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만 하더라도 사진의 묘미는 ‘기다림’이었다. 필름 카메라로 열심히 찍고 사진관에 필름을 맡긴 후, 시간이 지나 이를 다시 찾을 때의 기분은 꽤나 설렌다. 잘 나온 사진은 액자나 앨범에 보관해 오래도록 소장을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필름 아깝다’며 절로 한숨을 쉬곤했다.
하지만 이미 2000년대 들어 디지털카메라가 보편화하고 더 나아가 스마트폰 카메라의 성능이 디지털카메라와 화질의 차이가 좁혀지면서 사진은 언제 어디서든 찍고 확인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삭제할 수 있다. 마음에 드는 사진은 인화보다는 소셜 미디어에 인증을 한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타인의 호응에 만족한다. 이것이 21세기의 사진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웃긴대학 등에 돌고 있는, 설명 한 줄 없는 사진 한 컷이 네티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본인 등판 레전드’라고 이름한 이 사진은, 말그대로 ‘본인 등판’이란 사실에 충실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인간이 아니기에 ‘본인’이란 표현에는 어폐가 있지만)
이 사진이 왜 네티즌들의 주목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일단 육식동물 사자와 초식동물인 기린이 한 화면에 담겨있다는 점이 의아하다. 둘은 자신들이 한 화면에 존재하므로써 ‘평화로운’ 초원을 연출하고 싶었던 것일까. 사자의 시선은 기린을 알아보지 못한 채 어디론가 향해 이동 중이고, 기린 역시 그런 사자를 피하기는커녕 사자의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다. 과연 이둘은 촬영이 끝난 후 어떻게 됐을까 궁금하기만 하다.
미국 웨버주립대 컴퓨터 과학 교수인 루크 페르난데스와 역사학 교수인 수전 J. 맷 교수는 공동 저서 <테크 심리학>에서 ‘사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19세기 사진이 등장하던 시점부터 사람들은 최대한 자신의 ‘좋은 모습’을 담기 위해 애썼다는 것이다. 포토샵 같은 프로그램이 없던 시절에도, 소품을 활용하거나 촬영 각도를 다양화하며 최대한 사진 속 내 모습이 ‘잘’ 나올 수 있도록 애썼다. 이른바 ‘편집된 자아’의 시작이었다. 오늘날 사진은 소셜 미디어와 만나 타인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하는 수단으로, 또는 자신의 근황을 자랑하는 수단으로 그 역할이 확대된 것이다. 아마도 이 컷이 아무 설명 없이도 수많은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어 낸 이유는, 어떻게든 사진 한장에는 자신의 좋은 모습만 최대한 담으려고 하는 인간의 심리를 반영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중요한 건, 진실은 언제나 사진 너머에 있다.
참고
1. <본인 등판 레전드.JPG>, 웃긴대학
2. <테크심리학>, 루크 페르난데스 ·수전 J 맷 지음, 비잉 (아래 표지)
썸네일 이미지 출처 : 미스터 트롯, TV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