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중 헬스장이 가장 붐비는 날은 언제일까? 바로 새해 첫날이다. 새해 다짐으로 운동을 계획하는 사람이 많으니 1월 1일에 사람이 몰리는 것이다. 물론 그 결심이 계속 이어지진 않는다. 설날 즈음에 다시 한 차례 붐볐다가 이후로 헬스장 이용객은 꾸준히 줄어든다고 한다. 그러다 내년 새해 첫날이 되면 다시 사람들이 붐비는 사이클이 반복된다. (인간은 어리석고, 같은 실수를 반복합니….)
그럼 어떻게 해야 새해 첫날의 마음가짐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그 비법의 핵심에 ‘시간경계표’가 있다. 새해 첫날처럼 무언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날을 사회학자들은 ‘시간경계표’라고 부른다. 길을 찾을 때 “편의점 앞에서 우회전해.”라는 식으로 말하는데, 시간을 여행할 때 이처럼 편의점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시간 경계표다. 이런 날은 다른 날에 비해 더 기억하기 쉽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쉬우며, 그래서 스스로 동기부여 하는 데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 책 <언제 할 것인가>에 따르면 시간경계표로 활용 가능한 날이 새해 첫날 외에도 많다고 한다. 2014년에 와튼스쿨 출신의 학자 3명이 시간경계표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우선 그들은 1월 1일에 다이어트라는 단어의 검색이 평소보다 80%나 많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 외에도 비슷하게 검색량이 치솟는 날이 또 나왔다. 매달 첫날, 매주 첫날처럼 시작을 의미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검색량이 증가했다. ‘첫 번’을 의미하는 날과 관련된 어떤 느낌이 사람들을 자극한 것이다.
헬스장 이용도 마찬가지였다. 연구팀은 한 대학교에서 체육관을 찾는 사람들에 관한 1년 치 자료를 조사했는데, 역시나 매주, 매달, 매해가 시작되는 첫날에 이용객이 증가했다. 또한 새 학기 첫날이나 생일에도 이용객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와튼스쿨 연구진은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새 출발 효과’라고 명명했다.
새 출발을 위한 시간경계표는 2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사회적 경계표, 다른 하나는 개인적 경계표다. 사회적 경계표에는 매주, 매달, 매해가 시작되는 날이나 공휴일 등이 포함된다. 개인적 경계표는 생일, 기념일, 새 학기 시작일, 첫 출근일 등 개인에게만 의미 있는 날이 포함된다. 그러나 어떤 경계표든 새 출발 효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어째서 시간경계표는 우리에게 새 출발을 위한 동기를 부여하는 걸까? 2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시간경계표는 새로운 정신적 계좌를 개설해준다. 낡은 자아와 과거에 저지른 잘못, 결함 등과 결별하고 새롭고 더 나은 자아에 관한 자신감을 불어넣게 한다.
둘째, 나무에서 눈을 돌려 숲을 보게 한다. 일상에 시달리다 보면 내가 지금 어디로 가는지 방향을 잃어버리기 쉽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이정표다. 이정표는 내가 어디에 있고(현재 상황), 어디로 가야 할지(목적) 알려준다. 시간경계표는 시간의 이정표로 작동한다. 좁은 시야를 넓혀주고, 내가 가야 할 목적이 무엇인지 상기해준다.
그럼 한 해에는 새 출발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시간경계표가 얼마나 있을까? 한 번 하나하나 따져보자.
1) 새해 첫날 : 1회
2) 매달 첫날 : 12회
3) 매주 첫날 : 52회
4) 24절기 : 24회
5) 대한민국 법정 공휴일 : 15회
대표적인 사회적 경계표만 따져도 104회가 나온다.
5) 생일 : 1회
6) 사랑하는 사람의 생일 : 1~5회
7) 개학일 또는 개강일 : 2회
8) 시험 마감일 : 4회
9) 결혼/연애 기념일 : 1회
10) 첫 출근 기념일 : 1회
11) 프로젝트 마감일 : 2~3회
12) 이 글을 본 날 : 1회
개인적 경계표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일단 생일은 무조건 들어가고, 이런저런 날들을 따지면 아무리 못해도 10회 정도는 확보할 수 있다.
개인적 경계표를 보면서 눈치챘을 수도 있는데, 사실 시간경계표 자체는 무한정 만들 수 있다. 스케일링 한 날을 기준으로 치실 사용을 시작할 수도 있고, 새 차를 산 날을 기준으로 적금을 시작할 수도 있다. 적절한 구실만 붙이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날은 무한히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시간경계표를 1년에 120개 정도 만들면 요상한 일이 벌어진다. 날짜가 항상 딱딱 들어맞지는 않겠지만, 평균 3일에 한 번꼴로 시간경계표가 등장하게 된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3일이면 결심이 흐지부지된다는 말인데, 시간경계표를 활용하면 작심삼일만으로도 1년을 채우게 된다. 매 3일마다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고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셈이다.
실제로 작심삼일을 활용해서 목표를 달성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장기간의 목표를 다르게 바라본다. 2~3달 걸리는 일이라고 보는 게 아니라, 일단 3일만 버텨보자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단 3일만 버텨보고, 그다음에 또 3일만 버텨보고, 그렇게 10번을 버티면 한 달이 되고, 33번을 버티면 100일이 된다. 고영성 작가도 800km나 걸리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여행할 때 비슷한 발상으로 고통을 견뎠다. 800km를 걷는 게 아니라 오늘 하루를 걷자. 그렇게 하루를 걷고, 하루를 걷고 하면서 30일에 걸쳐 순례길을 완주했다.
이때 중요한 것이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가짐이다. 대부분 새해 첫날에는 의욕이 넘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의욕이 사라지고, 몇 번 다짐을 어기고, 그러다가 “에이 이번에도 안 되네.” 하는 마음이 들면 계획을 포기하게 된다. 그러지 말고 한두 번 다짐을 어기는 정도는 쿨하게 넘기자. 겨우 작심삼일에 머물렀어도 괘념치 말자. 대신 이렇게 생각하자. “작심삼일도 괜찮아. 다음에 또 작심삼일 하지 뭐~” 오히려 이렇게 마음먹어야 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고 싶다면 작심삼일을 역으로 이용하자. 작심삼일은 3일밖에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3일만 해내면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자. 그다음 3일을 시작할 수 있는 시간경계표가 우리에게는 차고 넘친다. 그 모든 시간경계표를 작심삼일의 시작일로 삼는다면, 어느샌가 목표에 가까워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참고
1) 책 <언제 할 것인가>
2) 이미지 출처 :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