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뭉클했던 순간 (feat.엔니오 모리코네)

작곡가 엔니오 모리코네가 지난 5일 향년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위대함을 잘 알 것이다. 그는 ‘영화 음악의 신’이라는 별명이 기꺼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무려 500편이 넘는 영화 음악을 작곡했지만, 그저 다작이 전부인 작곡가는 아니었다.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이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 그런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충격과 슬픔에 휩싸였다. 그리고 다시금 그를 추억하게 되었다. 

 

 

엔니오 모리코네에 관한 기억 중 가장 뭉클했던 건 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이었다. 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여러 면에서 화제를 모았다.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가 6관왕에 오르며 최다 수상작의 영예와 함께 노장 조지 밀러의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는 <레버넌트>를 통해 2회 연속 감독상을 받으며 거장의 반열에 올랐고, 같은 영화로 엠마누엘 루베즈키가 3회 연속 촬영상을 받으며 촬영 본좌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오랜 숙원을 이루는 감동적인 순간을 목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가장 화제가 되었던 디카프리오보다 다른 사람의 수상이 더 뭉클하게 다가왔다. 바로 <헤이트풀 8>으로 음악상을 받은 엔니오 모리코네였다. 사실 엔니오 모리코네는 디카프리오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아카데미와 인연이 없었다. <천국의 나날들>, <미션> (아니 이걸 안 줘?), <언터쳐블>, <시>, <말레나> 등 수많은 작품이 아카데미 후보에 올렸지만 단 한 번도 상을 받지 못했다. 엔니오 모리코네 최고 명작이라고 할 수 있는 <시네마 천국>은 아예 노미네이트 되지도 못했다. (뭐라고?) 하지만 엔니오 모리코네의 업적을 무시할 수는 없기에, 아카데미는 2007년 79회 시상식에서 그에게 평생공로상을 수여 한다. 당시에는 ‘엔니오 모리코네라면 공로상 받는 게 당연하지!’라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무관에 그치다 마지못해 주는 상을 받은 셈이었다.

 

그런데 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드디어 88세의 노장이 음악상 수상자로 호명 받는다. 그는 나이 때문인지 부축을 받아 겨우 단상에 올랐다. 그리고는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 순간 엔니오 모리코네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떨리는 손으로 수상 소감을 말하는 모습에서 그의 복받쳐 오르는 감정이 전해져 왔다. 정말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이었다.

 

 

혹자는 엔니오 모리코네가 아카데미와 인연이 없는 이유로 그의 음악이 영화를 압도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영화가 돋보여야 하는데 오히려 음악에 집중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확실히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은 영화가 없어도 관객의 귀를 사로잡는 대중성과 작품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위대함이 더욱 커진다. 음악만 들어도 영화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는 마법 같은 순간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영화 장면만 봐도 저절로 귓가에 음악이 흐르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영화가 단순한 영상 예술이 아니라 음악과 조화된 공감각적 예술이라는 걸 제대로 증명했던 사람이 바로 엔니오 모리코네인 셈이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가 남겼던 불후의 명곡 몇 편을 이 글에 남기고자 한다. 그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음악은 영원히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을 것이다.내 삶을 풍요로운 감동으로 채워준 엔니오 모리코네에게 정말 감사했다고 말하고 싶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글을 마친다.

 

<황야의 무법자> – A Fistful of Dollars

 

<석양의 건맨> – For A Few Dollars More

 

<석양의 무법자> –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 Childhood Memories

 

<미션> – Gabriel Oboe

 

<시네마 천국> – Main Theme

 

<시네마 천국> – Toto & Alfredo

 

<헤이트풀 8> – L’Ultima Diligenza di Red R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