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안티가 생기는 순간.gif

 

한국 프로 스포츠 선수들의 팬 서비스는 그닥 평판이 좋지 않다. 그나마 축구가 팬 서비스가 좋은 거로 알려졌지만, 국내에서 가장 인기가 많다는 야구만 해도 팬 서비스가 좋지 않다는 지적이 매해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다. 혹자는 ‘선수가 경기만 잘하면 됐지, 팬들을 위한다고 감정 노동까지 해야 하느냐?’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프로 스포츠가 존재할 수 있는 근본을 생각지 못한 발언이다.

 

사실상 모든 스포츠는 그 자체로 생산성이 없다. 까놓고 말해서 사람들이 공차고, 뛰어다니는 게 무슨 경제적 효과가 있겠나? 하지만 사람들은 그 모습에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그것도 적지 않은 돈을 낸다. 잠실 야구장을 예로 들면, LG 트윈스 경기의 프리미엄 석 가격은 무려 70,000원이나 한다. 가장 값이 싼 주중 외야석도 7,000원이다. 그 돈으로 국밥 한 그릇 먹으면 배라도 부르지, 저 멀리 떨어진 외야에서 코딱지만 하게 보이는 선수들이 잘 보이지도 않는 공을 가지고 투닥거리는 걸 본다고 무슨 이득이 있겠나?

 

그럼에도 사람들이 기꺼이 돈을 내는 이유는 즐겁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뛰고 협력하고 승리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움을 얻기 때문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이것이 프로 스포츠의 존재 이유가 된다.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게 프로 스포츠의 존재 이유다. 따라서 프로 스포츠의 핵심은 선수도, 구장 시설도 아니다. 바로 팬이다. 팬이 있기 때문에 프로 스포츠가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선수가 경기만 잘한다고 전부가 아니다. 경기를 왜 하는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팬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다. 따라서 팬 서비스를 감정 노동이라고 치부해서도 안 된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프로 스포츠의 핵심은 감정 노동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즐거움을 서비스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이 팬에게는 더욱더 잘 해줘야 한다. 그들이 미래의 고객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 경기를 관람하러 갔다가 큰 즐거움을 얻으면 그 사람은 평생 팬이 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렇게 어른 팬이 되면 자신의 아이와 함께 경기장을 찾을 것이다. 그렇게 프로 스포츠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위 사진에서 하키채를 선물 받은 아이는 아마 평생토록 아이스하키 팬이 될 확률이 높다. 어른이 되면 자기 아이도 경기장에 데려올 확률이 높다. 소년의 만개한 잇몸만 봐도 미래가 훤히 보인다.

 

프로 스포츠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고객을 상대하는 모든 사업이 마찬가지다. 좋은 고객 경험은 한 명의 팬을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 팬이 다른 팬을 불러오는 선순환을 일으키게 되어 있다. 괜히 홈쇼핑 관계자들과 배달 음식점 사장님들이 고객 평가에 민감한 게 아니다. 경험담보다 강력한 입소문은 없다.

 

마지막으로 팬 서비스에 관한 여러 관계자들의 어록을 남긴다. 이를 통해 팬을 만든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보면 좋을 듯하다.

 

 

너희들이 볼펜 한 자루라도 스스로 만들어본 적이 있느냐? 너희같이 생산성 없는 공놀이를 주업으로 삼으면서 돈 벌고 대접받고 하는 것은 팬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다. 팬들에게 잘해야 한다. 시합에 졌을 때는 그런 부분들이 좀 귀찮을 수도 있다. 일반 팬들은 자기 비용, 자기 시간을 내서 왔는데 팬들한테 좀 더 잘해서 팬 서비스라도 이길 필요가 있다. 경기에 졌어도 팬 서비스는 지면 안 된다. 선수들의 어떤 개인적인 문제라기보다 스포츠 전반에서 그런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 프로는 팬과 같이 가는 것이다. 팬 관리에 더 신경 써야 한다. 팬들과 접촉할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한다.

 

– 전 연세대학교 감독 최희암. 이 말을 서장훈, 이상민, 문경은 등 대한민국 농구 레전드들에게 해주었다. 또한, 이 말은 팬 서비스 얘기가 나올 때마다 소환되고 있다.

 

 

모든 스포츠 선수들은 팬이 없으면 그냥 혼자 친구들하고 노는 정도밖에 안 돼요. 게임을 문화로 바꿀 수 있는 건 많은 팬이 모였기 때문이지, 선수들이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게임이 문화로 바뀌는 건 아니거든요. 게임은 게임으로 남는 걸 그 많은 사람들이 문화로 바꿔 놓은 거죠. 그게 팬들이 가진 힘이에요.

 

– 전 프로게이머 임요환. 그가 괜히 e스포츠를 만든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게 아니다.

 

 

사인해주는데 5초면 되지만, 아이들에게는 평생 기억이 된다. 어렸을 때 사인을 받지 못하고 집에 가면 어떤 기분인지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 로스엔젤레스 애인절스 중견수 마이크 트라웃

 

 

팬이 없으면 선수들은 그냥 공놀이를 할 뿐이다.

 

– 넥센-키움 히어로즈 외야수 이정후

 

 

나에게는 사인을 해 주는 데 5초면 충분하다. 그러나 그 사인을 받는 사람의 5초는 평생의 기억이 될 수도 있다.

 

– 대구FC 스트라이커, 데얀 다미아노비치

 

 

너 프로스포츠란 게 제일 기본적으로 있어야 할 게 뭔 거 같아? 관중! 팬이 없으면 그건 프로 스포츠가 될 수 없는 거야. 아무도 보지 않는데 그게 어떻게 프로야. 근데 우리나라 선수들은 보면 콧대가 너무 높아. 뭐 예를 들어 팬들이 사진 찍어주세요 그러면 소위 얘기하면 아랫사람 보듯이 무시하면서 쳐내는 것도 많고 근데 그러면 절대 안 되거든. 내가 한 예로 예전에 제주도 한 번 놀러 가서 내가 너무 팬이었던 연예인을 딱 본 거야. 가서 사진 한 번 찍어달라고 그러고 싶다. 고민을 많이 했어 그런데 용기가 안 나는 거야. 하려 했다가 저 사람이 거절하면 어떡하지?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럼 용기내서 악수라도 한 번 하자 그러고서 저 너무 팬이에요 악수 한 번만 해주세요 그러고서 해줬거든. 기분이 너무 좋은 거야. 내가 용기를 낸 거에 대해 반응을 해주니까. 기분이 너무 좋은 거야. 그때 난 느꼈어. 악수해달라 사인해달라 이렇게 오는 팬들은 나에게는 일상일 수 있는데 그렇게 오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은 굉장한 용기를 내서 다가가는구나 반대로 생각하게 되더라고. 그러면서 그 때 이후로 악수해주고 사인해주고 사진 찍어달라고 하면 찍어주고 웬만하면 다 해주려고 했어. 그래도 가능하면 다 해주려고 했거든. 그래서 지금 뛰는 선수들도 거절해서 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 팬들에 대한 고마움, 소중함, 절대 우리가 하대할 사람들이 아냐. 그 사람들은 우리의 공연을 보러 오는 관중들이야. 너무 감사하고 고마워하면서 다 받아들여 줘야 되는 거야.

 

– 전 프로농구 선수 하승진

 

 

우리는 야구하는 것이 직업이지만, 팬 서비스도 프로야구선수의 또 다른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NC 팬들은 정말 최고다. 놀라운 사람들이다. 너무나 많이 사랑을 주시고, 에너지도 넘친다. 그런 응원 덕분에 늘 많은 힘을 받고 있다.

 

– NC다이노스 외야수 제이크 스몰린스키

 

참고
1) 평생 안티가 생기는 순간.gif, 이토랜드
2) 팬 서비스,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