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물을 생수라고 속여도 아무도 몰랐던 이유

지구의 물 시장은 1,000억 달러(약 110조원) 규모에 육박하고 있으며 해마 다 6~7%씩 성장하고 있다. 자연히 생수제품들이 많이 나오고 서로 치열하게 경쟁을 하는데 한결같이 깨끗한 이미지와 특별한 맛을 강조한다. 그리고 일반인들도 각자 좋아하는 생수 브랜드가 있으며, 그 생수만의 특별한 맛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정말 물맛을 구분할 수 있을까?

 

미국의 케이블 TV 프로그램인 「펜 앤 텔러」는 도발적인 실험을 했다. 우선 실험 참가자들을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초대했다. 그러고는 배우를 ‘물 담당 매니저’로 고용해 실험의 내용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로 뒤 로비네’라는 물을 소개하는 고급스러운 가죽 메뉴판을 보여주도록 했다. 심지어 어떤 물은 가격이 한 병에 7달러나 되었다.

 

물 담당 매니저는 ‘로 뒤 로비네’가 천연 이뇨작용과 해독작용을 한다며 브랜드의 유익함을 설명하고 손님에게 추천했다. 그리고 손님이 ‘로 뒤 로비네’를 주문하겠다고 결정하면 멋스럽게 물을 잔에 따라주었다. 손님이 물을 마시면 매니저는 물맛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손님들은 여러 가지 찬사를 했다. 당연히 수돗물보다 훨씬 낫다는 말이다.

 

이제 왜 이실험이 도발적인지 알아보자. 물 담당매니저는 ‘로 뒤 로 비네’를 추천하며 ‘천연 이뇨제이자 해독제’라고 설명했는데, 사실 모든 물이 천연 이뇨제이자 해독제이다. 그리고 ‘로 뒤 로비네’(I’eau du robinet) 는 프랑스어로 수돗물을 뜻한다. 최고급이라고 소개된 모든 물은 실은 레스토랑 뒤에 있는 수도꼭지에서 나온 수돗물이었던 것이다.

 

 

일반인들만 물맛을 구분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북미 페리에사의 설립자이자 대표이사인 브루스 네빈스(Bruce Nevins)는 북미 사람들에게 페리에 생수가 얼마나 맛있는지 홍보해야 했다. 그런데 홍보를 하기 위해 라디오 생방송에 출연해 물이 든 7잔 중에서 페리에 생수를 골라내던 날에는 운이 따르지 않았다. 그는 5번을 시도한 후에야 겨우 페리에를 골라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물뿐만 아니라 콜라, 커피, 심지어 와인 등의 다양한 블라인드 테스트(blind test)에서 일반인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조차 맛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다. 똑같은 보르도 와인에 한 병에는 최고급 와인을 의미하는 그랑크뤼 등급(grand cru classe)의 라벨을 붙이고 다른 병에는 일반 와인을 의미하는 뱅 드 따블(vin de table) 라벨을 붙였다. 그리고 와인 전문가 40명에게 “어떤 와인이 좋은 와인이냐?”고 물었다. 28명은 최고급 등급의 와인이 좋다고했고,12명은 일반 등급 와인의 맛이 더 좋다고 평가했다. 단 한 명도 “두 와인의 맛이 같다”고 말한 이는 없었다.

 

한 실험에서는 와인 전문가들에게 화이트 와인을 검은 잔에 따라주고 “레드 와인 맛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자 다수가 레드 와인으로 착각하고 ‘걸쭉한 잼과 같은 맛’이나 ‘붉은 과일을 으깬 맛’처럼 레드 와인을 의미하는 단어를 써서 맛을 표현했다. 물론 극소수의 전문가는 구분했다고 하니 너무 실망하지는 말자.

 

 

그럼,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예일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인 폴 블룸(Paul Bloom)은 그 이유를 단 한마디로 요약했다.

 

“대상에서 얻는 즐거움은 ‘우리가 그 대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달려 있다.”

 

이것이 우리의 본질이다. 우리의 미각, 시각과 청각은 기본적으로 그 대상 자체의 특성보다 우리가 그 대상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따라 다르게느낄수있다.다시 말해 대상에대해 이미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면, 그 자체가 강력한 힘을 발휘해서 우리의 미각에 영향을 주어 ‘맛있다’ 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마케팅 귀재들은 한결같이 “마케팅은 제품의 싸움이 아니라 인식의 싸움”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브랜드가 중요하고 스토리가 중요하다. 그 대상에 대한 좋은 인식이 곧 맛이요, 즐거움이요, 쾌락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 최고의 제품, 최고의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또한 이것이 실체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 최고의 제품과 좋은 콘텐츠로 인식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삶은 인식의 전쟁터이다.