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을 고르려고 하지 말고, 어느 정도 괜찮은 사람이라면 일단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만나볼수록, 더 깊이 알아갈수록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그것이 장점이든 단점이든 맞춰나가는 것이 진정한 ‘관계’이다. (물론 진짜 아니다 싶으면 관계를 끊을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반대로 이런 상황이 되면 또 매몰 비용에 빠져 끊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ㅠㅠ)
선택의 순간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 설령 시작은 누가 봐도 잘못된 선택처럼 보일지라도, 관계를 이어나가며 그것을 옳은 선택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러면 주변에서는 ‘아아… 이것이 사랑의 힘인가…’라고 말할 테지만, 사실 그것은 꾸준한 전념의 힘이다. 상대방에게 전념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찐 사랑이라는 걸 잊지 말자.
마지막으로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를 소개해드리면서 마치고자 한다. 지금 한 사람을 사랑해서 결혼까지 해 본 내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공감되는 이야기다. 당신도 누군가와 오래도록 사랑한다면 이 시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와 세상을 바꾸는
전념의 놀라운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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