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기자인 조슈아 포어는 2005년 에너지 기업 콘 에디슨 본사 건물 19층 대강당에서 열린 전미 메모리 챔피언십을 보러 갔다. 전미 메모리 챔피언십은 전 세계에서 누가 가장 기억력이 좋은가를 뽑는 시합이다. 2005년에는 다음의 다섯 종목이 실시되었다.
1) 50행짜리 미발표 시를 통째로 암송하기.
2) 이름이 적힌 99명의 얼굴이 담긴 사진을 보고 15분 안에 모두 암기.
3) 무작위로 뽑은 300단어를 15분 동안 암기.
4) 1000자리 무작위 숫자를 5분 동안 암기.
5) 뒤섞어 놓은 카드 한 벌을 5분 동안 순서대로 외우기.
세계에서 최고 수준의 기억력을 가진 36명의 사람이 참가한 이 대회에는 세계 메모리 그랜드 마스터도 두 명이나 있었다. 세계 메모리 그랜드 마스터는 1,000자리 무작위 숫자와 순서가 뒤섞인 카드 열 벌을 각각 한 시간 안에 외우며 또 다른 카드를 2분 안에 외울 수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가히 기억력의 천재이라고 할 수 있다. 조슈아 포어는 이 대회에 참가한 메모리 그랜드 마스터인 영국 출신 에릭 쿡을 인터뷰했다.
“자신이 천재라는 사실을 언제 깨달았나요?”
“천재요? 저 천재 아니에요. 제 기억력은 보통 수준입니다.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고요. 기억력이 보통이라고 해도 제대로 활용하기만 하면 대단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조슈아는 에릭이 겸손을 떠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2004년 전미 메모리 챔피언십 챔피언이었던 밴 프리드모어가 어떤 신문사에서 한 인터뷰 기사 떠올랐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고, 기억이 작동하는 법을 이해하는 겁니다.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밴이 보여 주는 기억 능력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한 시간 동안 무작위 숫자 1,528개를 외우고 어떤 시든 그 자리에서 가뿐하게 외운다. 순서를 뒤섞은 카드 한 벌을 32초 만에 순서대로 암기할 뿐 아니라 96개의 역사적 사실을 5분 안에 날짜대로 외울 수 있었다. 심지어 원주율 값을 5만 자리까지 달달 외웠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을 과연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타고난 기억력을 소유한 기억 천재가 그냥 하는 이야기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조슈아는 이상하게도 밴이 말한 ‘누구나 할 수 있다’라는 말이 가슴 속에 맴 돌았다. 게다가 2005년 챔피언십 대회에 참가한 메모리 그랜드 마스터 또한 평범한 사람이 기억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적절한 방법론을 열심히 노력한다면 누구라도 기억력 천재가 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조슈아 포어는 진짜 그러한지를 스스로 실험해 보고자 마음먹었다.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기억력이 부족한 평범한 자기가 과연 기억을 이해하고 제대로 된 기술을 익히면 기억력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는지 궁금해 진 것이다. 그래서 조슈아는 2006년 전미 메모리 챔피언십 참가를 목표로 1년 동안 꾸준히 기억력 기술을 연마한다. 과연 평범한 조슈아가 비약적인 기억력을 키울 수 있었을까? 2006년 전미 메모리 챔피언십에서 챔피언이 된 사람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조슈아 포어!
기억이란 무엇인가?
2004년 전미 메모리 챔피언십 챔피언인 밴 프리드모어가 한 말을 다시 상기해 보자.
“중요한 것은 기술이고, 기억이 작동하는 법을 이해하는 겁니다.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기억이 어떻게 작동되는 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적절한 기억 방법을 배우면 누구나 기억력을 향상 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조슈아 포어는 그것을 증명했다. 우리 또한 이번 ‘기억’장을 통해 ‘기억이 작동하는 법’과 ‘기억력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기술할 것이다. 물론 기억력 대회에 나가기 위한 기억술이 아니라 공부와 업무를 제대로 하기 위한 내용이다. 기억이란 무엇인지, 주의력, 작업기억, 장기기억, 효과적인 기억 방법 등을 알아볼 것이다.
그렇다면 기억이란 과연 무엇인가?
간질병 환자였던 헨리 구스타프 몰레이슨의 연구사례는 신경과학의 획기적인 발전을 이끌었는데 그 이유는 ‘기억’에 대한 이해를 크게 증진시켰기 때문이다. 헨리는 9살 때 자전거 사고로 머리를 다친 후 간헐적으로 경련증세를 보였다. 25살이 되던 해에 헨리는 해마 일부를 제거하는 뇌수술을 받았고 증세가 많이 완화되었다. 하지만 수술 이후 헨리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헨리는 십 여분 전에 인사를 나누었던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보자 처음 보는 사람처럼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헨리의 기억은 몇 분 이상 지속되지 않는 듯 보였다. 다시 말해 그는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지 못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헨리의 장기기억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던 것이다. 25살 이전에 자신의 겪었던 모든 삶을 기억하고 있었다. 자 이렇게 어느 순간 더 이상 기억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헨리는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헨리의 마지막 해의 아침을 떠올려 보자. 헨리는 아침에 일어나 노화된 몸을 이끌고 화장실에서 씻기 위에 힘들게 걸어갔을 것이다. 몸이 매우 안 좋은 것 같다고 느낀다. 그리고 화장실에 있는 거울 속 자신을 쳐다본다. 헨리는 깜짝 놀란다.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리고 다시 거울을 본다. 헨리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의 얼굴이 너무 늙어 보이는 것이다. 헨리의 기억은 25살에 멈춰있다. 당연히 기억하는 자신의 얼굴은 25살의 건장한 청년의 모습이다. 그런데 거울 속 자기는 주름이 가득한 80세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너무 당황스러워 어쩔 줄을 모른다.
하지만 더 끔찍한 사실은 시간이 조그만 흐르면 자신이 충격 받았다는 사실조차 헨리는 기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침에 거울을 보며 충격을 받았던 일을 헨리는 매일 아침, 그것도 50년 넘게 했을 것이다.
아직도 뇌과학이 가야할 길이 먼 것은 사실이지만 기억이 저장되고 재현되는 과정은 비교적 정확히 밝혀져 있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감각정보는 뇌간을 통해 시상으로 전달한다. 이렇게 들어온 다양한 감각정보들은 시상에서 뇌의 각 부위로 전송하고 여기서 처리된 정보는 전전두피질을 거쳐 단기기억으로 저장되게 된다. 하지만 이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이 되기 위해서는 해마의 분류작업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 헨리의 해마 제거는 장기기억 형성에 있어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해마는 다양한 단기 기억 정보들을 항목별로 분류하여 여러 뇌 부위로 전송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단어는 측두엽, 시각과 색상에 관련된 기억은 후두엽, 촉각과 움직임은 두정엽, 감정과 관련된 기억은 편도체로 전송된다. 뇌과학자들은 숫자, 색상, 표정, 동식물, 감정, 소리 등이 저장되는 두뇌 부위를 약 20곳 정도까지 발견했다.
컴퓨터의 세계에서 사는 우리들은 뇌의 작용이 컴퓨터와 거의 같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메커니즘이 상당히 다른 편이다. 특히 기억 방식이 다르다. 컴퓨터는 기억할 정보를 분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하나의 동영상이 정보가 있다고 할 때 컴퓨터는 저장할 정보를 따로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파일로 저장한다. 하지만 만약 그 하나의 동영상을 뇌에 저장하게 된다면 영상에 나오는 화면, 소리, 분위기, 자막 등이 해마에서 낱낱이 분리되어 각각의 정보를 담당할 뇌 부위에 흩어져 저장된다.
이런 분할 저장은 컴퓨터처럼 순차적으로 저장하는 방식보다 훨씬 방대한 내용을 더 효율적으로 저장할 수 있기 때문에 미래 컴퓨터는 인간의 기억 방식을 재현해 내는 것이 하나의 목표가 될 정도다.
그렇다면 궁금하다. 어떻게 분리되었던 기억들을 떠올릴 때는 하나의 기억처럼 떠오르는 것인가? 첫사랑을 기억할 때 그녀의 표정, 그녀의 말, 그녀와 함께 했을 때의 느낌 등이 나눠져 있을 텐데 말이다. 최신 연구에 의하면 사람의 뇌에는 1초당 약 40회의 진동수를 가진 전자기파가 분포하는데 기억의 한 단편이 다른 부위에 저장되어 있는 다른 기억의 파편을 자극하여 같은 진동수를 만들게 한다. 그렇게 진동하는 전자기파가 뇌 속에 끊임없이 요동치면서 다른 부위에 저장된 기억의 조각들을 소환해 하나의 통합된 기억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때 기억에 대한 또 다른 놀라운 진실을 우리는 알게 된다. 단기기억은 신경전달물질의 강도 및 전기적 신호 차원에서 머물지만 장기기억은 단백질 분자 수준에서 기록된다. 앞서 알아봤던 것처럼 장기기억은 뇌의 해부학적 변화(뇌의 가소성)를 동반한다는 것이다. 그 장기기억을 다시 떠올리기 위해 각 부위에 흩어졌던 기억들을 재조합하면 이 과정에서 단백질의 분자 구조가 어떻게든 재배열된다. 다시 말해 기억을 떠올리는 행위 자체가 기억의 미묘한 변형을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다. 기억은 박제되어 있지 않고 살아 움직인다. 우리가 꼼짝없이 그 기억을 박제시키기 위해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기억은 더 격렬히 변화한다. 이런 기억 메커니즘 때문에 우리는 어떤 기억은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지고 어떤 기억은 왜곡되기도 하는 것이다.
기억력,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참고 <완벽한 공부법>, 고영성·신영준 저
Sponsored by ROK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