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 추가적인 내용을 더하자면, 당시 김한석은 인기 하락과 이혼을 겪으면서 극도로 힘든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처럼 파격적인 방송 촬영에 응하였다고. 원래 계획은 시민과 가까워지고, 안에서 운동이나 공부를 하면서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한다.
50일 정도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으나, 이후부터 공황장애와 극심한 우울증 등 이상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결국, 방송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으나, 김한석은 시청자와의 약속이라고 생각하여 100일을 다 채우고 유리의 집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렇게 고생은 고생대로 했으나 인권침해 논란과 시청률 저조로 프로그램 자체는 소리소문없이 망해버렸다. KBS 측은 미안했는지 2002년 설 특집으로 최종회를 방영하면서 100일간의 생활을 모두 요약하여 방송해주었다고. (PD가 잘못했네…)
충격적인 콘셉트에 비해 알맹이가 부족한 느낌이지만, 그래도 하나 건진 게 있다면 역시 ‘마지막 소원’이 아닐까 싶다. 솔직히 이 정도면 김한석이 무리한 소원을 빌어도 이상하지 않다. 현실적으로 당시 최고 예능 프로에 고정 패널로 넣어달라는 정도면 빌어볼 만한 소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김한석은 그저 뜨끈한 국밥 하나를 원했다.
국밥을 먹으며 눈물을 펑펑 쏟은 심정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왜 국밥을 원했는지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물론 그 진실은 김한석 본인만 알겠지만, 이를 유추한 사람들의 생각도 굉장히 타당하다. 화려한 소원을 빌고, 그것이 화제가 되면, 또 이런 비인간적인 프로그램이 이어질 수 있을 테니까. 만약 김한석이 정말로 거기까지 생각해서 소원을 빌었다면 정말 현명하고 사려 깊었다고 말하고 싶다. 자기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방송계 전체를 생각한 행동이었으니까.
한편으로는 ‘소원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었다. 만약 램프의 지니가 나타나 당신에게 어떤 소원이든지 들어주겠다고 한다면, 당신은 어떤 소원을 빌겠는가? 엄청난 돈? 막강한 권력?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볼 점이 있다. 이런 소원이 이뤄진다고 우리 삶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원래 지니는 디즈니 만화처럼 선량한 존재만은 아니라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도깨비’ 같은 이미지랄까? 그래서 사악한 지니도 존재하는데, 이들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면 이를 자기식으로 해석하여 잔인하고 끔찍한 방식으로 소원을 이뤄준다고 한다. 예를 들어 고통을 없애 달라고 하면 죽여서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거나, 영원히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싶다고 하면 인형으로 만들어버리는 식이다. 즉, 모든 소원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건 아니다. 때로는 그 소원이 이루어지는 게 오히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영어 표현 중에 “Be careful what you wish for.”라는 게 있다. “뭘 원하는지 신중히 생각해.” 혹은 “소원을 빌 때는 조심해”라는 의미다. 만약 김한석이 무리한 소원을 빌었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됐을까? 어쩌면 본전도 못 찾았을지 모른다. 프로그램이 망했는데 거액을 줄 리도 만무하고, 무리한 부탁에 업계에서 기피하는 존재가 되었을 수도 있다. 오히려 소박한 소원을 빌었던 덕분에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결말을 이끌 수 있었다.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면 현명해야 한다. 그런데 욕심만큼 현명함을 방해하는 게 또 없다. 소원을 바라기 전에 꼭 한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이 소원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소원인지. 그리고 그 끝에서 나는 행복할 수 있을지. 그렇게 생각해보면 허황된 소원만큼 위험한 게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참고 : 전설로 남은 리얼리티 예능.jpg, 인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