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으로 6년을 일하고 깨달은 것

책 <인생은 실전이다>에 나온 말이다.

 

‘나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절대 생고생을 돈 주고 사서 할 필요는 없다. 최저 시급이라도 받지 않으면, 고생은 피하자. 젊어서 고생에 익숙해졌다가 재수 없으면 평생 ‘투덜이 스머프’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젊을 때는 고생이 아니라 좋은 경험을 해야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울컥하더라. 파노라마처럼 나의 과거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봐도 내가 안쓰럽던 과거의 날들이었다.

 

여러 방송국을 오가며 AD(조연출) 또는 FD(촬영현장 진행)로 6년을 일했다. 고3 때 담임선생님이 내신성적에 맞춰 정해 준 몇몇 대학교 중 별생각 없이 지방대 언론정보학부에 원서를 넣었고, 그걸 계기로 전공을 살리기 위해 첫 직장을 구했다.

 

한 케이블 방송국에서 면접을 보려고 만난 PD는 나의 첫 사수가 되었다. 그가 한 이야기는 내가 방송국에서 일했던 내내 나의 삶을 불안하게 만든 이유가 되었다.

 

“6개월 계약직이고요. 최대 1년 11개월까지 일할 수 있어요.”

 

나는 계약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정규직, 비정규직의 개념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로 계약서를 작성했고, 요즘 같이 취업이 어려울 때 아무 경력 없는 나를 채용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집으로 돌아가던 9년 전 그날. 이제 막 직장을 구한 사회초년생의 가볍고도 무거운 마음을 잊지 못한다.

 

그곳에서 100만 원 내외의 월급을 받고 일을 했다. ‘그래도 어느 회사는 야근에 주말 출근을 해도 수당이 안 나온다던데, 여기는 야근하면 수당 나오니까 좋다.’ 당연한 걸 당연하게 지키지 않는 다른 회사들과 비교하면서 나는 그나마 좋은 환경에서 일한다고 생각했다.

 

몇 개월 후 사수가 바뀌었고 그때부터 나는 적응을 못해 힘들어했다. 전 사수와 일하는 스타일이 너무 달랐다. 바뀐 사수는 친절하게 일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아니었고 나는 알아서 내 일을 눈치껏 해야 했다. 직장생활 다 합쳐서 6개월 경력이 전부였던 나는 이 ‘눈치껏’이 너무나 어려워서 집에 가면 녹초가 되었고 다음 날 출근하는 게 두려워 새벽 늦게서야 잠에 들곤 했다.

 

시간이 흘러 사수와의 문제도 사라지고 일하는 데에 무리가 없을 만큼의 경험을 쌓았다. 이제야 조금 편히 일할 수 있겠다 싶었지만, 곧 계약 종료일을 다가왔다.

일을 그만두던 날 그동안 정들었던 회사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아쉬운 마음에 펑펑 울었다. 인사를 받은 분들도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음에 안타까워하며 다른 데 가서도 잘 지내라고 말해주었다. 성실히, 그리고 우직하게 인정받으며 일했지만 나는 그곳에서 2년을 넘겨 일할 수 없었고 23개월 간의 첫 직장 생활이 끝났다.

 

 

 

 

몇 년 후 공중파 방송사에서 일을 했다. 파견 계약직이었다.

 

내가 들어간 팀은 어느 날 갑자기 FD가 잠수를 타는 바람에 일이 밀릴 대로 밀려 있었다. 면접 당일 밤 11시가 넘도록 면접 차림으로 일을 해야 할 정도였다. 바로 다음 날 녹화가 있었고, 곧 지방 공연 녹화도 여러 개가 잡힌 상황이라 두 달간 스파르타식으로 일을 배웠다. 이곳은 수당 지급이 안 되는 조건이었으므로 새벽까지 일하다 퇴근해도 내 돈 주고 택시비를 내서 집에 갔다. 가끔 부장님이 택시비를 쥐어 주며 집에 빨리 가라고 하면 감사할 따름이었다.

 

팀에 조인하자마자 다른 팀보다 두 배로 일을 했기 때문에 인정도 그만큼 빨리 받을 수 있었다. 팀 내 PD분들, 작가분들과도 점차 친해졌고 나도 자부심을 느끼며 힘들지만 즐겁게 일했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생활도 2년 만에 종료됐다.

 

 

 

 

그렇게 6년 동안 4개의 방송사를 옮겨 다녔다. 계약이 끝나고 마지막 퇴근을 하던 날이면 시원섭섭한 기분으로 이 생각 저 생각을 했던 게 기억난다. 이제 또 어디서 일을 하나. 당분간은 좀 쉴까? 적어도 월세 낼 돈, 생활비는 벌어야 하는데. 이 유목민 생활은 언제쯤이면 끝이 날까? 그런 생각들 말이다.

 

비정규직은 늘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그리고 피치 못하게 늘 고민하곤 한다. 월급 이상으로 일을 할 것인가, 아니면 딱 월급만큼만 일할 것인가. 말하자면 비정규직은 상단이 닫혀 있다. 120% 능력 발휘를 한다고 해도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계약 조건이 사람을 계산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도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고 주어진 일을 성실히 했다. 그러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나는 계속해서 주어진 일만 해야 했고 그 이상을 바라서는 안 됐다. 비정규직 FD의 역할과 정규직 PD의 역할은 명확히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내가 부러워했던 것의 대부분은 아주 사소했다. 입사 때 찍은 증명사진이 박힌 내 이름의 사원증, 명함, 동기라고 부를 수 있는 동료가 있는 것, 명절마다 주는 선물세트. 정작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본인이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작고 소소한 것들이 비정규직인 나에게는 크게만 보였다.

나이 서른을 넘기고 나서부터 동종업계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사라져 갔다. 일을 잘했던 한 친구는 더 이상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며 다른 분야로 떠났다. 외주 프로덕션에서 일하던 친구는 3개월치 월급이 밀렸고 결국 그 회사를 나왔다. 프리랜서 조연출 8년 차인 친구는 기약 없이 입봉(PD로서 프로그램 연출을 맡는 것)을 기다리며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나 역시 진척 없이 계속 한 곳에 머물러 있는 생활을 이어갔다.

 

“OO 씨, 이렇게 일하면 평생 FD밖에 못 해요.”
“너는 편집 실력이 형편없어서 시집이나 가는 게 낫겠다.”

 

막막한 마음으로 6년을 일하면서 들었던 최악의 말이다. FD라고 하면 묻지도 않고 마음대로 말을 놓는 내 또래의 감독님들이나 수당 못 받는 걸 뻔히 알면서도 본인이 할 일을 떠넘기고 홀연히 퇴근하는 PD, 거기까진 이해할 수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비정규직임을 상기하게 만드는 말들이었다. 오래 두고 볼 사람이 아니니 잘 보일 필요도, 조심할 필요도 없다는 그 배려 없는 말투는 결국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을 쓰다 버리는 부속품으로밖에 여기지 않는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방송사에서 6년 간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깨달은 건 한 가지였다.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거고, 그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정규직에 목숨을 걸었다.

인생은 타이밍이라 했던가. 그때 마침 ‘상상스퀘어’의 채용 소식을 접했고 나는 무조건 이 회사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입사지원서를 이를 갈며 썼고, 독서를 강조하는 회사라 생전 안 읽던 책을 눈에 불을 켜고 읽었다. 그리고 지금 상상스퀘어에서 3년째 PD로 일하고 있다.

 

상상스퀘어에 입사하게 된 계기는 ‘정규직 PD’라는 타이틀이었다. 나는 운 좋게도 그 타이틀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지낸다. 재택근무, 연차가 23일인 것보다 좋은 점은 상식이 통하는 곳이라는 것, 직원을 귀하게 여길 줄 안다는 것, 그리고 상단이 열려 있는 회사라는 것이다.

 

방송국에서 6년 일한 것과 상상스퀘어에서 3년 일한 걸 비교하면 상상스퀘어에서 일하는 게 두세 배는 더 힘들다. 장점이 많은 만큼 빡센 곳이다. 하지만 내가 열심히 하면 그만큼의 보상이 주어진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사랑은 계좌다.’ <인생은 실전이다>의 저자이자 상상스퀘어의 의장인 신영준 박사님의 그 말은 결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신 박사님의 쓰고 매운 조언은 고통스럽지만, 받아들이고 실행에 옮기면 반드시 성장한다. 누가 ‘PD는 문해력이 높아야 한다’라고 명확한 근거를 들어 조언해 줄 수 있을까? 부모님도, 존경하는 선배도, 절친도 못할 조언이다. 어떤 대단한 프로듀서를 만나더라도 이런 깨달음은 줄 수 없었을 것 같다.

불안함과 고생에 익숙해져 한 곳에 머물러 있던 비정규직 FD는 평생 세상 탓을 하는 투덜이 스머프가 될 수도 있었다. 좋은 회사를 만나고, 좋은 멘토를 만나 하루하루 감사한 날들을 보내는 지금 나는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일을 하고 싶다.

 

<인생은 실전이다>에는 신 박사님의 질 높은 메시지들이 담겨 있다. 나를 좋은 방향으로 변하게 해 준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수록되어 있어서 분명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귀한 인사이트를 제공해 줄 거라고 확신한다.

나는 지금의 운을 만나는데 6년이 걸렸다. 하지만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매일 불안함을 안은 채로 아침을 맞는 사람들이 나보다 더 빨리 운을 만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이 책을 더 많이 추천해야 한다.

취업준비생, 자영업자, N년차 직장인, 백수, 기업가 모두에게 큰 도움을 줄 책이다. <인생은 실전이다>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운을 만나게 해 줄 조력자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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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신영준&주언규, <인생은 실전이다>

 

*본 콘텐츠는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