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 데리고 놀라 하니 힘들다.”
“회삿돈이 내 돈이지.”
“무슨 세금이고. 세금 얼마 내는 데 세금이라고 하노. 세금 얼마 내지도 않는 게.”
“국민임대 살면서 주인한테 그런 소릴 하고 있다.”
위 발언은 한국토지주택공사, LH의 한 간부가 임대 아파트 입주자 대표를 만나 욕설과 함께 꺼낸 말이다. LH가 간부 개인의 회사도 아닌데, 자신이 집주인이라는 발상이 당최 어디서 튀어나왔을까? 진짜로 본인을 아파트의 주인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임대 아파트에 사는 주제에. 천한 것이 어디서 공기업 다니는 분한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냄새가 난다. 더러운 천민 자본주의의 냄새가 난다.
어른들의 더러운 인식은 그대로 아이들에게 옮아간다. 10살도 안 된 아이들이 돈으로 사람 차별하는 말을 만들고 쓴다. ‘개근거지’라는 말을 아는가? 요즘에는 해외여행 등으로 체험학습 가는 아이들이 많아져, 오히려 개근하는 아이들을 개근거지라고 놀린다고 한다. 개근상은 성실함의 상징에서 가난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휴거’라는 말도 있다. 임대 아파트 브랜드 ‘휴먼시아’에 거지를 붙였다. 요즘에는 ‘LH에 사는 사람’을 줄여 ‘엘사’라고 부른다. 비슷한 말로 ‘빌거’도 있다. 아파트가 아니라 브랜드 이름이 없는 빌라나 연립주택에 사는 사람을 빌라 사는 거지라고 한단다.
아이들이 어떻게 알고 이런 말을 만들었을까? 네이버 부동산에서 매매/전세 시가라도 찾아보는 걸까? 아니다. 그런 걸 찾아보는 건 부모다. 그리고 은연중에 내뱉는 말들 ‘누가 없이 사는 거 아니랄까 봐…’ 그런 말들이 아이들 귀에 들어간다. 그러면 휴거, 엘사, 빌거 같은 말이 나온다. 그래서 저런 말을 하는 애들이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로 느껴진다. 부모의 천민 자본주의에 생각이 먹혀버린 불쌍한 아이들이다.
“불평등에 분노하지만, 나의 아들은 엘리트로 성장할 것이다.”
작가 강현민의 작품 ‘가위눌림’에 새겨진 문구다. 우리는 가난이라는 불평등을 무시하는 갑질에 분노하지만, 동시에 가난과 비교하며 교만한 자존심을 끌어올린다. 작가는 촌철살인의 문구로 헬조선 자본주의를 꼬집었다. 아이들은 가슴이 먹먹해지는 유행어로 천민 자본주의의 민낯을 드러냈다. 공기업 간부는 술기운을 빌어 교만한 속내를 내보였다.
이건 아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세상에 돈 만한 게 없다지만, 돈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돈이 아니더라도 소중한 게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나부터 알량한 재산을 가지고 뻐기듯 자랑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한다. 가소로운 성과를 두고 관심과 칭찬에 목말라하진 않았나 되돌아본다. 그렇게 난사람, 든사람보다 먼저 된사람이 되고 싶다. 이런 마음이 모이고 모이면, 우리 사회 깊숙이 박힌 천민 자본주의도 뿌리 뽑을 수 있지 않을까?
참고
1) “못 사는 게 집주인한테”..LH 간부의 황당한 ‘갑질’, MBC
2) 가위눌림, 강현민 설치 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