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학자들의 무시를 날려버린 한국인 여성의 이야기

1972년에 파리에서 열린 고서 전시회에서 한 한국인 여성이 충격적인 연구를 발표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는 구텐베르크 성서가 아닙니다. 한국의 직지심체요절입니다.”

 

그에 대한 서양 학자들의 반응은 무시 그 자체였다. “말도 안 된다.”, “동양인 여자가 뭘 알겠어?” 하지만 이런 반응 속에서도 이 여성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마침내 2001년 직지심체요절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수 있었다. 이 여성의 이름은 박병선. 한국 출신으로 프랑스 국적을 가진 역사학/종교학 박사이다.

 

 

1) 조선왕실의궤를 찾아라

 

박병선은 1950년 서울대를 졸업 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그녀의 스승이었던 이병도는 프랑스로 떠나는 제자에게 다음 내용을 부탁했다.

 

“프랑스에 가게 되면 병인양요 때 약탈당한 외규장각 조선왕실의궤의 행방을 찾아보라.”

 

박병선은 스승의 말을 따라 공부와 병행하며 고서 찾기를 시작했다. 이후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프랑스 국립 도서관의 사서로 일하면서 고서 찾기에 박차를 가한다.

 

 

2) 직지심체요절을 찾다

 

13년간 사서로 일하며 고서를 뒤지던 박병선은 중국 서적 코너에서 직지심체요절을 발견한다. 그런데 이 책에는 놀라운 구절이 담겨 있었다.

 

“이 책은 쇠를 부어 만든 글자로 찍어 배포하였다.”

 

그때까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인정받았던 건 독일 구텐베르크의 성서였다. 그런데 직지심체요절은 그보다 무려 78년이나 앞선,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본이었다. 박병선은 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홀로 연구했고 1972년 파리 고서전에서 이를 발표한다.

 

하지만 학계의 반응은 냉랭했다. 금속활자는 문명의 발전을 한 단계 끌어올린 놀라운 발명으로 인정받는데, 그게 동양의 조그만 나라에서 최초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내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국내 학자들도 못하는 걸 여자가 해낼리 없다.”, “왜 이런 걸 들춰내 외교 관계를 복잡하게 만드느냐?” 그녀에게 쏟아진 반응은 참담했다.

 

하지만 이후 철저한 검증이 이루어졌고, 직지심체요절은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본으로 인정받기에 이른다. 이 일로 그녀에게는 ‘직지대모’라는 별명이 생겼다.

 

 

3) 외규장각 의궤를 되찾다

 

1975년 박병선은 또다시 엄청난 발견을 해낸다. 병인양요 때 빼앗긴 ‘외규장각 의궤’를 프랑스 국립도서관 베르사유 별관 창고에서 발견한 것이다. 1년 후, 1976년 박병선은 의궤의 존재를 밝혔지만, 그로 인해 국립도서관 측에서 사표를 강요받게 된다. 명목은 ‘기밀 유출’이었지만, 자국 역사의 치부를 드러내어 이뤄진 조치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박병선은 사표를 내고 개인 자격으로 도서관을 찾았다. “저는 방문객입니다. 개인의 출입을 막을 권한이 있습니까?” 그렇게 그녀는 매일매일 10여 년간 도서관을 드나들며 ‘도서관 관계자가 책을 치울까 봐 밥도 먹지 않고’ 연구에만 매진했다. 이때 도서관에서 불렸던 별명이 ‘파란 책만 들여다보는 여자’였다고 한다. 외규장각 의궤의 표지가 파란색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노력 덕분에 어람용 의궤의 존재가 확인되었고, 이를 통해 조선 시대의 행사에 관한 연구가 진행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외규장각 도서 반환에도 힘쓴 결과 2011년 5월 프랑스로부터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받을 수 있었다.

 

 

4) 평생의 사업을 마치고 눈을 감다

 

박병선은 2011년 6월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을 확인한 뒤, 2011년 11월 22일에 별세하였다. 평생의 숙원 사업을 완성한 뒤 마침내 편안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결혼하지 않아 직계가족은 없었으며, 죽기 전까지 평생토록 한국 역사를 알리기 위한 연구에 매진했다고 한다. 그녀는 문화재 반환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2007년 국민훈장 동백장, 2011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으며, 서거 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혹시 직업과 사업의 차이를 아는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하는 일이 직업이다. 반면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일을 해나가는 게 사업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병선은 진정한 의미의 사업을 해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에 가게 되면 병인양요 때 약탈당한 외규장각 조선왕실의궤의 행방을 찾아보라.”

 

스승의 말에 따라 우리의 문화유산을 되찾고 한국 역사를 알리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한 사람의 삶이 이보다 숭고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소중한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어 그 내용을 이렇게 정리하여 글로 남기고자 했다.

 

더불어 내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나는 살면서 무슨 사업을 하고 있을까? 직업만 가지고 사는 것은 아닐까? 직업을 사업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함께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다.

 

참고

1) 영상한국사 I 024 프랑스가 약탈한 외규장각 문서 반환에 평생을 바친 ‘박병선 박사’, KBS역사저널 그날 유튜브 (링크)

2) 프랑스는 해고, 한국 냉대에도… 평생 독신으로 약탈 문화재 찾아, 조선일보 (링크)

3) 박병선, 나무위키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